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 2001년12월12일 제388호 

길을 떠나서 나를 만나리!

일상을 등지고 나 홀로 떠난 겨울여행… 고개를 넘고 바다에 이르러 삶을 돌아본다


사진/ 두물머리의 아침. 봄철이면 물안개가 아름다워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뿐 아니라 사진작가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느티나무는 40여해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푸르름을 뽐낸다.

“… 내가 노래를 부르며 공허해지는 것은 유행을 눈치보며 따라가려 하고/ 돈 몇푼에 내 삶의 노래를 접어두고서 다니기 때문이요./ 흔들리지 말아야 할 나의 믿음과/ 미련한 듯 한길만을 가야 할 발걸음이/ 이렇듯 작은 유혹 앞에 휘청거리고….”(안치환 <13년 만의 고백>)

자동차 오디오는 밤새도록 노래를 토해냈다. 날이 퍼렇게 선 칼이었다. 수도 없이 칼침을 받고서야 통증을 느꼈다. 후회를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김지하의 ‘오적’ 을 외우며 교과서가 일러주었던 세상을 지웠고 ‘새벽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부으며 김남주의 ‘자유’를 그리지 않았던가?

유혹에 무릎 꿇었던 숱한 나날들


사진/ 속초 등대. 등대에 오르면 영금정뿐만 아니라 동해의 푸른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


강 건너 가든과 카페, 그리고 모텔의 불빛들은 밤새도록 강 위까지 긴 꼬리를 내리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넌지시 귀엣말을 건네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식욕과 성욕이라고…. 안치환의 노래 앞에 벌거숭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유혹에 무릎을 꿇었던 적지 않은 날들의 기억이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나이를 더하면서 분노와 함께 들이켜던 막걸리는 웃음과 함께 마시는 맥주로, 양주로 바뀌어갔다. 그러면서 최루탄 냄새를 견디고 보도블록을 깨던 날들, 벼리던 세상은 술자리의 안주로 전락해갔고 몸은 편안함에 길들여졌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머리는 후회하면서도 몸은 그 포만감에 무릎을 꿇었다.

강 건너 불빛이 희미해진다. 강을 물들이던 모텔과 가든의 웃음 머금은 유혹들이 어둠과 함께 사라져간다. 바람을 가르던 자동차 소리까지 잦아들고서야 팔당호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동전 네개를 받아 먹고서야 자동판매기는 커피 한잔을 내준다. 목을 타고 넘는 한 모금 커피가 밤새도록 몸을 데워주던 자동차의 히터보다 더 따듯하다. 해가 산을 넘도록, 눈이 부시게 빛을 발하도록 물안개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두물머리는 햇빛에 간밤의 유혹을 떨치고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강 건너 어깨겯은 산들은 보랏빛이다. 섬의 자작나무는 하얗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저렇게 겨울을 이기고 다시 초록으로 돌아가리라. 거울처럼 잔잔한 강 위에 커다란 삼각형이 새겨진다. 언제 날아들었는지 겨울철새들은 벌써부터 먹이를 구하고 있었다. 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강가의 느티나무도 여전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 두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땅이름이다. 양수리란 한자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인 지 이미 오래이고 팔당댐과 함께 들어선 호수에 강줄기도 희미해졌지만 마을사람들은 두물머리란 이름을 여전히 간직해오고 있었다. 두물머리란 이름에는 살림살이가 넉넉했던 옛날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담겨 있었다. 길이 변변하지 못하던 시절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을 따라온 온갖 산물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어디 먼 여행을 떠나는 이들일까? 느티나무 아래는 아이 둘을 앞세운 젊은 부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조무락거리는 아이들의 손이 엄마아빠의 손까지 잡고 느티나무의 허리를 둘러보지만 손은 끝내 맞잡아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이 느티나무의 허리를 감았을까? 밤을 지새운 몰골이 볼썽사나웠던 모양이다. 제 엄마는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 한장을 부탁하는데 아이들은 저만큼 달아나 좀처럼 다가오지 않으려 한다.

