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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은 소품, 추억의 실록
고수열전 - 딱지광 안효영씨
딱지광, 딱지수집가, 딱지연구가…. 안효영(29·사이버박람회저널 dounet.com 근무)씨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다. 그는 틈나는 대로 딱지를 모으고 딱지를 연구한다. 밥이 나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딱지와 함께라면 행복하다. 딱지만이 아니다. 껌종이, 종이인형, 교과서와 공책, 그림일기장, 그림엽서까지. 어린 날의 추억이 배어 있는 소품들이라면 홈페이지에 올려져 ‘화려한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다.
딱지에서 교과서, 그림일기장까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직장생활을 하던 안씨가 딱지광이 된 계기는 간단하다. 98년 한 인터넷회사가 공짜로 서버를 지원해준다는 말에 솔깃해 딱지를 매개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저 다른 개인 홈페이지와 차별화할 목적이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하루에 수천명씩 다녀갔다. 이런저런 상업적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홀로 독립해 딱지 사이트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믿는 것은 딱 하나였다. 나에게 그리운 시절은 남에게도 그러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돈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소신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나서 자란 안씨는 평생 농사짓느라 한번도 이사하지 않은 부모님, 그리고 큼지막한 뒷광 덕분에 옛 추억을 잘 보관해올 수 있었다. 5살 터울인 형에게 물려받은 딱지로 동네를 평정했던 딱지대장은 중학교 3학년까지 딱지치기를 즐겼다. 고교 진학과 동시에 이웃집 조무래기들에게 딱지를 넘겨줄 때의 섭섭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특별한 기회가 있을 때만 딱지를 살 수 있었거든요. 종이인형도 목이 잘릴 때까지 갖고 놀고. 그만큼 소중한 거죠. 요즘에는 장난감이 넘치지만 오히려 추억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에게 딱지를 아낌없이 양도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모은 게 4천여장. 독지가가 기증한 게 3천여장. 그 밖에 이런저런 경로로 들어온 딱지들을 모두 합치면 8천여장이 넘는다. 지난해 문화의 날(10월26일)에는 대학로에서 야외전시회까지 했다. 딱지광으로서 그에겐 사명감이 있다. 딱지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인 자신이 나서야 딱지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에 따르면 딱지가 대중화한 것은 70년대 들어서라고 한다. 그레이트 마징가 시절만 해도 손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 뒤 일본에서 원판 사진을 이용한 좋은 화질의 딱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슬이나 접는 딱지도 놀이수단이었지만, 동그란 그림딱지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죠. 만화 주인공, 주제가, 그리고 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개개인의 정서 등이 고스란히 되살아나잖아요.” 그가 꼽는 수집광의 조건은 별다른 게 아니다. “일로 볼 게 아니라 놀이로 봐야 해요. 그래야 지치거나 오버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어요.” 그렇다면 수집의 목적은? 개인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따른 정신건강, 사회적으로는 기록·보존의 역할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딱지를 다락이나 광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 기쁨을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 또한 특별하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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