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8월07일 제471호 

국회의원 ㅂ씨의 경우…

‘배경’ 믿고 끝까지 버티는 작전에 지쳐버린 특수통 ㅅ검사의 비애

“한마디로 씁쓸하지요.” ㅅ검사는 지금도 가끔 입맛을 다신다. ‘특수통’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그’ 사건만 떠올리면 기분이 영 찜찜하다.

몇년 전, ㅅ검사는 ㅂ씨를 불구속기소했다. 적용된 죄목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위반. 끈질긴 내사 끝에 두어 가지 명목으로 5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밝혀냈다. “나와라.” “바쁘다.” 당시 여당쪽 ‘배경’이 있던 그는 버티기 작전을 폈다.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대면조사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ㅅ검사는 구속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 과정은 수사보다 열배는 더 어려웠다. “ 모시고 △△△ 간다.” “▽▽ 사업 때문에 긴한 약속이 있어 출석이 어렵다.” ㅂ씨는 걸핏하면 공판기일 연기신청을 냈다. 뒤론, “돈 줬다”고 진술한 ㅎ씨에게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당신, 사업에 뜻이 없나 보지 그러고도 장사 계속할 수 있을까?” “제발 증언하지 마라. 당신이 법정에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ㅎ씨는 공판에 서길 꺼려했다. “뻔히 아는 얼굴인데, 공개법정에서 얼굴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 ㅅ검사는 그때마다 간곡히 설득했다. “이런 사람은 처벌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소 좀 도와주시오.” ㅎ씨는 망설이다 “우황청심환 몇알 먹고 큰 결심 하고는” 법정에 나왔다. 그런 날이면 ㅂ씨는 법정 앞까지 왔다 되돌아갔다. 비서를 먼저 보내 ㅎ씨가 나왔는지 알아본 뒤 ㅎ씨가 보이면 발길을 돌렸다. 재판은 자꾸 연기됐다.

이렇게, 1심판결까지 무려 2년을 끄는 동안 ㅅ검사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하지만 그는 ㅂ씨의 공판 날이면 어김없이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공판부 검사들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였다. 그런 날이면 그는 아침부터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 “쉽게 끊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거, 꼭 ㅅ검사가 (공소유지)해야겠어? 공판부에 맡기지, 그래.” “모처럼 지방에 갔으면 푹 쉴 일이지, 뭣 하러 공판관여까지 하고 그러나?”

ㅅ검사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2년 남짓 만에 내려진 1심판결은 기대와 달랐다. ㅂ씨에게 일부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적용된 혐의 2가지 가운데 큰 무더기는 무죄가 나고, 작은 덩어리만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3가지 무죄 이유를 들었다.

ㅎ씨는 검찰 조사에서 처음 ㅂ씨에게 돈을 건넨 시점이 “찬 바람 날 무렵, 저녁 시간에”라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11월 초순으로 고쳤다. 2년 전 일을, 아무 기록도 없이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 되살려내자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공판에서는 “연말이 가까운 12월”로 확정이 됐다. 이게 첫번째 무죄 사유가 됐다.

ㅎ씨는 그 돈을 서울 시내 한 검찰청 앞에서 ㅂ씨에게 건넸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청 앞에서 돈을 건넨다는 것이 상식에 반한다”고 봤다. 세 번째 이유는 돈의 조성방법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ㅎ씨는 ㅂ씨에게 준 돈을 “일부는 은행에서 찾고, 일부는 갖고 있던 현금으로 줬다”고 했는데, 재판부는 “왜 1천만~2천만원씩이나 되는 많은 돈을 은행에 안 맡기고 현금으로 갖고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ㅅ검사의 말이다. “조금 규모가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면 보통 수중에 일, 이천만원씩 갖고 있다는 걸 판사님만 모르더군요.” ㅂ씨에게 내려진 최종 판결은 벌금형이었다.

ㅂ씨는 요즘 ‘금배지’를 달고 텔레비전 화면에 곧잘 등장한다. 가끔은 대통령 주변에서 오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강희철·김태규 기자 /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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