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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3.12.18(목) 제4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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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라크는 축배를 들지 않는다 사담 후세인 체포 뒤에도 저항세력에 촉각 곤두세워… 무차별 테러 가능성 높아진 바그다드 현지 표정
미군은 지난 12월12일부터 이라크에 있는 외신 기자들에게 티크리트 주변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할 예정이니 안전에 각별히 신경쓰라는 권고를 했다.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은 으레 있는 저항세력 소탕작전이리라 추측했고 ‘또 몇명의 이라크인과 미군 사상자가 나올까’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붉은 새벽’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작전은 놀랍게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체포 작전이었고, 13일 새벽 미군은 전쟁을 일으킨 때부터 그토록 애타게 찾아헤매던 후세인 전 대통령을 티크리트 남서쪽의 아드와르라는 작은 마을의 외딴 농장에서 체포했다.
바그다드 거리에 집결한 축하 행렬
체포 당시 사담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으며 DNA 검사를 위한 세포 채취에도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총 한발 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생포된 사담은 노숙자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미군쪽은 제보가 있었다고 발표했고, 바그다드 시민 사이에는 그 제보자가 후세인의 둘째부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후세인 체포 소식은 14일 오후 1시30분(현지 시각) 이라크 라디오에서 처음 흘러나왔고, 소식을 들은 이라크 시민들은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진짜 사담이냐, 가짜 사담일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기자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무전기와 위성전화를 양손에 쥐고 위성 생방송 준비로 분주했고, 바그다드 거리는 웅성거렸다. 두 시간 뒤 리카르도 산체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과 폴 브리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고, 비로소 사람들은 격양된 얼굴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그다드 시내 전역이 축포 소리로 떠나갈 듯했고 자동차마다 경적을 울려댔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춤을 추고 박수를 쳤다. 집집마다 후세인 체포 관련 속보를 보기 위해 위성채널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느라 가뜩이나 충분치 않은 전기 사정상 몇번이나 정전 사태가 빚어졌다. 잠시도 끊이지 않고 동네마다 공포탄을 하늘로 쏘아대는 통에 귀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후세인 시절 탄압의 대상이었던 이라크 공산당은 붉은 깃발을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처음엔 사람들이 한두명 모였던 것이 대규모 행렬이 되어 바그다드 거리를 휩쓸었다. 어린아이들까지 총을 휘두르며 “사담은 괴물”이라고 흥분했다. 순찰을 돌던 미군들까지 가세해 “오늘은 정의가 승리한 날이다. 생애 최고의 날이다”라고 외쳐대며 서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브라이트 미군 상병은 “이제 정말 전쟁이 끝났다. 이라크인을 괴롭히던 그 사악한 악마는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동료 미군들과 함께 축하 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나에게 자랑하였다. 그야말로 바그다드 전역이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한편 사담 체포 소식은 바그다드에 주재하는 한국 동포들에게도 매우 놀라운 소식이었다. 얼마 전 한국인 피격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을 입었던 오무전기의 남아 있는 직원들은 바그다드 발전소 작업장에서 그 소식을 듣고 사무실로 달려왔고, 모두 모여서 그동안 겪은 심적 고통을 털어놓았다. 피격 사건 이후 공사를 재개할지 여부에 의견이 분분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상 문제 또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가운데 아직 안전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렵게 일을 진행해오던 그들로서는 사담의 체포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듯했다.
