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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선 총구를 닦고 있다” 아웅산 수치 암살기도에 경악하는 버마 반독재 민주화 지도자들 긴급대담
“버마 정부군 북서사령부 본부와 인접한 지도곤 마을 부근에서 아웅산 수치의 북부여행을 수행하던 민족민주동맹(NLD) 지도자와 당원들 차단당한 상태… 충돌상황 발생… 국제 언론들의 주의 깊은 관찰 요청.” 5월31일 이른 새벽, 버마연방민족회의(NCUB)로부터 ‘급전’ 꼬리표를 단 이메일 한통이 날아들어 심상찮게 돌아가는 버마 정치상황을 처음 감지했다. 그러나 버마민주혁명 관련 단체들이 시간대별로 전해주는 뉴스와, 같은 날 오후부터 랑군을 통해 흘러나오는 외신보도 내용은 어지럽게 부딪치며 혼선을 일으켰다.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족민주동맹 당원 17명 보호구금 중.”(군사정부 대변인 틴윈) “군·경찰 발포로 최소 70여명 사망. 아웅산 수치 군부대 감금. 틴우 부의장 행방불명 상태.”(민주개발네트워크 속보) “아웅산 수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끼리 충돌. 군·경 총격 사실 없고 총상자도 전무.”(군사정부 탄툰소장 발표) 분명한 건, 현재 군사정권이 랑군을 포함한 버마 전역의 민족민주동맹 사무실과 모든 대학들을 폐쇄했고, 아웅산 수치와 틴우 부의장을 비롯한 민족민주동맹 지도부가 구금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유엔특사 라자리 이스마일이 랑군에서 군부와 접촉 중이지만, 6월8일 현재까지 군부는 라자리의 아웅산 수치 면담요청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1988년 ‘랑군의 봄’ 이후, 군부와 민주진영 양쪽이 현재 가장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고 있는 버마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시아네트워크’는 긴급 인터뷰 지면을 마련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버마-타이 국경에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벌여온 민족해방·민주혁명 세력들의 지도자들을 무선전화와 인터넷으로 함께 엮어 긴급성과 지리적 한계를 메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날짜 : 2003년 6월7일 참가자 : 나잉옹(Naing Aung·버마학생민주전선 전 의장·현 민주개발네트워크 집행위원장) 뇨온민(Nyo Ohn Myint·민족민주동맹해방구 외무담당위원) 묘윈(Myo Win·버마학생민주전선 사무총장) 바틴(Ba Thin·카렌민족연합 의장)
정문태 : 자, 우선 버마의 각 민족해방·민주혁명 세력들은 지난 ‘5월30일 공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분위기부터 좀 전해보자. 뇨온민 : “올 것이 왔다”는 게 우리 재외 민족민주동맹(NLD-LA) 분위기였다. 이미 예고되었던 공격이었기에 그동안 우리는 아웅산 수치의 안전을 염려하며 국제사회가 ‘행동’해줄 것을 줄기차게 호소해왔다. 우린 이번 사건을 군사정권이 민족민주동맹(NLD)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로 사전에 계획한 아웅산 수치에 대한 암살기도로 규정했다. 바틴 : 충분히 예상했던,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국제사회 결의와 소수민족들의 열망, 그리고 버마인들의 기도를 모조리 깨트려버린 사건으로 국경지역 소수민족들에게도 엄청난 분노를 안겨주었다.
