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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11.26(수) 제486호

[특집] 실리외교, 싹이 보입니까

파병 결정 과정에서 나름대로 지도력과 외교적 수완 선보인 노 대통령,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국민적 기대와 달리 취임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월19일 ‘자주국가론’을 역설하며 미국을 상대로 한 실리외교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촛불 시위도 있었고 한·미 관계에서 자존심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세고 강하고 영향력이 있지만 우려하는 만큼, 자존심이 상할 만큼 종속적이지 않다.” 그는 이날 청와대로 초청한 한국청년회의소 임원단에게 “나도 자존심과 배알이 있다”며 “10년 뒤 거의 영국·독일·프랑스가 누리는 세계적인 지위나 발언력을 가질 것이며, 국제관계·대미관계도 그렇게 변할 것이니 자주국가의 체면을 살리는 일은 내게 맡겨달라”고까지 공언했다.

‘동맹파’와 ‘자주파’ 사이 균형잡기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처리하면서 노무현식 실리외교 전술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전사 등 경보병 중심의 대규모 전투병을 요구한 미국과 한-미 동맹 유지를 위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우리 외교·국방 라인 내부의 압박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구상대로 추가파병 논란을 주도하면서 대미 외교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지난 11월17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강력 반발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우리 정부가 제시한 의료·공병 등 재건부대 중심의 3천명 이내 파병안을 사실상 수용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자,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해온 한국 외교사에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찬사까지 나온다.

노 대통령은 실제 추가파병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지도력과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지금까지 과정을 “정말 섬세하게, 시쳇말로 ‘통박’을 굴렸다”라고 표현했다. 주도면밀한 계산 속에 독자적인 일정표에 따라 파병 논란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지난 9월4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우리 정부에 사단 규모의 전투병 파병을 공식 요청하자 노 대통령은 국내외 여론, 권력 내부의 상호 견제와 역할 분담을 통한 ‘버티기 전술’을 선보였다.

노 대통령은 미국의 파병 요청 직후인 9월9일에 소집된 안보관계 현안보고회에서 이른바 “신중결정론”을 확정했고, 이후 9월16일 국무회의, 9월26일 안보관계장관회의, 10월11일 군지휘부 간담회에서 이런 원칙을 고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이른바 ‘한-미 동맹파’가 포진한 국방부와 외교부가 1만명 이상 대규모 전투병 파병론을 제기하는 등 내부 반발 조짐을 보이자, 노 대통령은 자주적 실리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와 파병 반대 정서가 강한 청와대 참모진을 적절히 활용해 상호 견제하는 묘수를 펼쳤다.

이런 견제술의 백미는 1차 정부합동 이라크조사단 파견을 결정한 지난 9월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반전 성향이 강한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를 조사단에 포함시킨 것이다. 박 교수 자신조차 “그 사람들은 내가 파병 찬성론자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는데, 이런 뜻밖의 결정에는 노 대통령이 뜻이 반영됐다. 국방부와 외교부 중심의 조사단이 파병 명분 축적용 조사를 벌일 것을 우려한 노 대통령이 자신과 긴밀히 교감해온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이런 묘안을 관철한 것이다.

10월3일 귀국한 1차 합동조사단은 예상대로 “이라크 정세나 치안 상황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박 교수가 “조사활동이 부실했다”고 ‘양심선언’을 하면서 2차조사단 파견의 근거가 마련됐고, 파병불가피론자들의 입지는 축소됐다.

신속 파병에 맞서 ‘버티기 전술’

노 대통령이 외교·안보 라인의 대규모 전투병 파병론을 반전 정서가 강한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자유 발언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견제하며 내부 균형을 도모한 흔적도 엿보인다.

