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03월12일 제400호 

전쟁을 꿈꾸는 ‘폭파의 제왕’

  • 위폐감별사 서태석 외환은행 외환부 차장
  • 제복을 사랑한 당찬 여장부
  • 머리에 접착제를 발랐나
  • 불꽃놀이는 내게 맡겨라!
  • 여의도 맏형, 신화를 만든다
  • 전쟁을 꿈꾸는 ‘폭파의 제왕'
  • 때묻은 소품, 추억의 실록
  • 녹슬지 않은 크래커 천적

    고수열전 - 블록버스터의 감초 정도안 특수효과맨


    사진/ "충무로 특수효과 수준을 할리우드급으로 만들겠다." 한국영화 특수효과 1인자로 꼽히는 정도안씨. (씨네21 오계옥 기자)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 경향을 분석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투자사와 제작자 이야기다. 그러나 이 사람이 없었으면 한국영화 블록버스터 시대는 적어도 몇년은 늦춰졌을 것이다. 정도안(44)씨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 즉 대규모 폭파장면이나 총격신 등을 만들어내는 특수효과맨이다. 충무로 액션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쉬리>의 총격장면이 그의 손에서 나왔고, 할리우드 특수효과팀이 만들어낸 <싸이렌>의 화염을 간단히 제압했던 <리베라 메>의 불길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내추럴 시티> <예스터데이> <튜브> <재밌는 영화> 등 올해 개봉을 준비중인 큼지막한 작품들이 그의 손끝에 기대고 있다.

    ‘정가이버’, 충무로 액션을 바꿨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효과를 제공하는 그의 솜씨를 보고 연출진이 붙여준 별명은 ‘정가이버’. 그날 촬영 예정에 없었던 폭파장면이 갑자기 필요하게 됐다. 당연히 준비없이 온 그는 문방구로 달려가 생일날 터뜨리는 폭죽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콩알탄을 한 무더기로 사와 30분 만에 뚝딱 폭파장면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 스턴트맨을 꿈꾸던 정씨가 특수효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10대 후반, 충무로의 특수효과 기사였던 김철석씨를 만나면서부터다. “고향(경남 함양)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 가출해서 무작정 상경을 했어요. 그냥 집이 싫고, 학교가 싫은 문제 학생이었죠. 하하.” 딱히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이 남산 벤치를 침대삼아, 충무로 다방을 놀이터삼아 지내다 웨이터 보조로 들어간 한 살롱에서 김씨로부터 “너, 나 한번 따라다녀 볼래?”라는 제안을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특수효과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을 때예요.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매트리스 준비하고 나뭇가지에 불피워 연기 만들어내는 정도였죠”.

    김철석 기사 밑에서 10년 남짓 일한 뒤 독립해서 자신의 이름을 달고 특수효과를 담당한 첫 작품은 아동물인 <바이오맨>(1988)이었다. <구미호>(1994)를 할 때까지 6년 동안 그는 아동영화만 100편 이상 했고, 거기서 거의 모든 특수효과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편씩 찍어내니 매순간이 맨땅에 헤딩하기였지요. 아동물은 대부분 SF고 성인들이 보는 영화처럼 리얼리티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스크린 안에서 온갖 실험을 다 해볼 수 있었어요.” 같은 폭파장면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필요한 규모나 효과는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그는 화약 배합을 조금씩 바꿔가며 매일 실험을 했다. 네번이나 껍질이 홀랑 벗겨진 오른손과 흉터투성이의 두 다리는 충무로 특수효과 1인자 정도안을 있게 한 학습의 기록물이다.

    “아찔할 때도 많았죠. <리베라 메>의 주유소 탱크로리 폭파장면 때만 해도 30분 안에 촬영을 종료해야 했기 때문에 미친 듯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겨우 마쳤는데 알고보니 B카메라 기사가 주유소 지붕에 있었던 거예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지요.” 스펙터클이라면 원없이 하고 있는 정씨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대규모 전쟁영화의 특수효과를 맡아보는 것이다. “벌써 우리 팀 인원이 13명입니다. 팀 전체가 달라붙어 매달릴 만한 전쟁영화 한편 해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인터뷰 전날도 촬영 준비하느라 거의 잠을 못 잤다는 정씨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예스터데이> 마지막 장면인 배 위의 폭파장면을 위해 양수리로 달려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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