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특별기획 등록 2002.01.30(수) 제395호

[특별기획] ‘금강산 특구’가 다가온다

국내외의 자유로운 투자 보장과 육로 개방 기대… 북한 군부의 양보도 실감

가까이 다가오는 금강산은 온통 눈꽃으로 뒤덮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잠시, 장전항 부두에 첫걸음을 내디디자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관광객이 묵을 해금강호텔과 출입국관리소 건물만이 잿빛 안개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었고, 한창 북적일 때의 활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금강산을 찾는 남쪽 관광객의 수가 뚝 떨어진 탓이다.

북쪽 인사들의 근심어린 질문공세

현대아산은 관광객의 감소와 자금난으로 동해항과 부산항에서 금강산을 오가던 금강·봉래·풍악호 3척의 대형 유람선을 지난해 7월 돌려보냈다. 쾌속선인 설봉호 1척만을 띄워 금강산 뱃길을 잇고 있다. 1주일, 더러는 2주일에 한 차례 근근이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관광객은 매번 300∼400명 안팎이다. 그나마 관광객이 없는 평일에는 부두에 묶여 하릴없이 머문다. 금강산 관광길의 물이 한창 올랐을 때 하루 2천여명의 남쪽 관광객이 장전항 부두에 머물렀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어려운 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대아산쪽은 설봉호, 금강산 현지의 시설운영, 인건비 등으로 매달 20억∼30억달러 정도 적자를 보고 있다. 남쪽 관광객 중에는 1월 중순의 이번 뱃길이 마지막 금강산 여행이 될지 몰라 서둘러 합류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금강산 관광 중단을 북쪽이 더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설봉호밖에 안 옵니까. 금강산 뱃길이 곧 끊긴다는데 사실입니까?” “남쪽에서는 금강산 살리기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어떤 효과가 있습네까?” 금강산에서 만난 현지 안내원 등 북쪽 인사들의 근심어린 질문은 끝이 없어 보였다. 마침 그때는 현대아산의 김윤규 사장과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관계자 사이에 금강산 관광 활성화 방안을 놓고 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때였다. 북쪽 사람들은 남쪽 관계자들 이상으로 회담 결과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틈만 나면 회담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묻곤 했다. 그랬다. 북쪽은 금강산에 남쪽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분명 원치 않아 보였다. 적어도 금강산에서 만난 적지 않은 북쪽 인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왜 이들은 금강산 관광이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돈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현대아산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돈을 금강산 관광사업에 쏟아부었다. 시설투자비 1억4천만달러에다가, 관광사업 대가로 이미 3억8천만달러를 북쪽에 건넸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북한은 해마다 1억4400만달러씩, 2005년 3월까지 모두 9억4200만달러를 손에 쥐게 된다. 북한의 한해 수출총액과 맞먹는 덩치다.

북한, 관광사업 많이 배운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공동으로 벌여가면서 부수적으로 배우는 것들도 적지 않다. 관광사업을 통해 어떻게 외화를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지, 관광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가 필요한지, 호텔·식당이나 숙박시설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북쪽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학습하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요즘은 북쪽 사람들이 먼저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오는 경우도 부쩍 많습니다. 관광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죠. 이 사람들 많이 변했어요.” 현지 현대아산 사무소 관계자의 귀띔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곳이 있다. 현대아산이 20억원을 들여 시설투자를 하고 북한 주민이 직접 경작하는 영농장이다. ‘고성남새온실농장’이라는 이름을 단 이곳에는 100명 넘는 현지 농민들이 남쪽 기술자로부터 다양한 선진 영농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3만평 규모의 땅에 비닐하우스 면적만 1만2천평인 이곳에는 상추, 무, 겨자채, 쑥갓, 통배추, 과일 등이 추운 날씨에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그동안 전력과 비닐하우스 부족으로 겨울에 야채나 과일을 생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완전 유기농법으로 생산되는 각종 야채, 과일들은 현지 북한 주민들에게 공급되고 다른 일부는 온정각 휴게소 식당에 보내진다. 서울을 떠난 지 1년6개월이 된다는 영농기술자 김선만씨는 “이곳 지역 주민들은 겨울에도 싱싱한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데 대해 크게 놀라워하고 있다”면서 “사정이 허락되면 북한 전역에 이런 비닐하우스 영농장을 지어 북쪽에 선진기술을 전수하고 싶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마 관광’ 많이 누그러져