지난 9월17일 유인태 정무수석은 “전투병 파병은 불가능하다”며 정부 고위인사 중 처음으로 전투병 반대를 언급했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유 수석의 무책임을 성토하며 정부 내 혼선을 대서특필했지만, 노 대통령은 별다른 질책이 없었다. 오히려 유 수석은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등과 함께 10월 초순부터 이라크전 당시 인간방패 활동을 벌인 유은하씨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만나 “노 대통령은 전투병 파병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며 ‘식수, 전기 등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파병 논쟁이 자신의 의도와 크게 어긋날 경우에는 직접 나서 큰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파병 논쟁을 적절히 통제했다.

미국의 전투병 파병 압박이 거세진 10월 중순 외교·안보 라인은 특전사 특공연대 중심의 1만명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10월27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2천~3천명선의 파병이 합리적”이라며 파병규모 확대론에 선을 그었다. 이 차장의 발언은 노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의 정설이다.

노 대통령은 결국 지난 11월11일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추가파병 규모가 3천명을 넘지 않도록 하며 기능 중심과 독자적 지역담당 두 방안을 검토하되, 지역담당의 경우에도 재건 지원을 중심으로 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파병 구상을 구체화했다. 그는 이날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이 “일정 지역의 치안유지를 책임지는 포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며 전투병 파병론에 무게를 실으며 반발하자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등 확실하게 ‘군기’를 잡았다. 노 대통령은 또 미국쪽 요구에 기울었던 조영길 국방장관, 윤영관 외교장관 등과 직접 논쟁을 벌이며 평화재건 중심 부대 3천명 파병 구상을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특히 신속한 파병 결정을 요구하는 국내외의 압박에 맞서 ‘버티기 전술’을 구사하며, 북한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 등 한반도 안보 현안과 파병을 연계해 실리를 챙기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는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파병 문제를 검토하는 데 있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확신이 매우 중요하며, 무엇보다 북한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확신할 수 있는 더 안정된 대화 국면 조성이 필요하다”며 추가파병을 6자회담과 연계한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이라크 치안 악화와 반전 여론 등에 부담을 느낀 미국은 10월11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문서화”와 “12월에 6자회담 개최”로 화답했다.

미국의 전향적 자세에 노 대통령도 10월18일 파병원칙 결정으로 보답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병부대의 성격·규모·시기 등은 백지 상태로 놔두고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에 도움이 되는 파병’이라고 비전투병 파병을 강력 암시하는 이른바 ‘2단계 파병결정론’을 구사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2단계 파병론을 통해 10월20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감사 표시와 함께 주한미군 감축 논쟁 유보 등의 실리를 얻어냈다. 동시에 나라 안팎에 비전투병 파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 극렬한 국론 분열을 막았다.

미국과의 협상, 북핵 문제 등 과제

이런 복잡한 내부 조정과 미국과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통해 노 대통령은 지난 11월17일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우리 정부가 마련한 3천명 이내 파병안을 수용하도록 만들었다는 게 청와대 분석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선보인 대미 실리외교 전술은 아직 취약하기 그지없다. 노 대통령은 미국의 특정 지역 전담 요청은 수용하되, 의료·공병 중심의 재건부대를 주축으로 파병한다는 방침이다. 경비 및 치안 업무는 이라크군과 경찰에 맡기는 방식으로 전투병인 경계병 비율을 낮춰 이라크 민중을 위한 평화·재건 부대 파병이라는 대의명분을 지킨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떠맡길 경우 전투병 비율이 높아지고, 사실상 특정 지역의 치안을 전담하는 전투병 위주의 파병이 이뤄질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국방부 일부에서도 여전히 이런 주장을 펼친다.

추가파병을 지렛대로 얻어낸 북핵 해법 등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1월19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전용기 안에서 “주민을 억압하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단언하고, “한국도 이제 스스로 국방을 맡아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11월21일 국회 조사단이 머문 이라크의 호텔이 피격당할 정도로 심각한 이라크 현지 상황과 파병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여론도 막 싹을 틔운 노 대통령의 실리외교 전술에 큰 짐으로 남아 있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 정치부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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