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06.26(목) 제465호

[특집] 잠자던 역사가 부활한다

광통교·수표교등 역사유적 되살릴 듯… 백운동·삼청동천 복원은 타당성 조사중

곧이곧대로 따지자면 청계천 ‘복원’은 공상적인 구호다. 이상을 실현시켜보자는 말이 오히려 맞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청계천이 한양의 명당수로 귀히 대접받았던 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한양 천도 이래 대대적으로 도시의 하수구였다. 이와 관련해서 세종 때엔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세종실록>에 보면 당시 청계천에 도성 주민들이 자꾸 오물을 갖다 버려 오염이 심하자 신하들이 대책을 논의하다 의견이 둘로 갈렸다. 영의정 황희 등은 개천에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도록 금지하여 물을 청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집현전 교리 어효첨은 어차피 도읍지는 사람들이 붐비고 많이 살기 때문에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쌓이는 현상은 당연하므로 더러운 것을 흘려보낼 넓은 시내가 있어야 도읍이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했다. 결국 세종은 “도심의 생활하천”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청계천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가름하였다.

상류복원, 토지매입비만 5천억원

그러므로 청계천을 수변공원형, 자연습지형 등으로 가꾸겠다는 것은 이제까지 청계천이 갖지 못했던 기능을 담겠다는 뜻이다. 청계천은 대부분 건천이었다가 여름 홍수 때만 물이 흘렀던 예전 모습과 달리 이번 공사가 마무리되면 한강물, 중랑하수처리장, 지하철 지하수 등에서 끌어온 9만여t의 물줄기가 항상 흐르게 된다. “도심에서 인공적이지 않은 하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담당 공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기에 청계천의 복원을 논하자면 그 밑그림은 청계천 그 자체라기보다는 남북 방향 23개의 세류들을 받아안고 서에서 동으로 도심을 관통하며 개천이 흐르던 옛 서울의 모습과 연관 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남촌으로 나뉘던 한양의 옛 동네는 물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물길이 닦아놓은 지형에 맞춰 구불거렸던 길들은 이후 일제 때 시구개정사업을 벌이면서 비교적 반듯하게 다림질됐다. 상류부터 복원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청계천 본류에 앞서 상류를 이루는 중요한 두 개의 물줄기, 즉,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의 복개를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종전의 빗물과 하수를 함께 흘려보내는 시스템을 개선해 우수관과 하수관을 따로 만들어 빗물을 청계천에 흘려보내면 자연형 하천 개념에 더욱 가까워진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이들 상류 복개지역은 자동차길로 쓰이고 있어 이곳 뚜껑을 걷어내고 집들을 뒤로 물려 다시 길을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토지매입비만 5천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 서울시는 일단 상류 복원을 중·장기 계획으로 삼고 올 연말까지 타당성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청계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유적은 다리다. 1760년 여름철 홍수피해로 골머리를 앓던 영조가 청계천에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벌였던 ‘경진준천’ 이후 일제강점기 전까지 청계천 본류에 놓여 있던 다리는 송기교, 광통교, 수표교, 오간수교(오간수문) 등 모두 10개였다. 청계천의 다리는 북촌과 남촌을 잇는 중요 통로였기에 이에 얽힌 풍습도 많았다. 보름날이면 장안 남녀가 종각에서 종소리를 들은 다음 흩어져서 여러곳의 다리를 산책하였는데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들은 퉁소를 불고 북을 치며 날밤을 새우는 풍습이 조선 중기까지 성행했다고 전한다.

18세기 이후엔 소설책을 읽어주는 전기수(기이한 이야기를 전하는 노인이라는 뜻)가 청계천 다리에 등장했다. 동대문 밖에 살던 전기수는 엿새 간격으로 서울 장안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낭송하는데 매우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읽기를 멈춰 관객들의 애를 태우며 호주머니를 비우게 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복원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광통교(광교)와 수표교(청계2가)다. 광통교는 1923년 청계천 암거공사 때 콘크리트로 된 하수관이 박힌 채 지금까지 도로 밑에 묻혀 있으며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 옮겨져 있다. 전문가들은 광통교는 안전진단을 거쳐 복원하되 구조상 문제가 있다면 난간석 정도를 활용하고, 수표교는 안전하게 보관돼 왔기 때문에 제자리에 얹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3/06/021005000200306260465056.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