현장에서 최소 70여명 살해
나잉옹 : 민족화해를 놓고 대화 분위기를 띄우던 참에 벌어진 일이라 큰 충격을 받았다. 이건 군사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한 조직적 테러다.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범죄행위다. 버마라는 내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놓고 우린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묘윈 : 오래 전부터 아웅산 수치에게 벌어질 이런 형태의 위험을 경고해왔던 터라 놀라지 않았다. 그동안 군인들이 저질러왔던 만행들을 놓고 본다면 이건 보통 때보다 조금 더 규모가 컸을 뿐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희생당한 모든 이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 정문태 : 현재 당신들 조직은 ‘5월30일 공격’을 놓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바틴 : 카렌민족연합(KNU)은 곧장 모든 반독재·민주투쟁 세력들에게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점임을 강조했고, 군부에게는 1995년 국제연합(UN) 결의안에 따른 대화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으로는 유엔과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이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줄 것을 당부하는 외교전에도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카렌은 UN 이름 아래서라면 현실적 구속력을 지닌 미국이나 영국이 버마 사태에 개입하는 일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고. 나잉옹 : 우리 민주개발네트워크(NDD)는 현재 과제를 ‘홍보·압박전’으로 잡고 군사정부에게는 즉각 사상자와 구금자 실태를 공개하고 다시 대화에 나서기를 요구했고, 동시에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즉각 실효성 있는 행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묘윈 : 모든 가능성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그게 대규모 시위든 무장투쟁이든 간에 버마 내의 민주투쟁 조직들과 연대해서 현 사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우리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도 세계 시민사회의 지원 없이는 군사독재를 물리칠 수 없다는 걸 인식하며 나름대로 국제연대에도 치중하고 있다. 뇨온민 : 민족민주동맹 재외망명조직에 해당하는 우리는 버마 내에서 활동하는 민족민주동맹을 지원하는 일이 의무다. 따라서 상황마다 우리 입장이 다를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놓고 국제사회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며 각국 정부와 UN 그리고 각 시민단체들을 향해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 정문태 : 다들 버마 내부조직과 비선을 달고 있을 텐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말고 각 조직들이 확보한 첩보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을 한번 들여다보자. 이번 사건을 주도한 이가 누구라고 보는가? 뇨온민 : 누구라고 단정하긴 힘들지만, 국가평화개발위원회(SPDC)를 주도하는 최고위급 장군들이 배후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 장군들이 5월30일 공격을 주도했던 단체인 연방단결개발협회(USDA)의 의장단이라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건 사전에 장군들이 꾸민 계획이라는 게 명백해진다. 공격 현장에서도 경찰과 군인들이 공격자들은 한명도 체포하지 않은 채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 당원들만 잡아갔던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나잉옹 : 우린 자체적으로 정보를 종합해서 국가평화개발위원회 제2서기장 수윈 장군과 지역 여단장이 치밀하게 준비한 공격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게 있다. 군사령관들이 정기적 절기회의를 마치자마자 5월30일 공격이 벌어졌다는 사실인데, 이건 군 최고지휘관 모두가 사전에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정문태 : 아웅산 수치와 틴우 부의장을 비롯한 당원들 소재라든지, 또 당시 현장상황에 대한 다른 정보도 있는가? 뇨온민 : 아웅산 수치는 현재 랑군 인근 군부대에 감금당해 있지만, 틴우 부의장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그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당시 현장에서 아웅산 수치를 방어했던 당원들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희생자 수는 아직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없는 상태지만, 현장에서 최소 70여명이 넘는 이들이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당시 공격자로 동원되었던 만달레이 감옥 죄수들까지 정부군이 대량학살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학생들, 전단·포스터를 뿌리기 시작하다
정문태 : 군부는 이번 5월30일 공격을 놓고 어떤 입장을 보이는가 바틴 : 이번 공격사건과 상관없이 국가평화개발위원회(SPDC) 장군들은 권력을 무기한 장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 정치적 해결을 거부했다. 나잉옹 : 당시 공격 현장에서 탈출했던 수많은 이들이 진실을 증언하고 있는데도 군부는 단호하게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 측근들이 잘못을 저질러 화난 시민들이 맞서면서 벌어진 일이다”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만달레이 감방에서 동원한 공격자들이 “영국놈 아내를 따르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영국놈 아내를 죽여라”는 따위의 구호를 외쳤는데도 말이다. 아웅산 수치를 직접 겨냥한 암살기도였다는 뜻이다. 정문태 : 왜 이 시점에서 이런 공격이 벌어졌고, 또 이 공격으로 누가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뇨온민 : 현재까지 특별한 동기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공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90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한 뒤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그러다가 최근 아웅산 수치가 정치 여행길에 오르면서 시민들 환호가 커지는 걸 바라본 군부가 위기감을 느껴 ‘이익’에 대한 구체적 계산 없이 저지른 행위라는 게 우리쪽 생각이다. 