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많은)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고통스러운 시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약속은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집값 대폭락으로 지켜졌다.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타율적으로’ 달성된 셈이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 싶게 딴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년 지나지 않아 집값은 폭등했고 이 와중에서 집 없는 사람의 가슴은 숯덩이가 됐다. 물론 돈 있는 사람이 집으로 떼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집 때문에 설움을 삼켜야 하는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무엇이 부동산 시장을 이렇게 일그러뜨렸을까?

주택보급률 98.3%의 빛과 그림자

사진/ 누가 부동산 시장을 날뛰게 했는가. 서울지역 아파트 동시분양 열기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건설교통부는 최근 지난해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98.3%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서울은 79.7%, 수도권은 88.6%이지만 그동안 끊임없는 주택공급 확대를 통해 ‘이제 여기까지 왔다’고 내세운 것이다. “올해 주택보급률 100% 달성은 시간문제”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택보급률은 전체 주택 수를 총가구 수로 나눈 것으로, 다가구주택은 여러 세대가 살아도 주택 수에서 1채로 치는 반면 1명이 사는 단독가구는 가구 수에서 빠진다. 이를 포함하고 주택으로 잡히지 않는 오피스텔까지 감안하면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120%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주택보급률 100%의 신화가 갖는 허상은 통계청 조사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도시노동자가구의 평균 주택소유비율은 지난 99년 57.89%에서 지난해 56.99%로 떨어졌다. 서울에 사는 노동자의 주택소유비율 역시 지난해 2분기 57.49%에서 4분기에 55.78%로 눈에 띄게 낮아졌다. 꼬박꼬박 월급을 저축해서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택보급률을 강조해온 데는 1가구1주택으로 표현되는 내집마련 정책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1가구1주택에 대해 각종 세금 및 금융상의 혜택을 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집을 소유가 아닌 ‘거주’ 개념으로 여겨야 한다”고 외쳤지만 듣기 좋은 구호에 그쳤을 뿐 주택정책은 소유 확대를 꾀하는 쪽으로 짜여져 왔다. 그렇지만 주택보급률 100%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 기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울에 사는 가구의 자기 집 보유비율은 전체 가구의 40.9%(2000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집은 많지만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 차이는 1가구2주택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차지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가구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은 7.9배(2000년)다. 연간 가구소득을 한푼도 안 쓰고 8년간 모아야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연합 인간거주센터(Habitat)가 지난 90년 세계 53개국 대도시를 대상으로 주거상황을 조사한 결과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비율은 평균 4.2배였다. 가구소득 중에서 주택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평균 15.8%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3.1%(2000년)다. 집을 사든 전·월세로 살든 번 돈의 상당부분을 집에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건설산업연구원 권오현 박사는 “자가비율을 높이는 것이 주거사정이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며 “적정한 가격의 주거공간에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택보급률 신화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분배’ 문제로 정책적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소유 확대만을 지향하는 정책은 무주택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키워왔다.

구매력 있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접근한 1가구1주택 개념은 공급 확대에 치우친 정책으로 이어졌다. 최근 강남의 집값이 폭등하고 있으므로 그린벨트를 풀어 집을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도 물량 위주의 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 공급물량 확대에 맞춰진 주택정책은 또 국가가 돈을 들이지 않고 민간업체에 주택공급을 맡겨 집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민간업체가 건설비용은 더 들고 돈은 남지 않는 소형아파트와 임대주택을 지을 리 만무했다. 서울에 공급된 아파트를 보면 97년에 20평형대 이하 소형아파트가 전체의 58%를 차지했지만 2000년에는 20.4%로 줄었다. 이런 소형아파트 품귀현상 또한 집값 폭등을 부른 한 요인이 됐다.

물론 외환위기 여파로 건설업체가 줄줄이 쓰러지고 주택공급이 크게 위축되자 침체된 건설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었고, 이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규제완화를 틈타 ‘떴다방’ 같은 투기 수요가 판치는 등 부동산 시장이 투전판이 돼버리자 정부는 부랴부랴 합동대책반을 투입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주택경기 부양과 과열 억제가 냉온탕을 오가듯 땜질식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주택경기 부양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과연 누구한테 돌아갔는지 여부다.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토지주택연구부장은 “주택을 많이 짓기만 했지, 지어서 누구한테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돈놓고 돈먹기 판’으로 치달은 부동산 시장 혼탁은 집값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한 배려의 부재에서 초래됐다는 것이다.

서민을 배려하는 주택정책 수립해야

사진/ 부동산 시장의 혼탁으로 서민들은 내집마련의 꿈을 접어야 한다.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승화 기자)

주택시장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려면 보유세 중심으로 부동산 세제를 개편해 소유 분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원은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 위주인 주택 관련 세금을 보유세 중심으로 재편해야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며 “평수가 아니라 강남 등에 비싼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재산세를 더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비좁고 한정된 땅에서 소수가 토지를 소유하면 다른 다수는 그 땅을 이용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박탈된다는 논리다.

또한 집값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요구된다. 도시연구소 서종균 부장은 “적정한 수준에서 주택 소유는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자기 집과 임대주택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어야 서로 가격을 억제시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임대아파트는 75만채로 총주택의 6%에 불과하다. 게다가 영구임대 및 50년 공공임대주택은 2%에 불과하다. 영국, 스웨덴, 독일 등의 서민용 임대아파트가 20%대인 데 비하면 턱없이 낮다. 유럽은 토지시장에서 땅이 나오면 국가가 그때마다 사들여 비축한 뒤 공공주택을 지어 서민들한테 공급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원은 “조금 질이 떨어지더라도 싼 값에 들어갈 임대주택이 충분하다면 기를 쓰고 집을 사려는 욕구가 크게 줄어들고 집 수요도 분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