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개미’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국인들이 지난 5월28일 이후 넉달 동안 증권거래소 시장에서 9조원어치에 육박하는 주식을 순매수하며 종합주가지수를 50% 가까이 끌어올리는 동안, 개인투자자와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각각 5조2744억원, 3조6482억원을 순매도하며 증시를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 주가 바닥에서 외국인이 자금을 투입해 주가를 상승시키면, 국내 일반자금이 들어와 상승폭을 키우는 모습이 과거 상승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장세는 다르다. 외국인의 집중적인 순매수로 증권사들의 종합주가지수 전망치가 평균 800선 이상을 내다보는 상황인데도, 국내자금의 증시 이탈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두원 대우증권 서울 양재동 지점장은 “예전 같으면 객장이 꽤 붐비고 신규투자 상담도 많이 들어올 만한 상황인데도, 요즘에는 주식투자를 새로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현재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매도 시점을 문의하는 것이 상담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4월 말부터 6조원가량 빠져나가

증시 주변자금의 동향을 보면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이탈세가 좀더 뚜렷하게 보인다. 실질 고객예탁금(매매로 인한 증감분을 빼고 실제로 증시에 유출입된 자금)은 이달 들어서만 6천억원이 줄어드는 등 지난 4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모두 6조원에 이르는 금액이 줄었다.

사진/ 국내 증시의 위험도가 높아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요즘 개미군단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여의도 증권가.(한겨레 이정용 기자)

전문가들은 주식투자를 할 만큼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다, 투자 여력이 있는 중·상위 소득층이 보수적인 투자전략으로 돌아선 점 등을 자금이탈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김승식 삼성증권 증권조사팀장은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개인의 자금운용액(금융기관 예치금+유가증권)에서 자금조달액(차입금)을 뺀 잉여자금 규모는 지난해 8천억원 수준에 그쳤다. 이는 1980년 이후 최저치로 외환위기 이후 90년대 평균 연간 개인의 자금잉여액 30조원의 3%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도 지난 1998년 183조6천억원에서 2003년 3월 439조3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부동산시장 강세로 주택매입·전세자금 대출이 크게 늘어난데다, 소비지출이 늘면서 개인자금 조달이 103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임노중 한화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가계부채의 상환부담이 커지는데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바탕으로 개인자금이 부동산쪽으로 여전히 몰리고 있다는 점도 개인자금의 주식시장 유입을 막는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올 들어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주가지수연계증권(ELS)의 인기몰이도 시중자금의 증시유입을 주춤하게 하는 요인이다. 주가지수연계증권은 위험부담이 큰 주식보다는 원금이 보장되고 지수상승에 따른 수익도 덤으로 가져갈 수 있어,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주가지수연계증권 관련 상품의 현재 판매액은 은행권의 주가연동예금(ELD)에 약 5조3천억원, 투신사의 ELS펀드 약 2조8천억원, 증권사의 연계증권 1조7천억원 등 모두 10조원을 넘어선 상태이다.

황재훈 L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주식시장의 리스크를 피하려는 시중자금이 ELS 관련 상품으로 대거 몰리고 있다”며 “주식투자의 여력이 있는 중·상위층의 투자 성향은 보수화돼 ELS 관련 상품에 몰리는 반면, 중·하위 계층의 자산상황은 점차 나빠지고 있어 주식투자의 여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진/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주식 매수 기반이 취약하다. 1999년 주식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이 코리아’ 펀드 투자설명회.(한겨레)

원금보장형 주가지수연계증권에 몰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과 체감경기 악화가 개인투자자들이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이 사는 20여개 대형종목들이 지수상승을 이끌며 주가를 떠받치고 있지만, 막상 개인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소형주는 수익을 거의 내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지난 9월19일 발표한 올 3분기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6개월 전과 비교한 현재의 생활형편지수는 70으로 지난 2000년 4분기의 66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6개월 뒤의 생활형편 전망지수도 2분기와 같은 85에 머무르는 등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투자전략실장은 “개인들이 지표 경기와 실제 체감경기의 괴리를 크게 느끼는데다, 외환위기 이후 주식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해 주식투자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지면서, 간접투자쪽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주식시장을 아예 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이어지면서 기관들도 매도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기관투자의 절반 이상은 투신권이다. 이 때문에 개인들의 주식선호 여부는 기관투자가들의 매매 동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식형 수익증권(주식형+주식혼합형) 설정 규모는 6월 이후 상승장에서 3조원 가까이 줄었다. 고객들의 차익실현성 환매가 이어지는데다 신규자금 유입도 더딘 상황이어서, 당분간 기관이 순매수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현철 L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보통 개인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온 뒤에 투신권 등 기관들로부터 자금 유입이 이어진다”며 “개인의 자금 유입이 정체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관들의 적극적인 증시 참여를 기대하긴 당분간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은 국내 자금의 증시유입으로 인한 ‘2차 랠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자금 유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내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데다, 자금이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저축성 예금이나 위험도가 크지 않은 간접상품으로 몰리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의 3분기 저축성 예금 총액은 41조27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5월 현재는 259조4080억원으로 무려 6배 이상 급증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의 격동을 통해 투자자들이 ‘자금은 안전한 곳이 최고다’라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다”며 “주가가 아주 폭등하거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등의 큰 변화가 없는 한, 당분간 국내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세 변화 없으면 개미들의 귀환도 없어

그러나 신규자금 유입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추가적인 자금이탈 규모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식 관련 자금의 수신 규모는 30조원 수준에 접근해 있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하방경직성을 보이는 수준이다. 또 환매 수요도 대강 마무리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실물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는 4분기나 내년 초에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최형준 동원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가계의 은행 차입이 줄고 카드사 대출금 상환은 늘고 있는 등 가계의 부채상황이 나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9·5 부동산대책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조처, 경기 회복세 전환 등을 고려할 때, 내수경기가 회복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국내 자금의 주식시장 유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