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11월12일 제484호 

선진국엔 없다더라?

사실까지 왜곡하는 평준화 폐지론의 천박함… 미 · 영도 우리와 같은 평준화 정책 시행해왔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난데없이 평준화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꼬리를 물면서부터다. 현 정부의 경제 각료들이 그 선봉에 섰다. 뒤를 이어 서울시장이 목청을 높이고 나섰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 만하다. 한쪽은 서울 강남 집값 상승으로 대표되는 실정(失政)의 책임을 면해보려는 몸부림이고, 다른 한쪽은 표를 의식한 정치인의 ‘경거망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서울대 총장의 행보다. 얼마 전 한 경제단체의 강연에서 “고교입시를 부활해야 한다”고 발언해 양식 있는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낸 바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또다시 한국은행 임직원을 모아놓고 평준화 폐지의 ‘소신’을 피력했다. 경제학자답게 “평준화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거창한 이유를 들이댔다.


사진/ 이것이 고교 평준화의 대안일까. 경기도 일산의 한 학원 광고간판.(박승화 기자)


서울대 총장의 ‘곡학아세’

정 총장의 발언에 경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자로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내세우는 게 서울대 신입생의 지역별 분포다. 전체 인구의 25%에 불과한 서울 출신이 40%고, 경제학과·경영학과·법학과 등의 경우 60%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증거’로 평준화가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계층간 사회이동을 가로막는다는 결론을 냈다.

그에게는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문화적 자극이나 사교육비의 격차 등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요인들이 가져올 교육 결과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데 평준화(내지 공교육체제)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라면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불평등의 문제를 평준화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양식 있는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층간 소득격차의 ‘주범’도 결국 평준화인 셈이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이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몰지각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로 일관해서야 되겠는가.

평준화에 관한 한 기득권층의 천박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교육 선진국’인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가 바로 평준화라고 목청을 돋운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의 경우 우리와 똑같은 제도를 갖고 있다. 지방교육청(LEAs)이 관할 학교의 수용능력을 고려해 학군 내 학생들을 임의로 배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학생선발 방식은 ‘1944년 교육법’(1944 Education Act)이 천명하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즉, ‘학부모의 학교 선호도(선택권)보다는 효과적인 교육과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이 우선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찍이 평준화 제도를 통해 교육 기회를 확충하고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기해온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지금도 지배계층을 위한 사립학교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외국어계 특수목적고보다 훨씬 더 계층 차별적인 학교로 전체 학생의 약 2.5%를 수용하고 있다. 물론 평준화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학교 출신자들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독점하고 있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귀족학교 체계와 서민학교 체계의 통합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영국의 학교발달사다. 그러나 특권층 학교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기득권층의 이해가 이튼이나 해로우 등과 같은 ‘값비싼’ 학교를 살아남도록 한 것이다.


사진/ 사립학교의 천국인 미국도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평준화 논쟁이 뜨겁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교 학생들이 화학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


‘귀족학교’ 때문에 불평등 구조 심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외국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비평준화론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다. 평준화가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라고 하다가 이제 또다시 말을 바꾸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포기한 제도인데 우리만 고집할 게 뭐냐는 식이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교육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평준화제도를 시행해왔다는 점만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포기한 제도’란 주장은 또 다른 정보의 왜곡이다.

영국은‘1988년 교육개혁법’(1988 Education Reform Act for England and Wales)에 따라 자율학교(grant-maintained school) 등 일부 학교의 선발방식을 바꾸었다. 이른바 개방등록제(open enrollment)가 그것이다. 학군에 상관없이 지원하고 선발할 수 있게 길을 터놓은 것이다. 헌장학교(charter school) 등을 도입한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일견 ‘평준화 포기’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조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평준화 폐지론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나왔다. ‘교육 소비자’의 학교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시장만능론적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이 제도의 논리는 시장조건을 창출하여 ‘공급자’인 학교간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 여부에 의해 학교 존폐가 결정된다. 그러면 학교들이 앞다투어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평준화 폐지론자들이 오해할 만도 하다. 그것이 평준화 포기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그러나 문제는 이후에 전개된 사태다. 일부 학교에 실험적으로 도입한 이 제도가 영국의 경우 노동당 집권 이후 완전 폐기됐다. 자율학교가 기초학교(foundation school)나 자선학교(voluntary aided school)로 전면 개편된 것이다. 공교육을 혁신하고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오히려 계층 및 인종간의 교육 불평등을 심화해서 개방등록제를 적용한 학교 자체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됐다.

평준화 정책 수정 뒤 몸살 앓아

평준화 포기를 함축하고 있던 학교 정책이 문제가 많아 원상 복구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헌장학교의 비중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또 그 증가 추세도 현저히 둔화됐다. 게다가 과거 영국에서처럼 그 공과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다. 부시 정부조차 그간의 교육개혁이 계층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정도다.

계층 차별을 전제로 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한 평준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도 택하고 있는 보편적인 제도라는 뜻이다. 우리 자녀에게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진정한 의미의 교육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 또 애초 약속했던 교육 여건의 획기적인 상향 평준화 등의 정책목표를 완수해야 한다.

평준화 폐지론자들이 특권층 학교 내지 귀족학교를 주장하는 것이라 믿고 싶지 않다. 관료나 정치가가 무분별한 주장을 일삼는다고 해서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존재하는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 ‘지식인’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김용일 교수 | 한국해양대 ·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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