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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속의 앙꼬가 빛난다 새봄의 희망을 전하는 우리 사회 숨은 고수들… 묵묵히 신나게 ‘내가 최고’
빛나고 유명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때론 묵묵히, 때론 즐겁게 자기 분야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진정한 1등일 것입니다. 창간 8주년을 맞은 <한겨레21>은 우리 사회의 ‘숨은 고수’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진빵 속의 앙꼬’ 같은 소중하고 재미있는 8명의 주인공과 함께 2002년 새봄의 기쁨과 희망을 나눴으면 합니다. 편집자
고수열전 - 위폐감별사 서태석 외환은행 외환부 차장
단 25초에 달러화 100장 판별
“위조 화폐 가려내는 일을 오래 하다보니 자루만 들어보고도 금방 알 수 있었지요. 저울로 달아보니 500g 정도 가볍더군요. 진폐 40만달러를 담은 자루는 대략 4kg 정도 되거든요.” 외환은행에서 정년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돼 이제 차장 직급을 달고 있는 서태석(60)씨는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그때 만약 나머지 자루를 모두 뜯었다면 큰일날 뻔했지요. 조사를 받을 때 제시할 증거물이 없어져 우리 쪽에서 덮어쓸 수도 있었거든요.” 서 차장의 탁월한 위폐감식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숱하게 많다. 한번은 정밀하게 위조된 달러화(슈퍼노트)를 놓고 국내 기관(서 차장은 ‘기관’이라고만 말하고 명확히 밝히길 꺼려 했다)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국내 기관은 진폐가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서 차장의 의견은 달랐다. 양쪽 사이의 팽팽한 논란은 결국 미 재무부에서 가려졌다. 서 차장의 승리였다. 이때부터 국내 수사당국도 위·변조 화폐를 감별하는 일만큼은 서 차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자문을 구하고 있다. 99년에는 미 재무부와 FBI가 그의 위폐감별 능력을 인정하는 증서를 줄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에 앞서 96년에는 외국화폐 위폐감식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오른 바 있다. 중학교를 중간에 그만둬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가 위폐감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군복부 시절. 우연찮게 카투사로 뽑혀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경리담당 사병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신병이 가져온 20달러짜리 지폐 5장 가운데 1장의 위폐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위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 제대 뒤 외환은행에 특채된 게 69년. 이때부터 무려 32년간 외화출납 한 가지 업무만을 맡아오면서 위폐감식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그가 달러화 100장의 위폐 여부를 판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초. 하루에만 120만달러어치의 위폐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다. 원화는 눈을 감고 촉감만으로도 감식할 수 있다. 진·위폐를 판별하는 기계가 따로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며 위조가 아닌 변조 화폐는 가려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사람의 영역’인 셈이다. 서 차장은 내년 8월 은행과 맺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부인과 해외여행을 하면서 회고록을 구상할 참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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