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11월06일 제483호 

엄마야 누나야 이런 아파트 어때?

공동주택연구회가 추천하는 수도권 ‘아파트 명소’… 완성도 높은 건축에 주변 환경과 조화 이뤄

‘명품 아파트’는 있어도 ‘아파트 명소’는 없다? 멋없는 아파트 입면처럼 밋밋하게만 흘러온 듯해도 한국 아파트 디자인 40년사에도 손꼽히는 명장면들이 있다. 아파트의 역사와 미래를 연구하는 ‘공동주택연구회’의 추천을 받아 10월30일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수도권 일대 아파트 명소 순례에 나섰다.


사진/ 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을 기념해 대한주택공사가 세운 조각품.


재건축으로 흔적만 남은 마포아파트

한국에 최초의 아파트가 뭐냐고 묻는다면, 좀 아는 사람들은 1962년 지어진 서울 마포아파트를 꼽는다. 그러나 6층 높이의 Y자형 건물 형태에 넓은 녹지가 인상적인 마포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아니다. 일제시대에도 아파트라는 이름을 단 건물이 지어졌고 1956년 서울 중구 주교동엔 12가구가 들어갈 수 있는 3층짜리 중앙아파트가 지어졌으며 종암아파트(1958년·서울 종암동), 개명아파트(1959년·서울 충정로)가 잇따라 지어졌다. 마포아파트는 한 동이 아니라 단지 개념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아파트단지로 준공 때는 대통령이 테이프 커팅을 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온고이지신’의 상징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이날 아파트 순례는 마포아파트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1993년 삼성아파트(마포구 도화동)로 재건축된 이곳은 마포아파트 터에는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딱 한군데 있다. 주민문화센터 옆에 자리잡은 ‘예스터데이 가든’. 옛 우물을 상징하는 의미로 만든 돌우물과 작은 텃밭, 평상과 몇 가지 운동시설이 놓여 있고 마포아파트 시절 세워진 ‘나이 41살’의 석고 조각도 남아 있다. 이곳저곳 칠이 벗겨진 조각품 아래쪽엔 이렇게 쓰여 있다. “본 조각품은 1962년에 대한주택공사에서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를 준공한 기념으로 설치한 작품임.” 커다란 간판이 경쟁하듯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아파트 입구 상가를 빠져나와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로 향했다.


사진/ 풍부한 녹지공간으로 명성이 높은 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선수와 임원들의 숙소로 지어진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조성룡·문정일·강기효 공동설계)는 ㄷ자형 주거동을 7개 군락으로 묶어 배치하고 가운데 공동마당을 두어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아파트는 바로 곁에 이웃한 아시아공원·송파문화예술회관 같은 공공영역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단풍이 한창인 계절의 아름다움을 단지 안으로 함빡 받아들이고 있었다. 각 주거동 1층에는 집을 비우고 기둥으로 띄워(필로티 구조) 집끼리 연결되는 또 다른 길을 만들었다. 동 간격이 넓어 이웃의 다른 아파트보다 평균 6~7평가량 대지권 지분이 더 많은 이 아파트는, 평면구조가 17년 전 구닥다리인데다 ㄷ자형으로 꺾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정남향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가장 살기 좋은 아파트로 이름나 있다.

품위와 여유 있는 상류층의 아름다운 아파트를 구경한 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우리나라에서 서울 주변 신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대개 고통스런 교통난과 쾌적하고 저렴한 주거환경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는 타협 지점을 택한다는 뜻이다. 하루 2~3시간 걸리는 출퇴근길을 감내하면서도 30~40대 직장인들이 신도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틀고 아득바득 살아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상갈택지개발지구 금화마을 1~4단지(한빛건축 설계)는 가장의 괴로움을 나머지 가족들의 행복으로 충분히 상쇄시킬 만한 곳이다.


사진/ 둥글게 휘어진 주거동이 마주보고 서 있는 용인 금화마을.


가장은 괴로워도 가족이 행복하다면…

3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찻길 건너편 4단지와 연결되는 육교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계단 오르는 고역에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육교와 달리, 금화마을 육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공중 골목’과 같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램프의 완만한 곡선이 계단과 편안하게 엇갈리며 두 동네를 이어주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꼬마들은 재잘대며 길을 건넌다. 주택공사가 100만호 건설을 기념해 만든 이 아파트는 고층 콘크리트 건물이 주는 냉정함 대신 따뜻한 동네 분위기가 나도록 꾸며졌다. 한 단지 내 두개의 주거동이 논두렁·밭두렁 곡선처럼 타원형으로 휘어지며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그 사이 구불구불 마련된 길과 광장은 놀이터와 쉼터로 꾸며졌다. 차들은 모두 지하주차장으로 넣었다. 이 광장에 놓인 환경미술품은 주민들의 참여로 만들었다. 3단지 대리석 벽판에는 동네 아이들이 삐뚤삐뚤 그린 그림을 부조로 새겼고, 4단지 안 ‘상상의 숲’은 입주 전 주민들에게 엽서를 보내 숲에 사는 동물 그림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한빛건축 민승렬 소장은 “아이들이 뛰노는 마을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설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진/ 아이들 그림이 새겨진 금화마을 3단지의 환경미술품.


금화마을을 온화하게 어루만지는 오후의 햇빛을 뒤로 하고 마지막 순례장소인 목동으로 떠났다. 지금은 쾌적한 환경으로 인기 높은 목동아파트는 서울 도시계획사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이다. 1980년대 전반기 강서구 목동·신정동 일대의 안양천변 저습지 뚝방동네는 안양천의 악취와 무허가 공장들의 소음, 여름철 홍수의 위협으로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싼 곳이었다. 1983년 목동개발계획이 확정된 뒤 뚝방동네 철거민들에게 10만원의 이주비만 주겠다는 서울시의 발표에 철거민들은 총궐기했다. 1984년 5개월 동안 철거민들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이를 계기로 “도시계획 전문가들에게 ‘거주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각인시켰다.”(손정목·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사진/ 보행자 전용로를 단지 중간에 낸 목동아파트.


초고층 건물에 짓눌린 목동아파트들

아파트단지 안에 넉넉히 마련된 보행자 전용 통로에는 빨갛게 익은 감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귀갓길 학생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 시장보고 돌아오는 주부들의 발길이 오가며 보행통로는 기다란 광장 같은 느낌을 줬다. 아파트 건물은 출입구 전면의 사람길과 건물 뒷면 주차공간이 이어지도록 서로 앞뒤가 트여 있다. 아파트 입구 화단을 높이 올려 1층 주민들이 마치 제집 정원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한 것도 참신한 시도다.

목동 개발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 등을 계기로 서울 서부의 핵심으로 가꿔나간다는 야심찬 구상하에 이뤄졌다. 신시가지 안에 중심상업축을 만들고 각 아파트 단지를 이 축과 적절히 연결하며, 각 단지 안에 차량에 간섭받지 않고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둔 점 등은 오늘날에도 획기적인 계획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계획안처럼 목동은 서부의 중심축이 되지 못했다. 도시의 중추기능시설 대신 목동아파트단지를 내려다보며 위압적으로 들어선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의 스카이라인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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