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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때 평양 개방?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 남-북, 북-미관계 급물살 조짐
앞으로 1∼2주가 고비
북한 당국도 12월22일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를 통해 “당국 사이의 대화와 모든 형태의 민간급 회담 및 접촉을 모색해야 하며 그것을 적극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올 4∼6월에 남과 북에서 열리는 월드컵, 아리랑축제, 6·15 남북정상회담 3주년 기념행사 등을 큰 줄기로 해서 전례없는 남북간의 접촉, 왕래, 교류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조짐은 벌써부터 여기저기 눈에 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남북한 학자 사이의 대규모 공동학술회의 개최를 비롯해, 월드컵-아리랑축제연계 사업 등을 협의하기 위한 학계·문화계·기업계 인사들의 북쪽 사람 접촉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현대아산 관계자들의 말을 모아보면, 일단 금강산 관광사업이 활기를 찾게 되면 중단된 남북 당국간 대화는 물론, 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우선적으로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어렵게 금강산 관광 지원을 결정한 만큼 북쪽도 그에 상응한 조처가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앞으로 1∼2주가 고비”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북한과 현대아산쪽과의 최근 회담에서 북쪽의 언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최소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활성화에 필요한 관광특구와 육로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당국간 회담 재개는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24일 ‘2002년도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지난해 6차 장관급 회담 이후 끊어진 당국간 회담을 복원하기 위한 접촉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2월20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남북관계 진전을 이끌어내 북한의 변화를 부시에게 보여주고 상응하는 조처를 요청할 예정이다. 정부는 남북현안을 적십자회담, 금강산당국회담, 남북경협추진위원회, 군사당국회담 등 분야별로 추진할 작정이다. 이미 회담별로 합의된 것들이 있는 만큼 북쪽에 주로 합의 이행을 촉구하기로 했다. 사실 북한은 그간 직·간접적인 대화채널을 통해 금강산 사업에 대한 남쪽 정부의 지원 의지만 보여주면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넌지시 비쳐왔다. 말하자면 남쪽에서 먼저 명분을 던져주길 기다려왔던 것이다. 특히 석달이나 밀린 금강산 관광 대가는 북쪽 강경파들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보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오직 심각한 경제난 극복에 보탬이 될 외화를 벌기 위해 금강산의 철조망을 걷어놓았는데 정작 한푼의 달러도 안 들어오니 남쪽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터에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 지원결정을 내림으로써 남북대화에 파란 불이 켜진 것이다.
‘월드컵 때 고위인사 파견’ 검토중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쪽과의 대화재개에 적극 나서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체제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그토록 갈망해왔던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추진해온 나름대로의 개혁·개방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최종 목표인 북미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도 다른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이 1월22일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에서 “남조선에서 누가 집권해도, 어떤 정권이 나온다고 해도 6·15 남북공동선언은 변함없이 고수되고 철저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혀 주목할 만하다.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읽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관계와 병행해 북-미관계 개선에도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임스 레이니, 스티븐 보스위스, 리처드 워커, 월리엄 글라이스틴 등 전직 주한 미 대사들의 평양방문 초청사실이 알려진 터다. 하지만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미 카터 등 전 미 대통령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을 대거 초청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4월29일부터 6월26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랑축제도 이런 맥락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행사를 한국의 월드컵을 방해하기 위한 맞불작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북한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월드컵개막식 행사 때 누구나 알 만한 고위급 인사를 축하사절로 파견하거나 예술단을 보내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요량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 참에 외국인들에게 평양을 개방해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불량국가라는 편견을 씻어내버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부시 정권의 대북 시각이나 강경정책을 돌려놓는 데 어느 정도 보탬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난국 돌파’ 일회용 제스처?
통일부 관계자들은 이런 북한의 태도가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는 이라크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제스처로 보고 있다. 미국의 공세에 문을 닫고 맞서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정책을 폄으로써 창끝을 피해가려 한다는 풀이다.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선임자들 시기에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극히 악랄하고 위험천만한 강경정책, 사상최악의 군사적 패권정책”이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북한을 대상으로 반테러전쟁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노림수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의 이런저런 대외유화 제스처가 지금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미, 대남관계 개선이 확실한 목표이기는 하나 남쪽의 복잡한 정치일정과 미국의 정책변화 등을 살피면서 나아갈 걸음 폭을 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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