북한 군부의 태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많은 남쪽 관광객은 이미 개방된 구룡폭포나 만물상 산행 코스와 달리 해금강 코스를 돌아보고는 다들 놀란다. 관광객은 해금강 코스 길을 가다보면 적지 않은 군 부대와 초소를 발견한다. 심지어 레이더 기지도 길 건너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더구나 천하절경이라는 해금강은 민통선 철책선 안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 남쪽 고성 통일전망대가 어렴풋이 보이는 곳이다. 금강산 뱃길이 뚫리기 전만 해도 이곳은 남쪽과 대치하는 최전방 군사기지였다. 지금도 군데군데 언덕에서 삐죽이 나온 포신이 눈에 띈다. 하지만 북한 군부는 가능한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금강 관광을 하면서 큰 불편함이나 위압감을 느낀다고 불평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북한 군부는 남쪽과의 관계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군부가 군사 요충지를 수십만명에 이르는 남쪽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금강산에 왔다는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도 “군부의 양보가 실감난다”면서 “북쪽이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금강산 지역개발은 군부의 동의없이는 돌 하나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분명 금강산 현지의 변화는 가볍게 평가할 대목이 아니다. 군인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군데군데 서 있는 인민군 초병들의 눈빛이 많이 변했어요. 처음에는 적대감을 품은 경계의 눈초리가 분명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벌써 네 차례 금강산을 찾았다는 김아무개(49)씨의 말이다. 지금까지 주요 관광길을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이나 군데군데 서 있는 인민군 초병들이 남쪽 관광객에게 심리적인 위축감을 줘온 것은 사실이다. 이제 이들의 눈빛에서 관광객을 맞는 따뜻한 눈길이 느껴진다는 게 적지 않은 관광객의 지적이다.

금강산 관광은 이른바 ‘하지마 관광’으로 불리곤 한다. “사진을 찍지마라”, “여길 가지마라, 저길 가지마라”, “말조심 해라” 등등. 하지만 이런 제한들도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온정각 휴게소에서 온천장까지 약 1km 구간도 완전 개방됐다. 이 구간에는 철책도 없으며 관광객은 온천욕을 마친 뒤 소나무숲 향내를 맡으며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쪽 기업들이나 단체들이 금강산 지역에서 열고자 하는 각종 이벤트나 대중 공연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황진이 공연을 시작으로 산악자전거 대회, 영 오케스트라 연주회, 국제모터사이클 투어링이 열렸다. 이번 관광길에는 대중가수로서는 처음으로 <향수>를 부른 이동원씨가 금강산 문화회관 무대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체면과도 밀접한 관계

또 금강선에 가면 밤에는 다들 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관광객이 객실에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정도로 할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텔라운지에는 외국인 밴드가 부르는 팝송과 한국 대중가요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다른 한쪽에는 단체 노래자랑이 걸쭉하게 벌어지곤 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서울방송뿐 아니라 홍콩 스타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즐길 수 있다. 올 여름에는 장전항을 일부 둘러싸고 있는 성북리 지역에 해수욕장이 개장된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안정되게 자리잡기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개선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이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자체 수익을 남기려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 당국의 금강산 특구 개발 의지는 확실해 보인다. 금강산 관광객 유치의 핵심 관건이라 할 수 있는 관광특구 지정과 남북한 연결 육로 개방도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쪽 일반 안내원들까지도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한 관계자는 “관광특구와 관련해서는 이미 큰 방침이 섰다. 거의 준비가 다 돼 있다. 실무적인 조율만 남았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들도 북쪽 인사들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는 시기다. 남북관계, 북미관계 등 주변정세가 변수라는 것이다.

금강산 실험의 성공여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면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상 북한 주민들까지도 금강산 사업은 김 위원장이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 만큼 어물쩍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금강산 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다. 지난 2000년 9월에는 현지를 직접 방문해 금강산 온천장, 온정각, 해상호텔 등의 주요 시설을 꼼꼼히 살펴보고 돌아갔다. 이때 김 위원장이 관광특구로 지정하겠다고 약속하고 관련 서류에 서명까지 했다. 현대아산과 북쪽은 지난해 11월에 6차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 개방이 큰 진전을 봤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금강산이 특구로 지정된다는 것은 국내외의 투자가 자유로워지며 투자자산과 자유로운 경영 및 영업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과실송금이 가능해지며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다. 출입국이 자유로워지며, 특구 내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허용된다. 내외국인의 투자로 골프장, 스키장 등 각종 오락시설과 편의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야간에도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하다. 앞으로는 꼭 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낚시나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관광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윤수 현대아산 이사의 설명이다. 그간 법·제도적 투자보장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아 망설였던 내외국인이 관광특구 지정에 따라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는 얘기다.

현대아산, 자금난 버티기가 문제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서는 남쪽의 강원도 간성과 북쪽의 금강산 온정리간 7번 국도 13.7km를 이으면 된다. 불과 20여분 거리다. 이것이 성사된다면 금강산 관광비용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이 지역은 지뢰로 뒤덮인 극히 민감한 군사분계선 구간이라 군사당국간 회담을 열어 군사당국자간 신뢰구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래서 현대아산과 북한은 관광특구 개발을 시작하면서 점차 육로를 연결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관광특구가 완성돼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전까지다.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이는 현대아산으로서는 적어도 5년에서 10년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일단 정부는 보수층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현대아산에 대한 지원방침을 결정했다. △이산가족, 학생, 교사 등에 대한 금강산 관광경비 보조 △한국관광공사에 남북협력기금 대출 상환조건완화 △금강산 현지 외국상품판매소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어쨌든 현대아산은 정부의 이번 조처로 일시적인 숨통은 트게 됐다. 하지만 이 조처는 정부 스스로 인정했듯이 ‘응급조처’의 성격이 짙다. 남북화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금강산을 애물단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 현대아산의 용단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금강산=글·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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