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ww.hani.co.kr/h21![]() |
![]() |
|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3.12.18(목) 제489호 |
![]() |
[특집] 아랍 자존심, 본때 보이마! 상징적 구심점 잃은 이라크 저항운동 향방… 미군에 거부감 많은 민심 힘입어 대담해질 수도
“우리가 실제로 뱀의 머리를 잘라냈는지, 아니면 그가 땅굴 속에 숨은 얼간이에 불과한지 곧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미국 기자가 ‘후세인 전 대통령이 저항운동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통제해왔느냐’고 물은 데 대해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가 답변한 내용은 재미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라크에서 죽거나 다친 미군이 속출하면서 베트남전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부시 대통령 처지에서는 후세인 체포가 ‘재선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월14일 후세인 전 대통령을 붙잡은 뒤 대국민 연설에서 “후세인의 생포는 그와 그의 이름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살해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 그 길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며 “이라크 역사에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는 끝나고 희망의 날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들도 ‘이제 집에 갈 때가 다가왔다’며 좋아했다.
부시의 신중한 태도… 저항은 계속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후세인의 생포로 당장 이라크에서 폭력이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테러전은 다른 종류의 전쟁이며 그것은 한명 한명 생포하고 세포 조직을 하나씩 분쇄하며 하나씩 승리해가면서 치러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후세인 체포 뒤에도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공격은 계속될 것으로 분석한다. 1991년 걸프전 때 미 국방정보국(DIA)의 중동책임자였던 월터 랭은 후세인 체포가 미국 행정부가 생각하는 만큼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터 랭은 “이라크에는 후세인과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이유로 싸우고 있는 저항세력들이 많기 때문에 당장 평화가 올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방위청 장관도 15일 “후세인 체포가 상당히 큰 진전이지만 테러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14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군사평론가 마이클 고든의 분석 기사를 통해 “후세인 체포가 저항세력들에게 중요한 타격을 입혔고 상징적인 구심점을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후세인 체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저항세력의 공격을 당장 끝장낼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고든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후세인이 숨어 있던 땅굴에서 저항세력들을 지휘통제할 수 있는 전화기나 무전기 등 통신 장비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이다. 미국이 뱀의 머리를 자른 게 아니라 땅굴 속에 숨은 얼간이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후세인 생포가 자연발생적으로 터지는 저항세력 공격의 소멸로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이라크 내에는 다양한 성향과 배경을 가진 저항세력들이 존재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알카에다와 연계된 극렬 이슬람 운동단체, 이해관계가 얽힌 지방 토호세력, 이슬람 종파간 투쟁세력, 미군 점령을 지지한 이라크 공산당의 배반 행위에 분개한 공산주의자, 후세인 시절 집권당인 바트당원, 후세인 정권 핵심요직에 있던 사람들, 전직 이라크군 장교·병사들 등 40여개 이상의 서로 다른 저항조직이 제각기 미군을 공격하고 있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잡지 <뉴레프트 리뷰> 편집자인 타리크 알리는 지난달 영국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투쟁에 나선 사람들을 밀고하려는 이라크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알리는 “대중의 무언의 지지가 없다면 지속적인 저항 투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바그다드에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아랍 세계가 패배했다는 이야기는 미국과 영국이 동양을 깔보는 오래된 식민지적 관념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두릴라’를 외치는 이라크 사람들
실제 많은 이라크 사람들은 ‘후세인은 당나귀’라고 부를 정도로 후세인의 폭압통치를 싫어한다. 하지만 세계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란 자존심이 강한 이라크 사람들은 ‘미군은 개’라고 부른다. 그만큼 외국 점령군인 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저항세력이 미군을 공격하면 주변의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이 ‘함두릴라’(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외칠 정도라고 한다. 아랍쪽 전문가들은 후세인 전 대통령의 체포가 미국에게 악재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 처지에서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 개입을 합리화할 근거가 크게 줄어들며,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 문제 전문가인 프랑스의 장 마리 벤자맹 신부는 후세인 체포로 후세인이 복귀할 것이란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이라크 안 이슬람 다수파인 시아파가 점점 대담해져 심하면 내전 상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을 붙잡은 뒤 14일 대국민 연설에서 기쁨을 애써 감추고 엄숙한 얼굴로 “이제 모든 이라크인들이 협력해 폭력을 거부하고 국가 재건에 나서자”고 부탁했다. 부시 대통령도 후세인의 부재가 공식 확인된 뒤 이라크의 치안 악화 위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