말하자면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장사를 했다는 뜻이다. 나잉옹 : 이익? 이건 군부가 제 무덤을 판 꼴이다. 단기적으로는 폭력구조를 강화하면서 군부가 이익 아닌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믿겠지만, 이건 결국 민중을 분노케 함으로써 민중의 정치력을 고양시켜 그 힘이 군부를 향해 되돌아가는 부메랑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머잖아 이 공격이 낳은 손익계산서는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정문태 : 이 공격사건 이후 버마 내 학생들 동향은 어떤가 내부 학생들과 비선을 달고 있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이 부분은 전문가일 텐데. 묘윈 : 버마 전역의 학생들이 이번 상황을 놓고 정치적으로 크게 각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학생들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놓고 학생들은 비선조직을 다지면서 전단과 포스터를 뿌리기 시작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군사정권은 학생 시위가 전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초기 사태’로 사실을 규정한 듯, 잽싸게 모든 대학을 폐쇄했다. 6월7일 오후 3시 현재, 버마 내 몇몇 대학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정보가 막 들어왔다. 정문태 : 버마 내 민족민주전선은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가? 뇨온민 : 버마 내 야당지도자들은 현재 아웅산 수치 부재상황이지만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또 지금은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아 투쟁에 박차를 가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민족민주전선쪽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민 정보수집에 주력하며, 각 시민단체를 비롯해 국제사회와 통하는 외부 채널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무장투쟁의 정당성 높아져
정문태 : 5월30일 공격 이후 전선과 국경 상황은 어떤가? 정부군의 이상징후 같은 게 감지되는가? 바틴 : 국가평화개발위원회가 국경지역뿐 아니라 전군에 고단위 비상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묘윈 : 학생군이 장악하고 있는 국경 지역에서는 정부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아직 정부군이 특별한 군사작전 기미를 보이지는 않지만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한 것을 확인했다. 연속적인 비상회의를 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군내부 단속을 강화한다는 첩보도 들어오고 있다. 또 학생군과 지역 주민들이 통할 만한 선들을 철저히 차단하기 시작했다. 정문태 : 이번 5월30일 공격이 국경지역 각 민족해방·민주혁명 무장세력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나잉옹 : 이번 사건이 무장투쟁을 벌여온 반독재 투쟁세력들에게 좀더 강한 응집력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일로 시민들 사이에 무장투쟁의 정당성이 높아졌고, 결국 단기적으로 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이다. 뇨온민 : 이해와 협력이라는 대전제 아래 각 혁명조직들이 좀더 강한 통일전선을 형성해서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나가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특히 민족민주전선(NDF)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카레니주와 샨주 정치조직들에도 자극이 되리라고 본다. 묘윈 : 지금 국경에선 모두들 총구를 닦고 있다. 무장투쟁세력들 사이에 통일전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전선 강도를 예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감이 든다. 이건 상대적 성질을 지닌 탓이다. 정부군 공세가 강화된다면 자연히 전선은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바틴 : 단기간에 드러날 성질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무장강화 기운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군부가 앞으로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또 양쪽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큰 위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대비로 국경은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정문태 : 의미를 좀 넓혀 버마 전체 정치상황은 어떻게 돌아갈 것 같은가? 나잉옹 : 이번 공격사건은 분명히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민중을 다시 정치적 세력으로 묶어내는 동기를 마련했다는 뜻에서다. 이번 사건으로 민중 사이에는 대화를 통한 단순한 방식보다는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적 회담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군부와 아웅산 수치의 대화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대립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만약 군부가 개혁적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않는다면 결국 자신들의 탈출구를 스스로 잃는 사태로 돌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웅산 수치는 우리의 행운이다”
