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12월18일 제489호 

파병 넘으면 북핵 터질라

이라크 치안 안정화 내세워 추가파병 본격화… 부시 행정부 강경파 득세로 북핵에 암운 드리워

후세인 생포는 한국 정부에게도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소식으로 비친다.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에 유리한 조건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후세인의 체포가 당장 저항세력의 테러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할지라도 중장기적으로 이라크 치안상황이 크게 나아지리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특히 파병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이 크게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국제사회의 반응도 나쁘지는 않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명분이 모처럼 힘을 받는 분위기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12월15일 윤영관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와 “후세인 전 대통령의 체포가 그의 지지자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며, 한국을 비롯한 파병국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후세인 생포가 파병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니 파병을 좀더 서둘러달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윤 장관도 “정부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 파병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사진/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12월12일 제2차 6자회담 사전 협의를 위해 중국을 방문해 정책협의를 한 뒤 돌아온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연합)


후세인 체포 뒤 콜린 파월 파병 독려

그동안 이라크에서 테러의 악순환으로 풀죽어 있던 부시 행정부가 한층 기고만장해졌다. 외교 정책에서 더욱 거침이 없어질 게 뻔하다. 한국 정부 내부에서는 내심 안도의 긴 한숨을 뿜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국내의 거센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파병 방침을 고수한 게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자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물론 북핵 문제가 걱정스러워서다. 이라크의 치안이 안정되면 당장 북한이 다음 표적으로 도마 위에 오를 게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약속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어떻게든 묶어둬야 한다. 부시 행정부에게 변심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간 노무현 정부도 고집스레 파병을 밀어붙여왔다.

사실 후세인 생포 소식이 들려오기 직전만 해도 노무현 정부는 적지 않게 안절부절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라크 현지 한국인 근로자의 피살에 따른 국내 여론의 악화 등 파병을 둘러싼 악재들만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병에 유리한 여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북핵 해결의 밝은 전망’이 그나마 파병 여건 조성에 불쏘시개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노 정부가 필사적으로 ‘6자회담의 연내 개최’에 매달린 까닭이다. 우선 파병 관련 국회동의안을 조기에 매듭짓는 게 급선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 이후 파견 지역과 부대 편성 등을 최종 결정짓기 위한 협상을 하자고 입장을 밝힌 터다. 노 대통령은 15일 4당 대표들과 만나 ‘3천명 규모의 독자적 지역담당’ 방안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호소했고,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냈다.


사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에서 북한으로 옮겨갈 것인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2월14일 백악관에서 후세인 체포와 관련한 텔레비전 연설을 하고 있다.(GAMMA)


하지만 6자회담의 연내 개최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북-미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상대방에 대한 요구와 관련해 표현상의 변화는 조금씩 이뤄져왔으나, 서로의 속마음은 조금도 바뀔 조짐이 없다. 부시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는 등 잘못된 행동을 먼저 저질렀기 때문에 북한이 과거의 잘못을 먼저 얼마나 시정하는가에 따라 무언가 보상책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 활동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동결하지 않겠다”고 세게 맞받아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선 핵폐기’ 요구에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 방법은 ‘생명’”이라며 자못 비장한 자세로 거부하고 있다. 상대방을 돌려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노무현 정부는 중국과 함께 애초부터 거론되던 12월17일부터 사흘간 일정의 2차 6자회담을 열기 위해 막판까지 총력 외교전을 펼쳤으나, 14일까지 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 공동 문안에 대한 사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6자회담 연내 개최 무산으로 북핵 풀지 못해

북핵 문제 해결의 밝은 전망을 파병의 우선 조건으로 내세워온 노무현 정부는 6자회담의 연내 개최 무산이 못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군을 아직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지로 내보내는데다 2차 6자회담 개최마저 불투명해지면서 노무현 정부의 파병 명분은 더욱 궁색해질 게 뻔했다. 노 대통령은 12월3일 국회 이라크조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를 위해서라도 한-미 관계는 돈독히 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파병의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밝혔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이를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북한 문제에 대한 전망이 밝아지면 이라크 재건에 대해서도 협조적인 의견이 더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으로 보인다”고 주석을 달았다. 이라크 파병을 위한 여러 고려사항 가운데 북핵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발언들은 미국쪽에 북핵 문제에 대한 좀더 유연한 자세를 바라는 메시지 성격이 강했다.

노무현 정부는 6자회담의 연내 개최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한-미-일 3국은 12월3일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비공식 정책협의회를 열어 공동 문안을 합의한 뒤, 이를 8일 중국을 거쳐 북한에 전달했다. 하지만 9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은 ‘핵 동결 대신 첫 단계 행동조처’를 요구했고, 미국 부시 대통령은 10일 핵 동결이 아닌 완전한 핵 폐기를 주장하면서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에 먹구름을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한의 공식 답변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실낱같은 연내 개최 희망을 접지 않았다. 외교부의 이수혁 차관보는 11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 부부장을 직접 만나 북-미간 이견을 좁히기 위한 막판 대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공동 문안 수정안에 대해 핵 폐기와 국제적 사찰에 대한 부분이 미흡하다며 부정적 견해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가 물건너가는 게 확실해지자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크게 낙담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명분도, 실리도 막연한 이라크 파병이 불러올 국내 비난여론도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터에 ‘후세인 전격 체포’라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신봉길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환영성명을 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휴일인 14일 늦게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13일 자신의 고향인 티크리트에서 미국 당국에 의해 체포됐음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신 대변인은 또 “이번 일이 향후 이라크 내 모든 테러리즘의 근절과 함께 이라크 국민들의 정치적 안정, 민생회복, 이라크 전후복구 및 재건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라크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들이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후세인 체포가 이라크 파병에 긍정적인 환경 변화로 받아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후세인 다음은 김정일이 될 것인가”

하지만 이런 안도감도 잠깐일 뿐이다. 후세인 체포는 파병 분위기에 도움이 되는 일시적 호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후세인 생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후세인과 다름없는 ‘악의 축’ 및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에게 대북 강경정책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줄 빌미로 작용하기 쉽다”면서 “가뜩이나 뻣뻣하게 나오고 있는 북핵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후세인 체포로 한껏 고무된 부시 대통령은 14일 미 국민에게 한 연설에서 안전을 위한 ‘자유’의 가치를 유난히 강조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의지를 불태웠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의 재선을 바라지 않는 북한이 6자회담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이들은 북한이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더 많은 핵무기를 생산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하고 있다. 회담이 열려도 문제요, 안 열려도 골치라고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이라크처럼 무력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고립과 봉쇄를 통해서라도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는 게 최선이라는 암묵적인 공고한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부시 행정부 내부 동향을 전하는 정부의 한 핵심 인사의 표정에는 ‘파병’과는 다른 북핵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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