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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12.11(목) 제488호

[특집] ‘USA 평택’을 강요 말라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떨고 있는 평택 사람들… ‘동북아 물류 중심’ 접고 ‘초대형 기지’로 바뀔 위기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평택에 폭풍우를 몰고 왔다. 미군이 평택의 10분의 1을 차지할 태세다. 일부에서는 미군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용산에 남아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초대형 기지로 제2의 오키나와가 될 위기의 평택을 집중 조명했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건지, 하늘로 날아가라는 건지….”(봉원산씨·64)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왜정 때 일본놈들이 비행장 만든다고 쫓아내고 해방 되니까 미국놈들이 들어와서 새로 활주로를 놓는다고 또 몰아내더니, 이제는 50년 동안 일궈놓은 농토까지 내놓으라고 하니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냐.”(신병근씨·66)

대를 이어온 삶터가 ‘수용 예정지’로

“차라리 불도저나 포클레인으로 우리를 밀어내든가, 아니면 (우리를) 파묻은 뒤에 하라고 해라. 그도저도 아니면 폭탄 하나 떨어뜨려 달라고 해라. 차라리 그게 깨끗하다. 이북에다가 연락 안 되나.”(정태화씨·69)

12월7일 찾은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노인정은 분노로 가득했다. 분노의 열기는 12월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영하의 바깥 날씨를 녹여버릴 듯했다. 미군기지 확장 계획이 문제였다. 근처 험프리스(K-6) 기지가 주한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따라 늘어나면서 기지 후문쪽에 위치한 이곳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마을 앞 논터 24만여평이 모두 수용예정 지역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들 방에서 나와 할머니들이 모인 방에 들어섰다. “미군들이 겨울에 논과 밭, 집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이 강제로 쫓아낼 때 받은 것이 널빤지 몇개였다”(김순득씨·65)거나 “한겨울에 그런 일을 당하다보니 어린애 몇명은 병이 걸려 죽기도 했다”(최수정씨·84)는 증언이 잇따랐다.

취재진을 노인정으로 안내했던 마을 주민 김택균(40)씨는 “노인분들은 이제 악만 남았다”며 “저러시니까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추리 사람들의 기지에 대한 감정은 ‘불만’이라기보다는 ‘한’에 가깝다.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일본군(1940년대)과 미군(1952년)에 연이어 빼앗기고 강제로 쫓겨나왔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동-서로 놓은 활주로를 이용해 고향터를 군사기지로 활용했고, 이후 미군은 남-북으로 활주로를 새로 닦고 기지를 넓힌다면서 또다시 주민들은 강제로 내쫓았다.

서울에서는 여전히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티격태격하면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이미 국방부가 본격적인 수용절차에 들어갔다. 국방부는 국회를 통과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을 근거로 평택시 지역 74만여평(대추리 일대 24만여평과 ‘오산 에어베이스’ 또는 ‘K-55’ 기지로 불리는 미7공군사령부 주변 50만여평)에 대한 감정평가를 토지개발공사와 한국감정평가원에 위탁했다. 그러나 감정평가 절차에 나섰던 한국토지공사쪽은 최근 공람공고를 하려고 대추리에 들어갔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쫓겨나 현재 수용절차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24만여평 수용 예정지인 대추리 앞 들판 ‘황새울터’로 나서자 마침 이곳 마을 주민들과 팽성읍 관내 근처 마을에서 모인 200여명이 기지 확장 반대를 내걸고 문화제를 열고 있었다. 연단 뒤로는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는 대형 걸개가 걸려 있고 참석자들이 모여 있는 논바닥 곳곳에는 펼침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미군·국방부는 땅 도적놈!’ ‘미국놈들아! 내 땅 못 줘!’ ‘태 묻힌 고향 기필코 지킨다’는 등 구호는 이곳 ‘농심’(農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가수 정태춘씨가 무대에 섰다.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하늘 끝, 저 하늘 끝 가보고 싶은 땅/ 얼레는 끝없이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정씨가 부른 <들 한가운데서>는 대추리 옆 도두리가 고향인 정씨가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대 입시에 낙방한 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 이곳 황새울터를 소재로 만든 노래였다. 그는 이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을 모아 이 문화제를 기획했고, 현재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읍 대책위원회에서 고문역을 맡고 있다.