가족이 떠난 자리에 한줌 햇살이 따듯하다. 느티나무에 등을 기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다. 하늘이 유독 파란 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게 남았기 때문이리라. 등걸에 기댄 등이 써늘한 것은 윤동주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때문이다.

불혹의 문턱을 넘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나이임에도 하루하루 후회로 점철되는 삶을 이어간다. 패랭이꽃 한 송이를 키우겠다고 다져 잡았던 가슴에는 이미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강가 나룻배에 머지않은 미래가 겹쳐진다. 제 역할을 포기당한 배는 이미 밑창이 뚫렸는지 반쯤 물에 잠긴 채 썩어가고 있었다. 가끔씩 찾아드는 열병이 다시 찾아드는지 눈가가 시리다.

한 송이 꽃을 피우겠다 다짐했건만…


사진/ 알프스리조트 한쪽에 남아 있는 옛 산장. 본격적인 리조트가 개발되지 잊너에 스키어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서쪽으로 향하는 해를 등지고 다시 길을 떠난다. 동해로 가는 길. 오랜 공사는 이미 군데군데 마무리지어져 있었다. 4차선으로 넓어지고 곧게 펴진 길을 자동차들이 쏜살같이 흐른다. 그 흐름을 거스를 용기는 가끔씩 길을 막는 무인속도감시기 앞에서만 나타난다. 딱히 급할 것도 없는데…. 왜? 무엇 때문에 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가 길게 느껴지도록 세상은 점점 더 급하게 돌아간다. 그 흐름 앞에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스스로의 가치를 더하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일지 모른다.

소양강을 끼고 도는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 오랜 가뭄에 드러난 바닥이 초록으로 빛난다. 곧 추위가 닥쳐오는데, 이미 강가에는 얇은 얼음이 얼기 시작했는데도 생명을 키우는 자연이 놀랍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고서야 이미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온 것을 깨닫는다. 속도를 늦추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길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세월의 두께를 이고 선 작은 집…. 그 많은 것 가운데는 삶의 가치를 일러줄 스승이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령’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고개답지 않게 느릿느릿 길게 누운 진부령에 오른다. 명태를 말리던 덕장이 늘어섰던 길 옆에는 ‘스키대여’라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알프스리조트는 진부령 고갯마루에서 산을 오르는 길을 내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하늘은 아직 눈을 주지 않았지만 슬로프는 벌써 하얀색이다. 문명은 편리함을 주었다. 눈이 필요하면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에는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이 대가로 치러졌다.

우리나라 스키 역사와 함께한 알프스스키장은 예전에는 이맘때면 온통 눈밭이었다. 여름철 고랭지 채소를 키우던 비탈이 슬로프였고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한 서울 부부가 지은 목조건물이 스키어들의 보금자리이던 시절이었다. 리프트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그 시절 두발로 언덕을 오르느라 흐르던 땀을 잠깐의 활강으로 위로하던 스키어들은 밤이면 목조건물에 모였다. 주인이 직접 내오는 먹을거리를 나누고 노래로 밝히는 밤이 있던 그 시절, 노래로 서로를 알고 맥주 한잔에 서로를 나누고 비좁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던 그 시절…. 리프트로 싱싱 언덕을 오르고 밤이 이슥하도록 불을 밝히고 스키를 즐기는 지금보다 그 시절이 더 그리운 것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길은 다시 고개를 내려간다. 고개다운 비탈도 잠깐, 진부령은 이내 다시 길게 눕는다. ‘제추골 민박’, ‘소똥령 이야기’ …. 진부령 내리막을 지키고 선 간판들을 그저 스쳐 보내지 않는다면 때로는 자연과 싸우고 벗하며 삶을 살아낸 옛 사람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오늘날의 진부령 모습은 일제시대 신작로를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진부령으로 자동차 구경을 나왔던 추억을 간직한 인근 노인들의 기억 속에서 진부령은 ‘소똥령’이니 ‘서울길’이니 하는 여러 개의 고개이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물을 만나면 돌아가고 비탈을 만나면 내려서며 넘던 옛 고개는 하루에 넘기 힘든 먼길이었다. 주막이 들어서고 그 주막신세를 지던 봉물장수들의 입을 통해 글이 기록하지 않은 역사가 전해졌다. 그 속에는 가깝게는 38선 이북이던 시절 물려받은 재산을 다 털어 부리던 머슴들에게 나누어주고 사회주의자의 길에 들어섰다 수복 뒤 몰매를 맞고 죽은 낯선 이의 한이 들어 있다.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면 사금을 캐느라 계곡을 휘집어놓았던 일본의 다이너마이트에 난 상처가 드러나고, “곰마냥 돼지마냥” 움을 파고 굴피지붕을 잇고 일년에 한두번 쌀밥에 만족하며 삶을 이어가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믿음없이 달콤하게 읊조린 나의 사랑