뇨온민 : 변화 없이는 ‘정상화’에 대한 희망도 없다. 현재 군부와 민족민주동맹 양쪽 모두 매우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버마 내 해방구나 망명지에서 활동하는 정치조직들, 특히 민족해방·민주혁명 세력들의 연대 정치조직인 버마연방민족연립정부(NCGUB)나 버마연방민족회의(NCUB) 같은 기구들의 역할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정문태 : 아웅산 수치 한명에게 집중된 버마 내 정치구조가 상당한 취약성을 지녔다는 지적이 있어왔고, 특히 지난주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민주진영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단점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부분을 놓고 의견을 나눠보자. 나잉옹 : 동감한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정치운동이 지도자 한명에게 쏠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로 보면, 우리는 자유로운 국가도 아니고 또 한번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이 지녔던 그런 근원적 자유를 경험해본 적도 없다. 따라서 버마 민중에게는 ‘이 시간’, ‘이 장소’에 아웅산 수치를 지녔다는 사실이 큰 행운이다. 우린 한번도 정치가를 지녀본 적이 없던 사회다. 따라서 아웅산 수치와 버마 정치는 일반론으로 재단하기 힘든 특수한 성질을 지녔다 뇨온민 : 버마 민주세력의 취약성은 이리저리 비난하면서도 40년 군사독재자들의 집단폭력 정치구조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왔던 게 많은 정치 전문가들의 행태였다. 정치는 상대적이다. 40년 동안 단 한번도 정치가를 지녀보지 못했던 버마에서 정치 자체를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 아니겠는가? 바로 아웅산 수치가 있었던 탓이다. 아웅산 수치 자체가 버마의 정치구조인 셈이다. 이건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한때 민족민주동맹 청년조직을 이끌며 아웅산 수치를 경호했고 또 정책결정에도 참여했던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웅산 수치는 버마 민주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버마 정치 그 자체다. 바틴 : 버마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 방안이 ‘버마연방제’라 본다면, 우리 버마 내 소수민족들에게는 아웅산 수치가 유일한 구심점이고 유일한 정치적 축이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모두 받아들이는 유일한 지도자가 아웅산 수치라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아웅산 수치에게 집중된 현 상황은 오히려 강한 응집력을 지닌 정치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한 뒤부터 아웅산 수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30여년 동안 버마에는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지도자가 없었다. 분열과 마찰을 빚어왔던 버마 현대정치사에서 아웅산 수치의 등장은 통합으로 가는 다리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중통일전략 노선을 강화하자
정문태 : 말이 난 김에 비폭력을 강조해온 민족민주전선과 극에 서 있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민족민주전선을 어떻게 보아왔는가 최근 국제적으로도 ‘안티-테러리즘’이 유행처럼 휩쓸고 다니는 판이라 버마학생민주전선의 무장투쟁도 그 공간이 좁아지고 있을 텐데? 묘윈 : 민족민주전선과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른 셈이다. 정치적 문제를 평화적 정치구조 속에서 해결한다는 건 이상적이긴 하지만, 시민을 학살해온 군사독재정권이라는 상대를 놓고 본다면…. 정치적 견해와 이해는 모두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안티-테러 같은 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주제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최근 국제적 기류에 상관없이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민들을 살해하고 정치를 중단시켜버린 군사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한. 정문태 : 끝으로 민족민주동맹의 민주화투쟁을 점검해보면서 이야기를 닫자. 나잉옹 : 지속적으로 압박받는 상황 속에서 민족민주동맹이 우리가 보고자 했던 목표에 닿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점과 결점을 동시에 드러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아웅산 수치가 두 번째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뒤부터는 분명히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궤도에 올라섰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게 바로 군부에게 위기감을 주면서 이번 암살기도와 같은 상황을 낳은 계기가 되기도 했고. 지금부터 중요한 과제는 아웅산 수치가 지역 공동체 지도자를 좀더 많이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민족민주동맹도 선전도구로서보다는 실제 공동체에서 일하고 민초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묘윈 : 같은 말이다. 아웅산 수치도 민족민주동맹도 모두 버마 내의 반독재·민주세력을 하나로 묶는 대중통일전략 노선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그 조직 역량을 배경 삼아 군사정권에 대한 압박과 협상을 동시에 펼 때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에서. 뇨온민 : 민족민주동맹은 처음부터 집권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민족전선 같은 혁명 성격을 지닌 조직이다보니 정치력에서 한계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협상력 부족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원하는 시민들의 지원이 결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건 그동안 아웅산 수치와 군부 사이에 협상을 중재할 수 있는 제3의 기구가 없었던 것도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든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바틴 : 앞서도 말했지만, 아웅산 수치에 집중된 정치구조라는 한계를 단기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없다. 그래서 우리 카렌민족연합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아웅산 수치가 지치지 않고 더 강력하게 민족민주동맹을 이끌며 좀더 강력하게 민족화해 프로그램 원칙을 밀어붙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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