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도 있고, 선거도 있는데…”

주가가 지난해 9월 저점대비 거의 2배 가까이나 올랐는데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밑바탕에는 이런 기대가 짙게 깔려 있다. 월드컵 개최는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고,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도 주가상승을 가로막을 정책은 쓰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6·13 지방선거와 주가

사진/ 선거는 결코 주식시장에 중요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트레이드센터 전경. (박승화 기자)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는 분석도 있다. 삼성증권은 최근 내놓은 ‘과거 월드컵 개최국의 주가동향이 주는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지난 66년 이후 월드컵을 개최한 영국(66년), 독일(74년), 스페인(82년), 이탈리아(90년), 미국(94년), 프랑스(98년) 등 6개국(남미 국가 제외)을 대상으로 월드컵을 전후해 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로 월드컵 전에는 주가 상승세가 지속되다가 개최 이후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월드컵을 앞둔 시점의 주가 강세는 경기가 하락국면일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승식 애널리스트는 “프랑스의 경우 월드컵 개최 당시 경기가 확장국면에 있었지만, 이탈리아와 영국은 성장률이 하향하는 추세였다”며 “그런데도 주가가 강세를 유지한 것은 월드컵이 심리적으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월드컵 개최국가들의 주가는 월드컵이 끝난 뒤 대부분 하락했다. 6개국의 주가는 월드컵 이후 4개월 동안 평균 15%가량 떨어졌다.

보고서는 이를 놓고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가 확장국면에 접어든 상황이어서 이탈리아나 영국보다 주가에 더 긍정적인 국면”이라며 “월드컵 개최 이후 투자심리 호전 효과가 사라지고 6월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분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단순히 월드컵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주가 상승에는 월드컵 전에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선반영되었다는 점도 한국증시가 월드컵을 개최한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리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그러나 어쨌든 월드컵이 여전히 주식시장의 투자심리를 호전시키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선거는 어떨까?

대체적인 전망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가는 조정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선거로 인한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에 주식 순매수를 꺼릴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90년대 역대 주요 선거를 전후한 주가 움직임을 보면 선거는 결코 주식시장에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했다. 선거보다는 경기 요인이 주가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과 다르게 나타나는 PCB가설

사진/ 서울시청 앞의 월드컵 조형물. 월드컵은 주식시장의 투자심리를 호전시킬 것임엔 틀림없다. (한겨레 김창광 기자)

미국의 정치일정과 주가와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립된 이른바 PCB(Political Business Cycle) 가설은 “선거전에는 집권당이 경기부양책을 실시해 실업률을 낮추고 선거 직후에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에 선거를 전후해 경기가 일정한 흐름으로 순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가는 선거 1년 전부터 오르기 시작해 선거 전후에 정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8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의 현실과 비교적 잘 맞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부는 이른바 8·24 증시부양 조처를 발표했다. 기관투자가들의 순매수 원칙을 뼈대로 한 이 조처로 8월24일 471.6이던 종합주가지수는 일시적으로 급등했으나 10월2일 513.12로 다시 내려앉았다. 이후 주가는 93년 1월9일 709.7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이런 주가급등이 선거요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향후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92년 6월에 저점을 찍고 이미 상승세로 돌아서 있었기 때문이다.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상승세로 돌아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은 금리 상황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95년6월 지방선거 때는 경기과열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주가는 94년 11월19일에 1117로 일찌감치 고점을 찍고 지방선거 때까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96년 4월11일 총선 전에는 95년 10월14일 1016으로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 지속적인 하락세가 이어졌다. 경기는 호황의 막바지 국면이었지만, 주가가 경기정점에 앞서 하락세로 돌아서는 경향을 감안하면 이 시점의 주가하락도 선거보다는 경기의 영향이었다.

외환위기로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로 빠져들던 97년 12월 대선 전에는 주가급락세가 계속됐다. 다만 대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야 간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이 가닥을 잡으면서 외국인들이 주식을 폭발적으로 매수해 98년 1월중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종합주가지수는 98년 1월3일 385.49에서 1월31일 567.38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이후 주가는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한 고금리정책으로 98년 9월까지 기나긴 하락세가 이어졌다.

지난 2000년 4·13 총선은 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당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동원해서든 총선 전까지는 주가의 상승기조를 유지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그러나 주가는 선거보다 3개월 앞서 1월 초 최고치에 이른 뒤 미국증시의 급락과 함께 맥없이 주저앉았다. 2001년 말까지의 기나긴 대세하락의 시작이었다. 당시 경기는 정점(2000년 8월)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었고, 기업실적이 더 좋아질 수 있을지 분석가들은 회의적이었다. 한 증권분석가는 “정부가 2000년의 총선을 의식해 99년에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99년 주가는 급등세를 연출했지만, 총선 때까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증시의 골만 깊어졌다”고 말했다.

금리상승이라는 핵심변수

증시 관계자들은 올해도 그런 주가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부는 ‘과열’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경기회복 속도보다 주가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수출이나 설비투자의 회복 지연을 이유로 정부가 팽창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바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시중에 넘쳐나는 돈은 증시로 빠르게 몰려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부동산 투기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에 머물던 자금까지 증시로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가를 상승세로 끌어가던 변수들이 반전되면 급등에 따른 조정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증시 분석가들은 주가의 조정을 가져올 핵심변수로 금리 상승을 든다. 금리 상승은 당장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늘린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실적 전망치는 금리 상승을 그다지 감안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은 주식시장으로 급격한 자금이동에 대해서도 ‘일단정지’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한 증권분석가는 “3년만기 국고채 금리가 올해중 7%대, 높으면 8%대까지도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주가의 발걸음이 금리보다 빠른 상황이다.

김회승 기자/ 한겨레 경제부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