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특별기획 | 등록 2002.03.06(수) 제3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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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똑똑한 방송, 위성이 쏜다 제2의 TV혁명 주도할 디지털위성방송… 무한한 잠재력에도 출발 콘텐츠는 부실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에 딸린 자그마한 섬 마라도. 국토의 최남단이란 상징 때문에 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섬의 면적은 겨우 0.3㎢다. 한 시간 남짓이면 섬을 한 바퀴 뺑 돌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실감이 날까. 지도에서 보면 남해의 한가운데 떨어진 작은 점 하나인 이 섬에는 하나뿐인 게 많다. 포구 하나, 초등학교 분교 하나, 등대 하나, 마을회관 하나…. 자장면집과 횟집은 서너곳에 이르지만. 전체 주민이 30가구 80여명인 이 섬은 근래 들어 아주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3월1일 본방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마라도 30가구 전체가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한 것이다.
안방에 모인 최남단 마라도 주민들
마라도는 전형적인 난시청 지역이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전파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데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채널조차 흐릿하며 나머지 채널은 아예 볼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극장이나 영화관, 그 흔한 비디오 가게도 물론 없으며 케이블TV를 설치할 수도 없는 지역이다. 최근 어렵게 인터넷을 연결하기는 했지만 적잖은 비용 탓에 거의 이용을 못하고 있다. 마라도 주민의 스카이라이프 가입률 100%는 이런 형편을 반영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가 마라도 주민의 생활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남편과 함께 마라도에서 횟집을 하고 있다는 김운영(33)씨는 “바람이 많은 탓인지 TV가 거의 나오지 않아 불편했는데 스카이라이프가 들어오고난 뒤에는 화면이 깨끗하게 나와서 좋다”고 만족해했다. 김씨는 “여기는 비디오를 빌려볼 데가 없어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거의 못 보고 지냈다”며 “스카이라이프 채널에서 1편당 1천원에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혀 새로운 서비스이다보니 디지털위성방송이 가정까지 전달되는 경로에 대한 궁금증이 들 법한데, 위성방송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자. 디지털위성방송은 지상에서 보낸 방송신호를 위성을 통해 각 가정의 수신 안테나로 보내는 방송이다. 위성방송 144개 채널 가운데 하나인 클래식영화채널 시네포에버(Cine4ever)의 영화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채널을 갖고 있는 (주)씨넥서스는 위성방송에 맞게 제작된 ‘마스터 테이프’에 영화 프로그램들을 담아 중앙방송이란 회사에 1∼2주 간격으로 보낸다. 씨넥서스는 자체 송출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아 중앙방송에 의뢰하는 것이다. 중앙방송은 광케이블을 통해 이를 서울 목동에 있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대표 강현두)의 방송송출센터로 보내게 된다(스카이라이프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의 브랜드 이름이다). 목동 방송센터에서 쏘아올려진 전파는 적도 상공 3만6천km에 떠 있는 무궁화위성(3호)을 거쳐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KBS, MBC 등 지상파나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과 달리 디지털방식인데다 위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국 어디서나 고화질, 고음질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데이터방송·쌍방향 진화… 케이블 업계 변신
인하대 김대호 교수(언론정보학)는 “방송의 역사를 돌아보면 컬러TV 도입(1980), 서울방송(SBS) 출범으로 인한 다채널화(1992), 케이블TV 방송 개시(1995) 등 굵직굵직한 매듭이 있었는데 이번 디지털방송의 출범은 컬러TV도입 뒤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위성방송 시대 개막으로 이제 TV는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데서 나아가 데이터방송, 인터랙티브(쌍방향)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는 정보기기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위성방송이 겉보기엔 단지 채널 수가 많은 케이블TV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디지털이란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방송운영시스템이 케이블과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케이블TV의 경우 수많은 방송사(SO)가 지역별로 나뉘어 있는 구조다. 상수도 사업에 비유하자면 수도관을 보유·관리하는 다수의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견줘 디지털위성방송에선 스카이라이프라는 1개 회사가 대형 파이프라인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흘려보내는 수돗물(PP의 콘텐츠)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는 PP(??)들 위에 군림하면서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걱정을 낳는 요인이기도 하나 디지털위성방송이란 사업면에서 볼 때는 대단한 강점으로 꼽힌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케이블방송 업계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휘말리고 있다. 