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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06.19(목) 제464호

[특집] 한국의 안보 ‘백지 청사진’

대통령도 모르는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전략… 국방과 외교·경제·통일 등 아우르는 중·장기 전략 필수

<한겨레21>은 6월12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방부에 미사일방어(MD)체제, 국방비 증액 등 최근 안보 현안 10개항의 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질의서를 받은 쪽은 하나같이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소관업무가 아니다’ 등의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MD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 있었나’, ‘현재 우리나라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미사일(PAC-3)은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나’는 질의서 문항을 두고 국방부 관계자는 “그런 질문은 우리에게 하지 말고 주한미군한테 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질의서를 만들면서 ‘국가안보의 결정적인 요소인 국방, 경제, 통일에 관한 기본전략을 국가안보전략이라고 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을 갖고 있습니까. 있다면 그 내용의 뼈대는 무엇입니까’란 내용을 넣었다. 북핵·주한미군 문제 등과 관련해 줄곧 ‘국익’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란 큰 그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 답변·문서 등 없어

결국 정부의 공식 답변이 오지 않아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 있는지,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온전히 <한겨레21>의 몫이 되었다. 국가안보전략의 개념은 ‘국가안보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군사, 경제 및 정치·외교 전략에 대한 포괄적인 기본원칙을 발전시키는 술(術)과 과학’(미 합동군사용어사전)으로 잡았다.

취재 결과 ‘한국의 공식적 국가안보전략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국방기본정책서를 작성할 때 국방부가 명시적인 국가목표와 안보전략을 세워 대통령이 결재를 한다’, ‘참여정부는 개편된 NSC가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된 중장기 정책 조정과 수립, 현안 업무를 조정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참여정부 12대 국정과제에 들어 있다’ 등의 반론을 펼 것이다.

또 웬만한 안보 관련 자료들이 비밀로 묶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관련 정부부처가 내부적으로 국가안보전략을 세웠지만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가 펴낸 책자나 자료 등에서 국가안보전략을 명시한 공식 문서를 찾아볼 순 없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국방백서>나 국방기본정책서를 안보전략이라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군사 부분을 뺀 경제·외교 등 다른 부분의 전략이 없어 국가안보전략으로는 불완전하다. 그동안 남북 대치 현실에서 군사 위주의 안보전략이 불가피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안보개념의 변화·확대에 따라 안보전략 패러다임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보정책은 국가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2000년 <국방백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과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안전된 평화정착의 원년’으로 기록하는 것을 2000년 안보정책 목표로 정했다. 2000년 이후 <국방백서>가 나오지 않았고, 올 2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터라 참여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차원의 공식 문서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전략 부실로 주변국에 당하기 일쑤

국가안보전략을 체계화하지 못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도 비슷했다. 97년 <국방백서>는 “…전쟁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인 전쟁을 도발할 때 적극적 방위개념에 따라 수도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적의 전쟁수행 의지를 분쇄하고 적 군사력을 파쇄함으로써 국토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고 되어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98년 <국방백서>는 “우리 군의 대북 군사정책 기본목표는 평시에는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을 억제하되, 국지도발을 자행할 경우 이를 조기에 박멸함과 아울러 이에 상응한 응징보복을 가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고, 북한의 전면 남침시에는 한-미간의 긴밀한 협력과 주변국과의 협조하에 이를 격퇴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는 초강경 입장을 보였다. 99년 <국방백서>는 “우리 군의 대북 군사정책의 기본목표는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감소함으로써 평화통일 과정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대북 군사정책의 요체는 전쟁 및 각종 도발의 억제와 도발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로 바뀌었다.

<국방백서>의 대북 군사정책 기본목표가 97년 ‘적극적 방위’에서 98년 ‘군사적 통일’, 99년 ‘적극적 대응’으로 해마다 급변했다. 이는 새로 출범한 정권의 지휘부가 국가안보전략을 마련하고 이에 따른 국방지침을 국방부에 하달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한편, 국가안보전략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우리 안보의 기본틀이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 구조 아래서 한국의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다. 안보의 상당부분을 미국에 기대는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한국이 국가안보전략을 고민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패트리엇 미사일 구입 논란에서 ‘참여정부가 국가안보에 대한 밑그림이 있는지’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한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MD 첨병 노릇을 맡게 되면 미래의 국가 전략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패트리엇 도입은 안보환경 변화에 대한 전략적 고려 없는 전술적 차원의 접근이란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MD체제 편입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군이 독자적 영공방어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패트리엇 미사일을 도입한다고 MD로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국방부 관계자는 패트리엇 미사일 도입 관련 질문에 대해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도입무기 선정 작업을 할 계획이지 패트리엇 미사일을 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해명을 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MD를 고리로 한-미-일 네트워크를 짜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독자적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한 ‘한국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미 동맹 상황에서 MD는 두 나라가 같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안보전략 작성 제도화 필요

전문가들은 21세기 한국군의 전력구조을 짤 때는 동맹을 중심으로 한 안보협력 구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미국·일본 등과 동맹을 유지할 경우에는 현재의 지상군 위주의 전력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한국이 미-중 사이에 균형 외교를 지향한다면 미-일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장기적 국가전략에 대한 숙고 없이 무작정 최신무기만 사고 보자는 식의 군사력 증강 구상은 방향감각을 잃은 것이다.

또 국가안보전략에 관한 권위 있는 지침이 존재한다면 국방비 증액과 관련해 예산편성 부처와 국회 등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국방부로서도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안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에 대한 전략을 짜는 절차가 입법화되지 않으면 국가안보전략을 실제로 작성하기 어렵다.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은 86년부터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물론 국가안보전략이 있더라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 비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국가안보전략을 세운 뒤 내려야 한다. 대통령에게 국방·경제·정치·외교 분야를 포함한 국가안보전략을 국회에 제출하게 하는 등 국가안보전략 작성 절차를 체계화·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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