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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당당한 졸업장 지방대 출신으로 차별과 싸우며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입한 젊은이들의 이야기
지방대 출신에게 취업의 문은 좁고 문턱은 높기만 하다. 특히 대기업에 취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입사해 서울 유수 대학 출신들과 어깨를 겨누거나 그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지방대 인재’들도 많다. 중소기업에 진출해 고유영역을 확보한 개척자들도 있고, 취업 대신 스스로 업체를 일구거나 프리랜서로 성가를 드높이는 지방대 졸업자들도 눈에 띈다. 아직 사회적 성공의 기준엔 크게 모자라지만 이들에겐 젊음과 투지라는 무기가 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이들에게 지방대 졸업장은 숨겨야 할 허물이 아니라 자랑스런 훈장이다. 어려운 조건을 딛고 당당하게 승부했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 4명의 사회 진출기를 소개한다.
대기업
지난 2000년 6월 학군장교(ROTC)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을 포함해 49곳에 원서를 냈으나 서류전형을 통과한 곳은 26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장교 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26개 업체 가운데 21개 업체에서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공짜는 아니었다. 면접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회사의 현황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식품업체의 면접을 볼 땐 할인마트에 들러 경쟁업체가 판매하는 라면의 진열상태와 입사희망 업체의 라면 진열상태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하니 면접관 앞에 섰을 때 막히는 게 없었다. 한번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계열사의 면접을 보게 됐으나 정보가 부족했다. 재무제표는 견실했지만 상세한 회사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면접 2시간 전에 회사에 도착해 마케팅부를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한 뒤 도움을 청했다. 부서의 간부는 빙그레 웃더니 자세한 회사 정보와 함께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곧바로 영어에 능통한 선배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1시간 남짓 영어 자기소개서를 달달 외웠다. 면접관은 영어로 소개를 해보라고 요구했고 그는 유창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다부진 임기응변 덕택에 면접 직후 곧바로 구두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삼성테스코에 입사한 그는 신입사원 연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입사동기 30명 가운데 지방 사립대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그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배기겠다는 각오로 온몸을 던졌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회사 간부로부터 “지방대생이 연수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차피 지방대 졸업장은 못 바꿉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아야죠. 자신감과 진취적인 도전정신만 있으면 지방대생이라고 꿀릴 게 뭡니까.”
중소기업
그는 경기도가 운영하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를 찾아 ‘취업스쿨과정’을 들었다. 3개월간의 교육과정과 상담을 통해 대기업보다는 차라리 중소기업에서 전문경력을 찾기로 마음을 바꿨다. 공구제조 중소기업인 남수산업(경기도 화성시 정남공단)의 해외영업팀 구인광고를 보고 합격했다. 그는 얼마 전 이탈리아와 벨기에 등 유럽지역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오는 9월엔 미국을 방문하고 10월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건축용 공구 관련 박람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재미와 활력이 넘치는 생활이다. “중소기업에선 제조부터 수출까지 모든 과정을 두루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곧바로 성과가 나타나는 점도 좋더군요.” 그는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기업에서 넥타이 매고 폼나게 근무해야만 빛나리라는 것은 환상입니다. 중소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꿈을 펼칠 수 있거든요. 더구나 지방대 출신이라면 굳이 대기업에 목맬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월급요 물론 적겠지요. 하지만 젊음이 있는데 돈 몇푼에 기죽을 일 있나요”
창업
그는 일찌감치 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대신에 졸업 직후 학교에 들어선 창업보육센터에 애완견 의류사업계획 신청서를 접수했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지금은 상당히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애완견 의류사업은 생소한 분야였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수입서적도 찾아봤다. 자본이 없으니 집이 사무실이고 공장이었다. 공장이라야 미싱 2대와 컴퓨터 1대, 재단 테이블, 다리미와 원단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만 있으면 됐다. 스물한살 때였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맞춤전문 애완견 의류 쇼핑몰(www.vono.net)은 이제 월 매출액 300만~400만원을 올리고 있다. 그는 틈틈이 여행을 다닌다. 웹서버만 관리하면 되므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취직한 친구들은 수입도 좋고 여유도 있는 그의 생활을 부러워한다. 인터넷을 이용한 창업 모범사례로 꼽혀 지난 7월10일엔 서울 선린인터넷정보고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특강도 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큰돈 필요 없으니 일단 시작하면 실패하더라도 남는 게 많을 겁니다. 이력서 쓰다가 허송세월하느니 한번 저질러보라고요.”
프리랜서
말이 쉬워 ‘독립선언’이지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머물러 있어도 더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이 결단을 재촉했다. 프리랜서가 일을 수주할 경우 보통 경력과 자격 따위를 내세워 계약하지만 그는 아예 시제품을 만들어 제시했다. 퇴짜 맞으면 헛수고한 셈이 되지만 그가 내세울 건 실력뿐이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했더니 작업주문도 끊이지 않았다. 프리랜서에겐 신뢰가 생명이다. 마감시간을 맞추느라 날밤을 새우며 일에 몰두했다. ‘일벌레’니 ‘악바리’니 하는 별명도 얻었다. 이젠 3~5명 정도의 팀원을 거느리며 공동작업을 지휘할 정도가 됐다. ‘아바타’ 주문이 많을 땐 하청을 주기도 한다. 알아주는 대학 졸업자들을 써봤지만 ‘실력은 있어도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력만큼, 일한 만큼 버는 게 프리랜서입니다. 이 세계에선 지방대 나와도 실력 있고 성실하기만 하면 누가 뭐라고 못합니다. 계약하는 데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으니까요.”
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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