중계유선사업자(RO)가 SO로 빠르게 전환되는가 하면 SO 및 PP끼리 합쳐 덩치를 키우는 일이 뚜렷해지고 있다. SO와 PP 사이에 합병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데이터방송 및 쌍방향 서비스를 위한 디지털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르면 9월께 케이블 업계에서 디지털방송을 선보일 것이란 예상이다. 이런 움직임은 물론 강력한 경쟁자 디지털위성방송에 맞서기 위한 몸부림이다. 시청자라는 손님을 앞에 두고 치열한 맛내기 경쟁에 들어간 식당가를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위성방송이 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도 자못 클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본방송 전날인 2월28일 ‘디지털위성방송의 기대효과와 과제’란 연구보고서에서 디지털위성방송 서비스 첫해인 2002년 1조5천억원, 2004년에는 3조2천억원의 관련 시장이 새롭게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비스 5년째인 2006년에 이르면 관련 시장규모가 6조8천억원대로 커져 6만2천여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국내총생산(GDP)을 0.35%(3조8천억원)가량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스카이라이프는 오는 2005년쯤 가입자 276만명을 확보, 매출액 7887억원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표준형 셋톱박스 보급돼야 제맛 즐겨
디지털방송의 어떤 점이 이런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일까? 디지털방송은 지상파나 케이블 등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과 달리 쌍방향 운용과 정보의 축적 및 재생이 가능하다. 아날로그 방송에선 하나의 전파에 하나의 영상밖에 실을 수 없고 음성은 다른 전파로 보내야 한다. 반면 디지털방송은 하나의 전파에 복수의 영상이나 음성을 실을 수 있다. 또 신호를 부호화하기 때문에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정보를 압축할 수 있어 아날로그 방송 1개 채널의 주파수대에 4∼8개 채널을 설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청자쪽에서 주문하는 정보를 내보내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골프 채널을 보다가 프로선수가 입은 옷을 주문하거나 참가 선수의 정보 및 기록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바보상자’가 ‘똑똑한 TV’로 거듭난다는 평가가 마냥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지금 당장은 이런 데이터방송이나 쌍방향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 본방송에 맞춰 보급·설치된 셋톱박스가 기능이 떨어지는 ‘경제형’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의미의 디지털위성방송에 필요한 ‘표준형’(고급형) 셋톱박스는 9월께나 양산될 전망이다. 스카이라이프 대외협력실의 양재원 실장은 “월드컵 개최를 앞둔 5월부터 순차적으로 관광객과 주요 인사들이 자주 찾는 길목에 데이터서비스가 가능한 셋톱박스를 1천대가량 설치한 예정이나 이는 시범서비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시일이 좀더 걸린다는 설명이다. 물론 초보적인 형태의 데이터 및 쌍방향 서비스가 있긴 하다. 시청자가 편한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NVOD, PPV 서비스가 그것이다. 전자프로그램 가이드인 EPG 채널도 이런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본격적인 의미의 데이터 및 쌍방향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은 시험방송중, 잠재력을 현실로
스카이라이프쪽의 준비 부족으로 빚어진 차질은 또 있다. 셋톱박스의 보급이 늦어져 예약가입자 대부분이 본방송에 맞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정작 심각한 사안이다. 마라도 지역을 관리하는 제주지사의 예를 보자. 본방송에 맞춰 제주지사에 1차로 공급된 셋톱박스는 50대로 예약가입자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다. 마라도 30가구 가운데 셋톱박스가 설치된 곳은 4가구뿐이다. 똑같은 시기에 예약가입했음에도 서비스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스카이라이프의 장원범 제주지사장은 “배정받은 셋톱박스 물량이 적어 불가피하게 가입자들을 선별해 보급할 수밖에 없었다”며 “3월 안에 적체 현상이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쌓여 있는 예약가입자의 적체 상태가 해소되려면 2∼3개월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스카이라이프 내부 관계자조차 “본방송이라고 하면 시청자가 적어도 5만명은 돼야 하는 게 방송계의 정설”이라며 “6500가구를 대상으로 시작한 이번 본방송은 사실상 시범방송으로 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사업 초기의 갖가지 미흡한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디지털방송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를 열어가는 미래형 미디어의 핵으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다. 본방송 개시로 이제 그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은 온전히 스카이라이프의 몫이 됐다.
1) 74개 비디오 채널 중 약 22개(약 30%)가 위성방송에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씀. 나머지는 케이블과 공유. 2) 60개 오디오 채널은 100% 위성방송에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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