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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별기획 | 등록 2002.03.12(화) 제4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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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머리에 접착제를 발랐나
고수열전 - 축구공 묘기의 달인 허남진씨
골문을 향해 내달렸다. 오직 축구공만이 눈에 들어왔다. 힘껏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볼보다 먼저 다리에 얹힌 것은, 묵직한 골키퍼의 몸이었다. 무릎이 꺾이고, 소년의 꿈도 꺾였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당한 무릎 인대 파열. 강원도 최우수선수로 뽑힐 만큼 촉망받던 축구소년 허남진(34)의 선수생명은 3년 만에 끝났다. 짧은 선수생활은 오랜 미련을 남겼다. 중·고생 시절 남진의 머리 속엔 온통 축구 생각뿐이었다. 도통 교과서의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음박질쳤다. 메르데카컵, 킹스컵…. 잠꾸러기 소년의 새벽잠을 깨운 이벤트들이었다. TV 속 선수들 몸놀림 하나하나에 고함이 터지고, 손에 땀이 배었다. 그토록 동경했지만 선수로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는 없었다. 혹독한 훈련의 대가로 얻은 관절염과 허리 통증이 그의 소망을 가로막았다.
헤딩머신의 기록 ‘깨고 또 깨고’
88년 우연히 켠 TV에서 ‘헤딩 오래 하기 대회’를 중계하고 있었다. 헤딩이라면 자신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헤딩 머신” 소리를 듣던 그였다. 그날부터 하루 다섯 시간씩 헤딩 연습에 몰두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뒷산을 뛰며 체력을 키웠다. 길잡이는 없었다. 경험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자다가도 볼 컨트롤 동작이 떠오르면 일어나 몸으로 옮겼다. 고군분투했지만 주변의 눈초리는 따가웠다. 부모님은 말렸고, 친구들은 비웃었다. 그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축구 묘기에서 세계 최고가 되면 축구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고 평범한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돌이킨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89년 10월 용인자연농원(현 삼성 에버랜드)에서 ‘헤딩 이어가기 기네스 기록대회’가 열린 것이다. 6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하나둘 떨어져나가고 허남진씨 혼자 남았다. 어느새 이마가 터져 얼굴에 피가 흘렀다. 피냄새를 맡은 벌레들이 눈을 향해, 입 속으로 돌진했다. 헤딩을 할 때마다 머리는 텅텅 울리고, 다리는 흔들렸다. 이를 악물고 버터낸 5시간37분. 세계 기록이었다. 어렵게 세운 기록이었지만, 기네스 협회의 공인을 받지 못했다. 통증을 막기 위해 이마에 둘렀던 붕대가 화근이었다. 거듭된 좌절도 그를 꺾지는 못했다. 90년 8월29일, 다시 헤딩 오래 하기 세계 기록에 도전했다. 7시간3분33초. 이전 기록을 1시간33분 넘긴 대기록이었다. 처음으로 기네스북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다음해에는 팔을 뺀 온몸으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지탱하는 축구묘기인 ‘전신 볼컨트롤 오래 하기’에 도전했다. 17시간10분57초의 기록으로 기네스 2관왕이 되었다. 축구 묘기 1인자의 목표는 성취했지만, 다른 길로 떠나지 못했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중독처럼 도전에 매달리게 된다”며 웃는다. 3∼4개월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씩 훈련에 매달려야 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헤딩 오래 하기는 4번, 전신 볼컨트롤은 2번 스스로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록 경신이 끝날 때마다 “다시는 안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완주를 끝낸 마라토너처럼. 그러나 울면서 산으로 향하는 등산가처럼 그는 또다시 기록 도전에 나선다. 2002년 2월20일에 헤딩 오래 하기 기록 경신에 나섰다. 역시 7시간30분59초의 세계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다”고 되뇐다. 정말 마지막일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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