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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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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누구든 족쳐라! 정치권 사정 주도하는 안대희 중수부장의 야망… 원칙 앞세운 수사 스타일에 무리수 두기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로, 이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얘기하는데….” 안대희(48) 대검 중수부장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보는 부분은 축재(蓄財)다.” 그는 내친 김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정치자금을 빙자해서 외국에 집 사고 하는 축재 부분은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것 아니냐. 여러분도 많이들 듣지 않나. 어느 의원은 무슨 빌딩 가지고 있더라 하는 얘기 말이다. 공무원들은 500만원 정도만 받아도 다 감옥 가고 그러는데….” 지난 10월16일 아침에 나온 이 말은 그날 밤 텔레비전 뉴스의 헤드라인에 올랐고, 17일치 조간신문들도 ‘대서특필’을 했다. 사이버 공간에선 “속 시원하다”는 평가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을 압도했고, 정치권은 반발하는 척하면서도 ‘진의’ 파악에 머리를 싸맸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빛과 소금이 되어주세요’ 등 수십편의 격려성 글이 줄을 이었다.
‘정치인 축재’ 발언이 남긴 적잖은 파장
하루아침에 대중적 유명인이 되고 난 17일 저녁 때, 안 부장은 깊은 자성의 말을 토해냈다. “검사가 수사로 말을 해야 하는 건데, 말로 말을 했으니…. 장수가 전쟁 중에, 부하들은 소리 없이 열심히 싸우는데, 입으로만 떠든 격이니….” 그는 한 네티즌의 글에 “가슴이 뜨끔하더라”고 했다. “일국의 중수부장이라는 분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발언하고 대응해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는 그 네티즌의 쓴소리에 공감한 안 부장은 고맙다는 댓글을 띄우려 했으나 ID를 확인하지 못해 결국은 포기했다. 그에게 물어봤다. “혹 1%라도, 언론이 써주길 바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 안 부장은 조용히 손을 가로저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기사화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대답처럼 그의 말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식’에는 있었을 성싶다. ‘검사 안대희’의 이력, ‘시민 안대희’의 삶을 되짚어보면, 그날 발언이 갑작스레 나오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988년 그는 어떤 사건을 수사하다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의 가혹행위 사실을 알게 됐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씨가 집권하던 시절이니 안기부의 서슬이 시퍼럴 때였고, 웬만큼 세상 물정을 아는 검사라면 덮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제의 요원들을 불러 조사했고, 그 덕분에 다음번 인사에서 한적한 시골 지청장으로 ‘귀양’을 갔다. 그는 당시를 돌이키며 “맛있는 대게 많이 먹고, 원 없이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고 말한다. 그 뒤 대검 중수부3·1과장, 서울지검 특수3·2부장을 거쳐 특수1부장으로 재직할 때인 1997년, 그는 설계·감리업체 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 해당 업체 관계자는 물론 관련 공직자들을 잇따라 소환했다. 당시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에 이어 충북부지사, 제주시장 등이 불려와 조사를 받았지만, 수사는 이들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그 직전 안 부장은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에게 불려가 “경제를 망치려 드느냐”는 호된 질책을 받았다. 당시 한 관련자의 변론을 맡았던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안 부장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전화를 했다가 “그런 청탁은 들어드릴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난 뒤 사석에서 “안대희는 꽉 막힌 사람”이라는 힐난을 늘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칙을 앞세우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수사 스타일은 외부에 ‘적’을 많이 만들었다. “고집불통이다” “통제가 안 된다”는 정치권의 평가는 이때 만들어졌다. 그 결과 안 부장은 김대중 정부 들어 두번의 검사장 승진에서 연거푸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의 인생에서 첫 ‘삼수’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2002년 8월 승진 인사에는 안 부장의 이름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특수통’으로 그를 알아준 이명재 당시 검찰총장의 배려와 동기생(연수원 7기)들의 후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그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 중수부장으로 직행했다. 당시 이를 두고 그가 노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17회)에다 고향도 지척(경남 함안)이라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대검 중수부가 벌이고 있는 정치권 전방위 사정 역시 결과적으로는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대통령의 ‘실세’(안희정)와 ‘측근’(최도술)을 연이어 수사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무척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소년 등과’ 한 뒤 꽉 막힌 검사로 통해
안 부장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ㅅ아파트 1층에 산다. 14년째다. “값이 싸서” 샀다는 그 집은 30평대지만, 요즘 매매되는 시세의 최고가가 3억원에 못 미친다. “강남 가면 15평짜리나 살 수 있을지 몰라.” 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한때 집을 팔려고 내놓기도 했지만, 하도 안 팔려서 “이제는 강남 가는 것, 아예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검찰 간부 대부분이 강남에 살고, 타워팰리스에 사는 검사들도 있는 마당에 그는 보기 드문 ‘강북 시민’이다. 안 부장을 상관으로 ‘모셨던’ 한 검사의 얘기다. “안 부장은 무엇보다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일은 아주 꼼꼼하게, 어떤 때는 귀찮을 만큼 챙긴다. 아랫사람 입장에선, 솔직히 피곤한 스타일이다. ‘소년 등과’해서 그런지, 어떤 때는 좀 어리다는 느낌이 들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비겁한 짓은 않더라. 그 연배의 선배 검사들이 밥이나 술을 살 때면 으레 기업하는 친구나 동문 선후배를 ‘스폰서’(후원자)로 동행하지만, 안 부장은 그런 사람들 달고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요즘 들어 안 부장은 “외롭다”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 그와 가까운 법무부의 한 검사는 “안 검사장이 받고 있는 ‘중압감’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치권과 일전을 치르고 있는 무장(武將)으로서 왜 부담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중수부장으로 부임한 뒤 두어서는 안 될 무리수를 몇 차례 뒀다. “검사는 기자들에게, 있는 것을 없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거짓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는 이런 지론을 후배 검사들에게 곧잘 가르쳤다. 그러던 안 부장이 현대 비자금 사건을 치르면서 스스로 원칙을 어겼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을 조사할 경우 취재기자들에게 알리기로 했던 ‘엠바고(보도제한) 약정’을 깨고, 그가 죽기 전 세 차례나 조사를 하면서도 비밀에 부쳤다. 그는 나중에 “수사기밀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기자들을 설득하지는 못했고, 그가 얻고 있던 신뢰에는 금이 갔다. 그는 이어 SK해운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수사하고 있다는 내부 기밀이 언론에 보도되자 유출자를 찾아낸다며 취재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조회하ㄴ도록 지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송광수 검찰총장은 지난 6일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 앞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정의감 속에서 서민의 고통을 아는가
“내가 중수부장으로 부임하고, 처음 과장들과 상견례하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앞을 보고 수사하지 않겠다’고. 서울지검장·검찰총장 이런 자리 욕심내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중수부장이라면 수사 검사의 정상인데, 여기까지 했으면 됐지 뭘 더 욕심을 내겠냐. 작년에, 삼수하고도 검사장이 안 되면 깨끗이 물러나려고 했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언론인들을 비롯해서 주위의 도와준 분들 덕분에 가까스로 검사장이 됐다. 그런 뜻에서 이 자리는 ‘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안 부장은 “요즘 아내에게 ‘이 자리가 끝일지 모른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일본 검찰의 얼굴로 꼽히는 수사검사 이토 시게키는 ‘이상적인 검사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검사는 소박한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민이 무엇으로 고통받고,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면 우수한 검사라고 할 수 없다.” ‘검사 안대희’는 지금 ‘한국의 이토 시게키’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강희철 기자 |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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