사진/ 건봉사 불이문. 절집 일주문의 기둥은 대부분 두개이지만 건봉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불이문의 기능은 4개이다. 금강저를 새기고 사천왕상을 세우지 않았다.


노인은 건넨 담배연기로 한용운의 술취한 모습까지 만나게 해준다. 만해는 건봉사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가끔 가슴속에 이는 화기를 참지 못하면 저 멀리 간성에 내려가 술을 마시고 일본인들과 그들에 빌붙은 조선 사람들과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날이면 진부령 골짜기에는 만해의 설운 노래가 들렸다고 한다.

건봉사 가는 길이 멀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진부령을 내려서 왼쪽으로 다시 고개를 넘는 건봉사 가는 길은 검은 빛이 선명한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민간인통제구역에서 벗어난 1989년 이후 고성군은 건봉사로 가는 길을 꾸준히 다듬었다. 길이 넓어지면서 인근의 군부대도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건봉사 입구에서 만해를 만난다. 불이문 밖에서 만해는 ‘사랑하는 까닭’을 말하고 있었다. 만해는 당신이 “…나의 백발을, …나의 눈물을,… 나의 죽음까지도” 사랑해줄 것이라 믿는 자신의 마음을 ‘사랑하는 까닭’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면의 밤을 지새며 하얀 종이에 적어내려갔던 나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함께 떠나지 못한 나의 반쪽에게 부끄럽다. 달콤하게 읊조렸던 나의 사랑을 믿고 내 옆을 지켜주는 그를 속였던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그저 소유욕의 또다른 표현인 것을…. 다시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머리에 서리가 내리면 둘이 손잡고 오솔길을 거닐며 죽음을 맞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야겠다.

불이문을 들어선다. 있어야 할 사천왕상이 없다. 불이문의 돌기둥에 새겨진 금강저가 사천왕상을 대신하는 것이라 한다. 한국전쟁 때 건봉사의 모든 가람을 태워버린 불길이 미치지 못한 탓에 불이문 기둥에 새겨진 금강저는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금강은 원래 다른 많은 신화에서도 발견되듯이 천둥, 삼지창, 작살 또는 천신들의 화살다발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파괴할 수 없는, 순수한 ‘절대’ 또는 ‘진리’를 말한다고 한다.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면 10개의 문양을 새긴 돌기둥을 만나게 된다. 대승불교의 기본수행법인 십바라밀을 상징화한 것이다.

머리를 깎고 절집에 들어선 것조차 부족해 십바라밀을 새겨두고 자신을 채찍질하면서까지 찾고자 했던 구도승들의 진리는 무엇일까? 그들이 찾던 절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푸르렀던 시절 간직했던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는 글귀를 적은 책갈피는 지금 어느 책에 꽂혀 바래가고 있을까?

그들이 찾던 절대는 어디에 있을까


사진/ 김일성 병장에서 내려본 화진포 바닷가는 <가을동화>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위).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두른 화진포. 최북단의 호수로, 겨울에 많은 철새들이 날아든다(아래).


