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2년03월12일 제400호 

여의도 맏형, 신화를 만든다

  • 위폐감별사 서태석 외환은행 외환부 차장
  • 제복을 사랑한 당찬 여장부
  • 머리에 접착제를 발랐나
  • 불꽃놀이는 내게 맡겨라!
  • 여의도 맏형, 신화를 만든다
  • 전쟁을 꿈꾸는 ‘폭파의 제왕’
  • 때묻은 소품, 추억의 실록
  • 녹슬지 않은 크래커 천적

    고수열전 - 18년 경력의 안병원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사진/ "누가 국회의원 비사관 수명이 짧다고 하는가." 오십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의도를 지키고 있는 안병원 정무비서관. (이용호 기자)


    “그를 빼놓고는 비서관, 보좌관의 세계를 얘기하지 말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최고의 비서관을 찾아헤매던 기자에게 몇몇 취재원들은 그를 천거했다.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안병원씨. 그는 이 바닥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국회의원 비서관·보좌관들은 생명이 짧고 이직률도 높다. 국정감사 때 모시는 ‘영감’이 언론발을 못 받으면 가차없이 잘린다. ‘영감’ 잘되라고 지역구를 발로 뛰면 곧 “의원 지역구를 노린다”는 소문이 떠돈다. 때문에 40대 중반쯤 되면 금배지를 달거나 알아서 은퇴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그는 18년이나 버텼고, 어느덧 57살의 ‘노땅’이 됐다. ‘가방끈’도 짧다. 부안농고 졸업장이 최종 학력. 그러나 그는 85년 4월 박실 의원(12대) 보좌관으로 국회에 첫발을 디딘 이후 오탄(13대), 박정훈(14, 15대), 이만섭 국회의장(16대)까지 4명의 의원을 별탈없이 보좌했다. 그들과 함께 문화공보위, 산업자원위, 재경위, 국방위 등 웬만한 상임위는 다 돌았고, 이제 국회의 핵심인 의장실 정무비서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만섭 의장을 도와 각 정당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핵심 임무다. 지난 93년 보좌관협의회를 창립해 ‘영감님’ 등쌀과 국회사무처 직원들의 위세에 기죽었던 보좌진 권익향상의 지평을 여는 등 보좌관들의 맏형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보좌진 권익 챙기고 만학의 꿈 키워

    어떻게 뒷말이 무성한 여의도 바닥에서 그 오랜 시간을 버텨냈을까. 모든 게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시는 의원과 정치적 노선이나 생각이 다를 때는 정말 괴로웠다. 의원을 위해 진심으로 직언하는데 ‘흑심이 있는 것 같다’는 주변의 충동질에 더 귀기울일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다.” 어쨌든 그 많은 고비를 넘겼으니,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법하다. 그는 최고의 비서관·보좌관이 되는 덕목을 4가지로 요약했다. “참을성, 인간적인 정과 공무를 구분하는 본능, 의원의 성장이 나의 발전이라는 확신, 그리고 섬돌에 머리를 찢는 자세로 사활을 걸고 직언하는 대담함이다.”

    비서관·보좌관들은 본능적으로 의원의 심기부터 살핀다. 싫어하는 얘기는 아예 피해가는 게 관례다. 의원들이 ‘밥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의원들의 위세에 기대 자그마한 권력을 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걸어갔다. 민원인이 주는 단돈 몇만원도 반드시 의원에게 보고한 뒤 사용처를 결정했다. 반면 ‘입바른’ 소리를 할 때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는 처음 몸을 의탁한 박실 의원이 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을 고심하던 때를 기억했다. “역사적 명분, 의원 개인의 정치적 실리, 정치지형의 변화 가능성 등을 볼 때 옳지 않은 판단이라고 확신했다. 한번에 1시간30분씩, 모두 5번이나 언쟁하듯 진언했다.” 박실 의원은 결국 조언을 받아들였고, 재선에 성공했다.

    물론 모든 조언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차없이 잘리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여의도의 현실이다. 어쩌면 ‘입바른’ 소리를 받아줄 만큼 인간성 좋은 의원들만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말한다. “누구에게건, 특히 윗사람을 향해 조언할 때는 사적인 이익이나 감정을 개입시키면 결코 오래 버텨낼 수 없다. 나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 결과를 겁낼 이유가 없다.”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한 지난해 경기대 법대 야간과정에 입학해 만학의 꿈을 키우고 있는 그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처세술을 가르쳐주고 있는지 모른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