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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특집] 굶주린 검찰, 끝없는 식욕

대검 중수부 중심으로 정치권 무한사정 돌입… 정말로 정권의 제어력은 통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권을 겨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칼끝이 예사롭지 않다. 대검 중수부의 무한사정에 정치권도 바짝 움추릴 수밖에 없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원칙대로 수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정권의 제어력은 통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권을 겨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 중수부)의 칼끝이 예사롭지 않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베고 나서야 칼을 칼집에 도로 넣을지 예측이 어렵다. “검찰은 늘 배고프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본 검찰의 오래된 금언을 뒤늦게 실천이라도 하겠다는 듯, 대충 멈출 기색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4월 이후 불과 반년 만에 대검 중수부에 불려와 처벌됐거나 처벌을 앞두고 있는 전·현직 정치인은 줄잡아 20명선(표 참조)에 이른다. 짧은 기간에 실로 놀라운 ‘전과’다.

6개월 동안 전·현직 정치인 20여명 불러

나라종금 로비사건에서 김홍일 민주당 의원과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 모두 5명을 시작으로 세무 관련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박명환 한나라당 의원, 현대 비자금 사건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 7명(나라종금 로비사건에 연루된 박주선 의원 제외), 수뢰 혐의로 지난 10월17일 구속된 안상영 부산시장, SK 비자금 사건에서 최돈웅·이상수 의원 등 3명 등이 모두 중수부의 수사선상에 올라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거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거물급 정치인인 김덕룡 의원도 이달 안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된다. 이른바 ‘안풍’ 사건과 관련해서다. 게다가 중수부는 SK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정치인 2~3명의 추가 소환도 예고해놓은 상태다.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이 있고 나서다. 오비이락일까.

지난 13일, 대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자기 측근인 최도술도 건드리는 마당에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 ‘정치판을 한번 새로 짜자’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오늘 아침에도 입장 정리를 했지만, 우리가 대선자금 전반에 대해서 찾아서 할 필요는 없지만, 수사하다 연결돼서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피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는 “중수부가 계속 바빠지겠다”는 말에, “바빠도 해야지, 우리(검찰)가 해야 할 일이니까”라고 답했다. 이쯤 되면 ‘무한사정’이란 말이 어울릴 법하다.

‘정치판을 새로 짜는 일’에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청와대와 검찰은 일정하게 ‘통하고’ 있다. 검찰은 오래전부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정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정치적 독립을 원해왔다. 그것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권 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진행중인 사건들이 바로 그렇다.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의 면면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요원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청와대로서도 검찰의 정치권 전방위 사정을 막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그럴 채비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을 제외하고도, 중수부의 수사 검사는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공자금반)을 포함할 경우 무려 18명이나 된다. 공자금반 7명(중수3과장 포함)을 빼면 11명, 또 한번 양보해 특수지원과장 등 2명의 과장을 배제해도 수사 검사의 수는 9명으로 역대 어느 때보다 많다. 중수부는 곧 검사 1~2명과 일반 수사 관련 직원 등을 더 파견받을 태세다.

게다가 서울지검으로 내려보내는 ‘배당 수도꼭지’도 꽉 잠가버린 상태다. 보통 청와대 등 다른 기관에 모인 첩보와 대검·경찰 등에서 생산한 범죄 첩보 등은 일단 대검 중수부라는 ‘저수지’에 모두 모였다 관할 지방검찰청(지청)으로 배당된다. 그런데 대다수 첩보를 중수부가 움켜쥔 채 내려보내지 않은 지가 제법 됐다. “요즘 대검서 첩보 내려오냐”는 질문에, 서울지검 특수부 관계자가 “언제는 내려보냈답디까”고 되물었을 정도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큰 줄기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놓겠다는 데 맞춰지고 있다. 잔 줄기의 하나는 불법 정치자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온 정치권의 관행을 근절시키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자금이니 선거자금이니 하는 명분으로 기업의 돈을 끌어당기고는 자기 재산으로 한몫 챙기는 정치인들의 부정축재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상수 통합신당 의원의 경우가, 후자는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격이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자기 휘하의 직할 부대인 대검 중수부가 이런 수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인 수사는 중수부가 하는 게 맞다”는 송 총장의 짤막한 말은, 그러나 폭넓은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은 “총장의 직할 부대인 대검 중수부가 자칫 예민한 사건을 잘못 다뤘다가는 총장은 물론 검찰조직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서울지검 특수부 강화론’, “검찰이 다루는 전체 사건의 채 1%도 안 되는 정치인 관련 사건이 검찰조직을 송두리째 흔드는 경우가 많으니 아예 이런 사건을 떼어내 사실상의 독립 조직에서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직비리조사처’신설 방안 등을 모두 몸으로 뒤집어버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설령 상처를 입더라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그 바탕에는 거악(巨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 수사를 제대로 해내지 않고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이 깔려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 끊으려는 강력한 의지

