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12.11(목) 제488호

[특집] 그리도 떠나기 싫단 말이냐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둘러싼 양국 쟁점들… 이전 비용 떠넘기고 잔류지 추가 확보 노려

서울 용산기지 메인 포스트(Main Post) 출입문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미국에 항의하는 시위를 자주 벌인다. 한미연합사 등 지휘시설이 있는 메인 포스트쪽으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일본군이 군대에서 쓸 말을 키우던 마굿간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 3천명이 용산에 진을 쳤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군이 용산에 기지를 만든 게 계기가 되어 해방 전까지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자리잡았다. 광복 뒤에는 일본군이 물러나고 미군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용산에 남을 1천명 위해 28만평 달라니…

올 초부터 한국과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 협상에서 미국은 총 78만평의 용산기지 땅 가운에 서울에 남을 미군이 계속 쓸 땅으로 28만평을 달라고 요구했고, 한국은 17만평을 제시해 타결을 짓지 못하고 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12월6일 한미연합사령부 이전과 관련해 “원래는 연말까지 마무리지을 것으로 계획했다. 연말까지는 (한-미 협상을 매듭짓기) 힘들게 됐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가 제시한 잔류 땅 17만평과 미국이 요구한 28만평 가운데 적절한 면적을 타협하는 방안과 한미연합사, 유엔사 등을 포함한 기지 전체를 경기 오산과 평택으로 옮기는 방안 등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 기지 전체가 옮겨갈 경우 미군 주둔의 안정성 제고, 서울 도심 균형 발전, 이전 비용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의 장점이 있고 군사적 연락체계 수립 필요성 등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도 ‘한강 이남으로 가겠다’는 자세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는 11월26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등 서울 주둔 미군 병력 전체가 남쪽, 즉 오산·평택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왜 한국과 미국은 용산기지 11만평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 용산기지에는 7천명가량의 미군이 근무한다. 미국은 용산기지를 옮긴 뒤에 남는 미군 1천명이 쓸 숙소, 학교, 병원, 매점, 골프연습장, 야구장, 축구장, 식당 등으로 쓸 땅 28만평을 달라고 한다. 초기 협상 때 두 나라는 용산기지 중 17만평가량을 쓰는 것으로 뜻을 모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국이 11만평을 더 달라는 요구를 꺼냈다. 미국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군이 요구한 28만평은 현 용산기지 땅의 35%가량이다. 만약 미군이 용산기지 터를 3분의 1 넘게 계속 쓴다면 용산기지를 되찾았다고 말하기 힘들고 서울 도시계획상의 어려움은 여전하기 때문에 한국쪽도 완강하다.

용산기지 등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한 국내 논란은 이전 비용과 안보 불안감 두 가지로 나뉜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10월5일 “용산기지 이전 비용은 30억달러로 추산된다. 용산기지 이전은 지난 91년 양국 정부의 합의에 따라 정부가 이전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추산하는 이전 비용은 30억달러(약 3조6천억원)에서 50억달러(약 6조원)이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지난 9월 국회에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미 2사단의 경우 한국은 새 땅만을 매입해 공여하고,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된 각종 시설은 미국쪽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용산기지 이전에 필요한 대체부지 구입, 대체시설 건립, 이사 비용 부담 등 이전에 관련된 모든 비용을 한국이 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전략을 감안하면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것은 무리란 지적도 있다.

미군 관계자들은 경기 북부 지역에 주둔한 미 2사단을 두고 “미 2사단이 아니라 한국군 2사단이라 부르자”고 말한다. 미 2사단이 50년째 문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유사시 북한군 예상 진격로에 붙박이로 주둔하고 있는 현실을 들춘 농담이다.

동북아 지역군일 뿐… 안보 불안은 없다

그런데 지난 11월17일 서울에서 열린 제3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 중간쯤에 “두 나라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하였다”는 부분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이 지금처럼 북한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동북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중국과 대만이 충돌할 경우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

앞으로 주한미군 성격이 대북 전용에서 동북아 지역군으로 바뀐다면 주한미군의 ‘편익’을 미국이 지금보다 더 많이 누리게 된다. 늘어난 편익에 대한 비용을 더 내는 게 이치에 맞다.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12년 전 한-미 합의를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한강 이북에 미군이 없는 상황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전쟁 수행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용산기지에는 미 2사단처럼 전투부대가 아닌 한미연합사령부 등 지휘부가 자리잡고 있다. 한미연합사가 한강 이남으로 가더라도 한-미 자동화 지휘통제 체계, 화상회의, 연락반 등을 활용해 한-미 군사협의 체제를 보완하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국군도 서울에 있던 육·해·공군 본부가 대전 근처 계룡대로 옮긴 사실을 들어 군 최고 지휘부와 전투부대가 한곳에 밀집해 있는 게 오히려 유사시 생존성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3/12/021005000200312110488023.html



The Hankyoreh Plus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