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10월09일 제479호 

꼭 용주골로 가셔야 했나요?

군생활로 왜곡된 성의식을 연극으로 일깨워주는 에코젠더의 활동

‘전입 신병’ 한 이병은 누이동생의 편지를 몇번이고 꺼내 읽으며 집안 걱정에 사로잡힌다. 여고생인 동생은 파출부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밀린 등록금을 더 이상 재촉할 수 없어 학교를 자퇴한다. 이를 모르는 한 이병은 답답한 군생활 속에서도 제대 뒤에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꿈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낸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 집에서는 편지가 끊어지고, 전화도 안 된다. 한 이병과 고참은 파주 용주골로 향하고, 포주는 ‘아다라시’가 왔으니 소개시켜주겠다고 떠벌린다. 몸집이 작은 여인이 방구석에 웅크려 있고, 술에 취한 한 이병과 고참이 들어선다. 거부하는 여인. 술김과 홧김에 한 이병과 고참은 여인을 때린다.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며 사정하는 여인이 일어선다. 놀라는 여인, 더욱 놀라는 한 이병. “오빠….” “숙아….” “오빠는 다른 남자들하고 다른 줄 알았는데….” 망연자실 놀라 서 있는 한 이병 앞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여인.

지난 7월 ‘연극과 함께 성(性)벽을 넘다!-에코젠더(EcoGender)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한 이병 외박일기>란 연극 내용이다. 이 연극은 경기도 파주 비룡부대, 전진부대, 필승부대 등 10여개 부대를 순회하며 장병 2500여명을 대상으로 공연됐다.

김송주 에코젠더 사무국장은 “2003년 여성부 공동협력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으로 20대 초반의 병사들에게 생명존중의 통합적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차별 없는 성을 인식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군사지역의 남자들은 단순한 쾌락을 위하여 여성을 상품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군생활로 쌓인 정신적·육체적 억압을 그런 식으로 풀어보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역은 파주시다. 비뚤어진 이들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바로잡아줄 수 있는 것은, 천번 만번의 강요와 질책, 교육보다는 강력한 연극 한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장병들은 연극뿐만 아니라 변호사, 드라마작가, 영화평론가, 여성 경찰관,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의 강의를 통해 심리적·사법적·문화적 측면에서 양성 불평등이 성매매와 성폭력의 근본 뿌리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에코젠더는 “남성은 군에 입대하기 전, 총각딱지를 떼는 것을 당연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여성은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기를 막 벗어난 20대 초반의 장병들이 입대한 후 남성만 있는 고립된 공간에서 성의식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 실시 뒤 병사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한다.

에코젠더 관계자는 “일선 부대 지휘관들 사이에는 병사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입소문이 돌았고, 순회교육이 끝난 뒤 다른 부대에서도 교육요청이 계속 들어왔지만 예산이 부족해 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는 연 4시간의 성교육을 정규화하고 있으나 전담교육보다는 다른 교육의 일부로 성병 감염 예방과 성희롱 예방법 등의 단순지식 전달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군 당국이 감당하기 힘든 양성평등교육 영역 등은 과감하게 민간으로 넘기는 게 병사들의 성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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