결국 바다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화진포. 김일성과 이승만, 그리고 이기붕…. 절대권력을 꿈꾸던 이들의 별장이 있는 그곳에 사랑을 찾는 발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입장료까지 받을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드는 것은 드라마 <가을동화> 때문이다. 백사장을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이 비슷비슷하다. 그들을 화진포에 이끈 것은 <가을동화>의 준서와 은서의 사랑이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젊은이들도 준서와 은서의 표정과 모습을 흉내내며 웃음을 날린다. 사랑하는 방법까지도 획일화시키는 매스미디어의 위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적어도 사랑이 서로를 위하는 것임을 드라마는 말하고 있으니까.

화진포 언덕에 자리잡은 김일성 별장 앞에는 6살의 김정일 비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반공기념관인지 김일성기념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 건물에 김일성이 머무른 적은 한번도 없다. 지금의 건물은 무너진 건물자리에 새로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적으로 맞섰던 이들의 별장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나오는 길. 화진포 뒤로 병풍을 친 백두대간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철새들의 낙원이라는데 새들이 모습이 드물다. 관광지로 개발한다며 호수 주변으로 순환도로를 낸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모여든 몇 마리 겨울새들마저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날리는 갈대의 씨앗을 헤아리는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고니 한쌍이 호수 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행여 물살이라도 일까 조용조용 물 위를 떠도는 고니는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다른 새들이 날아올라도 그저 묵묵히 물 속에 머리를 박을 뿐이다. 겨울이면 고니떼들로 화진포는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는 무대와 같은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는 해는 재촉을 핑계 삼아 다시 길을 떠난다.

진부령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길은 속초로 이어지고 속초의 길은 미시령으로 모아진다. 급한 마음에도 발목을 잡는 곳은 속초항구의 영금정이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마치 거문고를 연주하는 소리처럼 들렸다는 영금정의 모습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일제시대 속초항을 축조하면서 영금정의 바위산은 깨어져 방파제가 되고 부두가 되었다. 다만 다이너마이트를 피한 석산 일부가 바다로 남아 파도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남아 있는 바위와 그 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속초에 올 때마다 영금정을 지나치지 못한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발길이 영금정으로 향하는 것은 파도도 지우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대문이기도 하다. 가끔 파도에 휩쓸려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까지 얽히면 바다는 분노하는 신으로 되살아나고 바위는 그 신을 위로하는 제상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싸움꾼이어야 했던 80년대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다른 길을 택했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을 따라 그이도 자신의 북과 함께 다른 길을 택했다. 그리고 아직 그를 위한 제상을 차리지 못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음으로….

결국 미시령을 다시 넘는다. 고개를 내려가는 자동차의 불빛들은 어둠을 몰아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왼쪽의 울산바위는 시커먼 그림자로 하늘을 향해 이빨을 세우고 있다. 옛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이곳 어딘가에 천후산이 있다고 했다. 울음을 우는 산을 아직 찾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미 이름이 몇번은 바뀌었을 것이니 좀처럼 그 산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울산바위라는 이름으로 저 봉우리 어딘가가 천후산일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다시 도시의 불빛 속으로 돌아온다


사진/ 미시령의 야경. 머릴 환하게 빛나는 불빛이 집어등 빛이고 화려한 불빛이 속초시다.


고갯마루 휴게소에서 다시 동해를 바라본다. 휘황한 물을 잔득 밝혀놓은 속초의 야경 너머 바다에 별이 떴다. 유혹과 혼돈으로 빛나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기꺼이 노동의 고단함을 치르기 위해 고기잡이 배들이 밝혀놓은 집어등 빛이 하늘의 그 어떤 별보다 더 밝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 작은 유혹 앞에 휘청거리고/ 이렇듯 어둠 속에 서성거릴 때/ 난 외로워지면서 술처먹는 하루 삶에 못질을 하며/ 이 고통을 견디는 내 가슴을 다시 찾게 된다오.” 돌아오는 길 자동차 카세트라디오는 여전히 안치환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한겨레 출판기획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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