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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1 등록 2004.02.05(목) 제495호

[특집] 사회협약이 실업을 구할까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안 만들기 위해 실무협의…‘한건주의’로 흐르면 아무 소용 없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자리는 성장, 복지, 분배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양수겸장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논란과 관계없이 노동계와 사용자, 정부가 함께 추구할 만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추진되고 있다. 노-사-정 대표들이 지난해 말 노사정위원회에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뒤, 2월7일까지 합의안을 내놓는다는 목표 아래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협약’은 한국 노사관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임금과 고용의 정치적 교환?

물론 사회협약을 체결한다고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김훈 노사정위윈회 전문위원은 “2월 초를 목표로 기초 합의안 작성 작업에 들어갔다”며 “일자리 사회협약은 우리 사회에 일자리 만들기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며, 실제 일자리 창출은 협약 정신을 바탕으로 개별 사업장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투자가 얼마나 일어나고 몇명이나 새로 고용될 것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고용창출 의지를 선언하는 데 사회협약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일자리 없는 성장이 한국 경제의 주요 모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노사의 공통 이익은 일자리 창출”이라며 “일자리 창출은 직접적으로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고 사용자가 사회에 기여하는 중요한 봉사이며, 동시에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서비스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사회협약은 생산성 연대, 비정규직 처우 개선, 효율적 인력 운용의 기본방향, 취약 노동자 보호 등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자리 문제를 노사 관계에서 접근하는 노사정위원회 사회협약은 임금 논의를 한복판에 깔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임금과 고용의 정치적 교환’이 형성될 수 있을까? 일자리 협약 협상 테이블에 노동계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일자리 만들기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인데 이런 대의에 따라 노동쪽도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며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계가 임금안정에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쪽이 정리해고를 앞세운 경영합리화 투자로 일관해온 데서 벗어나 고용친화적 투자에 나서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해소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대기업이 연말에 원청회사 정규직한테 주는 성과급 돈잔치를 줄이고, 이를 중소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복지에 균등분배해야 노동계도 임금안정에 협조할 수 있다”며 “비정규직 임금도 일단 정규직의 80∼85% 수준으로 올리고 단계적으로 몇년 안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묵은 숙제’까지 해결하려는 사용자

그렇다면 임금안정 협조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김 총장은 “임금안정이 동결이나 삭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일자리가 없어 고통 당하는 실직자들의 문제는 가슴 아프지만 우리가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라고 나설 수는 없다”며 “주고받기식으로 고용과 임금을 맞바꾸는 건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기업이 정치권에는 수백억원씩 갖다바치면서 “투자할 돈이 없으니 노동자 임금을 깎자”고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쪽은 호봉승급분까지 포함한 대기업 임금 동결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해묵은 숙제까지 이참에 들고 나오고 있다. 일자리를 핑계로 평소의 요구를 모두 관철하려 한다는 지적에 대해 경총 이호성 팀장은 “출자총액제한은 투자의 대표적인 걸림돌이고 덮어두고 갈 수 없는 사안”이라며 “노사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일자리 만들기 논의에 접근하고 있는 상황인데, (재벌개혁 등) 다른 정책적 목표를 희생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출자총액제한 폐지를 받아줄 것인지는 정부가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훈 전문위원은 “합의안에 노-사-정이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각각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를 담고, 임금문제에 대해서도 선언적 의미에서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사협정은 이른바 ‘생산성 연대’로, 노동계는 생산성 범위 안에서 또는 물가인상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임금인상 자제로 늘어난 수익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쓴다든지 투자를 확대해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의 노사 대타협의 ‘일자리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물가인상률 이상의 임금인상은 자제한다는 약속은 할 수 있겠지만, 임금을 아예 동결하는 식의 합의는 한국 노사관계에서 불가능하다”며 “중앙에서 사회협약 분위기를 몰아가 개별 사업장에서 임금과 고용에 대한 구체적인 타협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노사정위원회 일자리 협약 추진이 한건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연구위원은 “일자리 문제는 당장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비정규직·학생·여성·장애인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중장기적인 공론화의 장이 돼야 한다”며 “일자리를 갖고 있는 조직노동자들만 참여해 논의하다가 판이 깨지면 일자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한테 피해를 주게 된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내부 논의를 거쳐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담합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최근 내놓은 고용특별세액공제는 노사정위에서 이미 합의되고 있던 것인데 재경부가 빼내 미리 발표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사회협약 체결 시한이 2월7일로 잡힌 배경에는 “우리나라도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을 외국 투자자에게 빨리 과시하고 싶어하는 정부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사회협약을 일자리 창출보다는 외자 유치의 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최영기 연구위원은 “일자리 창출의 묘책을 ‘원샷’으로 한순간에 내놓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일자리 만들기는 타협을 추진하되 노사간 신뢰를 쌓고 앞으로 몇년간 장기적으로 풀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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