주민 설득 절차 없이 일방적 밀어붙이기

정씨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연이 실제로 등장했다. 멀리 미군기지로 날려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연을 바라보던 주민 이수용(35·본정1리)씨는 “이 지역에 대한 토지수용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면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나 의견수렴 절차라도 밟는 게 정부의 도리가 아닌가”라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우리를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이곳 주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기지 확장 소식을 듣고 서울 등 대도시에서 내려온 투기꾼들이 기지 정문 근처 땅을 싹쓸이하는 등 비뚤어진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일고 있는 점이다. 실제 기지 정문 앞 상가와 주택지 터는 땅값이 몇배 뛰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도시 사람들한테는 투기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농부에게 논은 목숨과도 같은 것인데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재산상의 피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군기지가 거대화함으로써 이미 존재했던 피해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위험요소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평택시에서 미군기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모두 454만여평이나 된다. 신장동·서정동·고덕면·서탄면·진위면 일대에 위치한 미7공군사령부는 200만평이 넘는다. 캠프 험프리스 역시 150만여평 규모다. 팽성읍 송화리의 미군사격장과 CPX훈련장, 탄약고 등까지 모두 5개의 미군 공여지를 합치면 454만여평이다. 전체 평택시 면적의 5% 정도에 해당한다. 주둔 병력 수는 평균 1만2천~1만3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은 모두 평택평야의 가장 알토란 같은 땅들이다. 게다가 미7공군사령부가 위치한 K-55기지는 대한민국에서 비행장으로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지형이라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으는 곳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미 수용절차를 밟고 있는 74만여평을 제외하고도 아직 이곳에서 수용될 토지가 엄청나게 남았다는 예측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300만여평을 미군에 내주란 말인가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9월23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경기 오산·평택에 있는 기존 미군기지 이외에 추가로 310만~320만평의 이전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미 양국 사이에 협의가 되고 있고, 그렇게 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2004년도 국방예산에 부지 매입비로 2500억원을 반영했다.

현재 진행 중인 74만여평을 빼고도 250만평 정도를 추가로 미군쪽에 공여해야 현재 한-미 두 나라 사이에 진행 중인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방부 장관의 계산대로라면 전체 평택시 면적의 10% 안팎이 미군기지가 된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이같은 계산법은 지난 6월 열린 한-미 동맹 정책구상 2차 회의(“미 2사단 배치와 관련해 1단계로 한강 이북에 위치한 미군을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와 2사단 사령부인 의정부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 등 2개 지역으로 통폐합한 뒤 2단계에 오산·평택 지역으로 이전한다”)와 지난 4월 제임스 솔리건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앞으로 주한미군 기지는 부산·대구권과 평택·오산권 등 2개의 허브 기지로 재편한다”)의 언급으로도 뒷받침된다.

평택이 미군의 중심기지로 부각되는 까닭은, 평택이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전략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른바 ‘럼즈펠드 독트린’을 전개하는 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군사장비로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밀타격으로 속전속결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는 ‘공군’이 강해야 하고 정보수집과 작전수립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K-55기지 안에는 태평양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제51전투비행단 본부가 있고, 전시일 때 전황을 곧바로 파악하는 핵심지휘 통제시설도 운용된다. 한국군 작전사령부들도 이곳에 모여 있다.

미군 재배치 전략 떠받칠 최적의 요지

12월3일 취재팀이 이곳 기지를 처음 찾았을 때 기지 한쪽에 패트리엇 미사일 10기 정도가 배치돼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부대 안에는 민간 항공기 크기의 여객기 모습도 보였다. 동두천에 있는 2사단까지 이곳으로 옮겨오면 주한미군 전력의 80% 이상이 이곳에 집중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두 중심축으로 운용되던 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을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분산 배치한다는 게 미국의 정책 변화지만, 평택기지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21세기 미국에 필적한 만한 경쟁국가’로 중국을 꼽고 있고 군사적으로도 이를 관철하고자 한다. 서해를 코앞에 두고 있는 평택기지는 대중국 방어라인의 전초기지다. 미국의 군사정책 방향과 한-미 사이에 이뤄지는 논의를 종합해보면 평택 지역은 아시아 지역 전체를 통틀어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 다음으로 큰 기지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제2의 오키나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평택 지역 일부에서는 ‘초대형 기지’로의 재편이 가져올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대신 미군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지역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지역의 여론을 이끈다는 시의 고위관료나 지역 여론주도층 인사들 사이에는 ‘용산기지(주한미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 주한미8군사령부)는 장교들 위주의 고급 부대라서 괜찮고 2사단은 보병부대라서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퍼져가고 있다. 특히 부대 근처 상인들이나 기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은 기지가 확대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용산기지 이전 찬성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주로 △기지 이전 관련 지원 특별법 제정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에서 평택시 제외 △새도시 개발과 기존 부대 주변 지역의 재개발 병행 추진 등이다.

환경 · 범죄 등 거대한 위험 도사려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90년대 처음 용산기지 이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80%가 넘었던 반대 여론이 상당히 누그러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평택시민신문>이 10월 평택 지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군기지 확대 이전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각각 37.8%와 53.0%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용한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시 대책위 상임대표(민주노동당 평택을지구당 위원장)는 “미군기지 집결이 가져올 본질적인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경제 활성화’ 논리를 펴는 이들이 있는데 기지가 넓어진다고 경제가 활성화하지는 않는다. 같은 평택에서도 미군이 있는 안정리(캠프 험프리스 정문 앞)와, 송탄보다 미군이 없는 평택이 훨씬 더 발전했다는 것은 평택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그보다는 미군기지가 총집결하면 전쟁이나 위기 국면이 올 때 제1의 공격 목표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요즘 미군 때문에 전쟁 위험이 더 커진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인 상식이다. 환경오염이나 범죄 문제, 지역의 균형발전 문제를 보더라도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21세기 동북아 무역물류 중심의 평화도시가 될 것인가, 오키나와 다음 가는 거대한 군사도시가 될 것인가. 평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평택=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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