이렇듯 정치인 수사를 여기까지 밀고 온 동력은 일단 송 총장의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현대 비자금 사건만 하더라도, 정치권의 특검법 재입법이 논의되고 있는 상태에서 자금추적만이라도 하라고 다그친 것은 송 총장이었다. “비리가 있다는데, 검찰이 손을 놓고 있어서야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송 총장은 서울지검의 수사력과 보안력을 믿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위에 가끔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사정 드라이브’의 배경이 전부 설명되지는 않는다. 수사 현실에선, 지난 16일 ‘부정축재’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안대희 중수부장의 남다른 일 욕심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SK 사건은 이미 지난 2월 서울지검 형사9부(현 금융조사부)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단서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 관할로 따지면 서울지검이 해도 되는 것을 대검이 가져다 하고 있는 셈이다. 대검은 이를 시인도 부인도 않고 있지만, 당시 형사9부장이던 이인규 원주지청장이 지난 8월 중수부의 수사 개시 전후 두 차례나 불려간 것은 유력한 방증의 하나다. 지난 1999년 대구지검 검사장과 1차장으로 ‘호흡’을 맞춰본 송 총장과 안 부장은 지금도 드러나는 불협화음 없이 정치인 수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특검 도입 차단… 최도술 수사가 바로미터

여기에 ‘가속’을 붙인 것은 정치권의 특검 논의다. 1999년 ‘옷로비’와 ‘파업유도 의혹’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특검제는 검찰을 항시 자극하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특검에 갈 수 있다는 예상은, 좋은 의미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검찰을 쓸데없이 예민하게 만드는 불안정제 구실도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의 도입을 논의한다고 보도된 지난 16일 대검 중수부장의 ‘부정축재’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당시 안 중수부장은, “이번 건은 100%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내 말은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그러면 검찰이 전면전으로 갈 거라고”라고 답했다.

검찰은 정말 정치권과 ‘전면전’을 치르기로 한 것일까. 중수부를 지켜보고 있는 한 대검 간부의 말을 들어보자. “정치인들을 잡아넣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처음에 잘한다고 박수를 친다. 그렇게 몇명 처리될 때까지도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장기화·일상화되면? 그때는 박수를 치기보다는 그만하자고 할지 모른다. 일종의 ‘사정 피로감’이라고 할까.”

6개월 남짓 쉼 없이 달려온 중수부 스스로도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 안 중수부장 스스로 “지쳤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부대’를 증원하고 있는 까닭은, 특검에 대비해 지금까지 벌여놓은 두개의 사건을 완벽하게- 적어도 검찰이 책잡히는 일 없도록- 마무리해야 할 필요 때문으로 해석된다. SK해운 하나만 해도 분식회계 규모가 2천억원대에 달하고, 현대 비자금 사건에서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3천만달러 추가수수 의혹이 아직 수사 중이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중수부가 인력을 보강한다면 그것은 ‘확대’가 아니라 ‘수습’의 의미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 정화의 ‘의지’가 살아 있고, 무엇보다 사건 자체가 생물인 한, 진행 중인 사건에서 어느 쪽으로 ‘불똥’이 튈지는 수사팀조차 예단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금의 대검 수뇌부는 “증거에 따라, 나오면 나오는대로 한다”는 말을 마치 자기암시를 위한 주문(呪文)처럼 외우고 다닌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은, 그 자체로 향후 정치인 수사를 가로막을 수도 있는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의미인 동시에 수사팀에 어떤 것도 수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검찰이 새로운 시험대 올랐다

지금 검찰은 정권의 제어력이 미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전 정권이 누리던 검찰 통제권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기껏해야 법무장관을 통해 “조금 빨리”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게 될 뿐이다. 어찌 보면 검찰이 바라고 또 바라던 ‘이상형’에 크게 한발 다가선 상태인 것이다.

한 검찰 ‘전관’의 고언이다. “예전에는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줬다.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바운더리’(범위)가 정해져 내려왔다. 익숙해지면 알아서 덮고, 피해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스스로 결정하라고 한다. 상층부는 통제에 익숙해 있다.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세대다. 일종의 ‘학습효과’다. 그걸 넘어서서, 검찰 스스로 자제력과 통제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강희철 기자 |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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