“사담에 대한 심판은 이라크인이 해야”
오무전기의 서해찬 대표는 “오늘이 사고 이후 공사를 재개한 첫날인데 사담이 잡혔다니 이제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오무전기 피격 사건으로 그동안 신변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던 한국 동포들 대부분이 이번 사담의 체포로 한시름 놓은 듯했다. 바그다드 한국대사관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한국 동포들은 이 소식을 주고받느라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잠시 이 떠들썩한 흥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주요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이라크인 모두가 사담이 잡힌 것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군이 세계 정의의 사도인 양 ‘우리가 그를 잡았다’라는 첫 마디로 세계를 흥분하게 했지만,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이라크인의 3분의 1 정도는 후세인이 체포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라크인이 아닌 미군에게 잡힌 것을 불만스러워하고,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비참한 모습을 전 세계에 공개한 것이 창피하다고도 했다. 시아파 지역 주민이나 쿠르드족은 후세인 체포를 반겼으나, 수니파 지역 주민들은 분노와 슬픔을 나타냈다.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만난 전직 교사 마지드(30)는 “사담이 잡힌 것은 환영하지만 사담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이라크들이 해야 한다. 그것은 미군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미군이 그를 재판한다면 그것은 이라크인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라고 말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앞으로 사태가 어찌될지 걱정하는 눈치다. 아라사트 거리에서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음식점의 종업원인 아하마드(39)는 “이러다가 저항세력들이 내일부터 더 극성을 부리지 않겠느냐. 지난번 사담의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미군에 의해 살해되고 나서 더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는데 걱정이다”라고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세인만 잡혔을 뿐 아직 저항세력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건 이후 이라크의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체포 발표 직후의 대규모 폭발 발생
당장 내일 저항세력들이 보복으로 무차별 테러를 감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전혀 엉뚱하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은 후세인의 자금이 체포될 당시 지니고 있었다는 75만달러가 전부는 아닐 것이고, 후세인 밑에서 정부 요직에 있던 인사들도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아직 알 팔루자나 라마디 같은 이른바 ‘수니 삼각지대’에는 사담의 추종자들이 많고, 미군은 이곳의 치안을 전혀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세력으로 나눠져 크고 작은 공격을 벌여온 저항세력들이 활동을 멈출 리는 없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후세인 체포가 발표된 직후인 같은 날 오후 6시20분(현지 시각)쯤 바그다드 중심지역인 알 사둔 거리에서 대규모 트럭 폭발이 일어났고, 알 팔루자에서 후세인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하루 뒤인 15일에는 바그다드의 경찰서 2곳에서 거의 동시에 차량 폭탄이 터져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20여명의 사상사가 발생하는 등 벌써 폭발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또한 이번 체포에 대한 공식성명에서 “앞으로도 대테러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프랑스 신문기자는 “오히려 내일부터 더욱 신변 안전에 신경써야 한다. 경호원을 한명 더 채용하겠다”며 나에게도 더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전쟁 직후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지 8개월 동안 이라크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담은 미군에 들키지 않고 혼자서 모술과 티크리트, 알 팔루자를 자유롭게 다닌다’ ‘사담은 절대 같은 곳에서 하루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밤마다 티그리스강을 이용해 이동한다’ 등 각종 루머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체포될 당시 사담의 거처에는 환풍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오랫동안 머무른 흔적이 있는데다 수염도 깎지 않은 노숙자 같은 초췌한 몰골로 봐서 전쟁 뒤 바그다드 탈출 직후부터 계속 같은 거처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저항세력들은 그동안 자체적으로 알아서 움직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앞으로도 저항세력이 후세인 체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전처럼 활동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조직의 핵심인 후세인이 사라지면 그 밑의 저항세력 세포조직은 자동적으로 분열하여 자멸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정권 이양 · 종파 갈등 등 난제 수두룩
과거 사담 후세인의 철권 통치하에서 많은 고통을 겪은 이라크 사람들이 후세인의 체포라는 역사적인 사건 한가운데 있고, 미국 또한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세계의 비난 속에서도 여기까지 사태를 끌고 왔지만 이번 후세인 체포에 대한 흥분 뒤에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가 있다. 미군정은 이라크인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문제와 함께 전기와 석유, 실업, 미군에 대한 반감, 이슬람 종파간의 갈등, 쿠르드족 등 부족들의 분열 등의 난제를 풀어야 하며, 저항세력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은 미국이 후세인의 체포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고 있지만, 앞으로 이라크와 미국, 사담 후세인과 부시 대통령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그들이 믿는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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