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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을 사랑한 당찬 여장부
고수열전 - 여군학교 ‘왕언니’ 전혜자 주임원사
남군 병사들은 당연하고 여군 부사관들도 그의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웬만한 남자 두명쯤 합쳐놓은 덩치는 물론, 27년째 군에 청춘을 바친 그의 짬밥을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상사 중 1등상사가 원사, 원사 중 최고참이 주임원사다. 그는 육군본부 여군대대 김경숙 주임원사와 함께 대한민국 여성 주임원사 시대를 활짝 연 주인공이다. “군대를 남편으로 알고 지냈다”는 전 원사는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가 많다. 지금부터 10년 전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보자. “여군 하사관 계급정년 반발 커”(92년 5월8일치)란 제목의 기사는 육군 내부규정인 ‘하사관 복무규정’이 유독 여군 하사관의 계급정년을 하사 3년·중사 4년·상사 5년으로 정하고 있어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여군들은 복무기간 연장신청서와 함께 전역지원서를 의무적으로 내고, 강제 전역당하는 일이 벌어지던 때였다. 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기사는 “5월31일치로 전역명령을 받은 여군대대 소속 전혜자(38) 상사도 최근 육군 참모총장 앞으로 전역명령 취소 소청서를 제출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강제전역의 성차별을 무너뜨렸다
당시 가장 나이 많은 고참이었던 전 원사는 소청서를 낸 뒤 3달간 충남 계룡대 근처의 낚시터에서 두문불출했다. 외압을 피하고,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남성 위주의 군조직에 크게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군인인 게 좋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새싹 같은 후배들이 어른거렸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 한몫 한 걸 가장 큰 보람으로 느낀다.” 전 원사와 동료들의 용기에 힘입어 여군 하사관 복무규정은 결국 위법판결이 났다. 딸 같고 조카 같은 부사관들을 비롯해 장교들마저 여군학교에서 그를 거쳐간다. 철저히 계급 위주인 조직이지만 인간관계마저 계급으로 재편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사복차림으로 ‘친정’에 들르는 부사관들은 머리에 핀을 꽂았네, 흰 양말을 신었네, 나무라는 전 원사와 엄마와 딸처럼 말씨름을 하기도 한다. “군인은 어디 가든 군인이다”라는 잔소리와 “신세대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는 푸념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장교들의 경우? 군대 문을 나서면 언니 동생이다. 최근 여군학교 폐지 계획에 시기상조라고 맞서고 있는 예비역 장교들이 가장 빈번히 찾는 사람도 전 원사. “여군의 숫자만 늘린다고 여군시대가 되는 게 아니다. 지휘계통에 얼마나 많은 여성 장교들이 진출하는지, 또 군 전체적으로 여성인력을 키워나갈 구조를 제대로 갖추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엉뚱한 답이 나왔다. “지금쯤 미사리쪽은 꽉 잡고 있지 않았을까.” 고교 졸업 뒤 1년여간 통기타 가수로 음악다방을 드나들었던 그는 “가수가 됐을 것”이라며 크게 웃어젖힌다. 발군의 노래 실력 덕분에 여군학교 근무자(여군 부사관 35명, 남군 병사 35명)의 회식 자리에서 내로라 하는 지휘관들을 제치고 인기 1위는 단연 전 원사이다. 후덕한 성품과 바지런한 손길, 커다란 마당발이 어우러지는 근무시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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