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6월04일 제462호 

최민수를 넘어 원빈의 시대로

꽃미남의 유행은 여성들의 욕구이자 숨겨져왔던 성적 환상 지닌 남성들의 커밍아웃

여자들의 취향이 전폭적으로 꽃미남에 기울어지게 된 원인은 아니지만, 꽃미남이라는 개념과 용어가 일본만화에서 온 것은 사실이다. 꽃잎 파르르 날리는 배경에, 절대 자연생머리인 머리카락을 날리며 가는 팔목과 긴 목, 촉촉한 눈을 반짝이는 꽃미남의 모습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남자들의 미모의 기준이 되고 있다.

테리우스형, 앤서니형, 아치형, 앨버트형 등 갖가지 유형의 꽃미남들이 선물세트처럼 등장해서 ‘나를 선택해주세요’라며 멋진 포즈를 취하는 <캔디캔디>에서부터 꽃처럼 아름다운 남자들이 팀을 짜서 나오는 <꽃보다 남자>까지, 남장여자라는 콘셉트이지만 수많은 여자들을 설레게 한 ‘오스칼’부터 유형별, 종류별, 성격별, 역할별로 꽃미남들이 우루루 등장하여 저희끼리 치고 짜고 로맨스를 대량생산해내는 야오이물까지, 일본만화는 가히 꽃미남 양성소라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모호하고 막연하던 여자들의 취향은 훨씬 분명해졌다. 콕 찍어 “테리우스 타입이 좋아”, “루이야말로 내 이상형이야”라고만 말해도 그녀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드넓은 일본만화의 표본추출을 통해서다.

외모뿐이랴, ‘꽃미남’이 뜻하는 바는 성격까지도 포괄한다. 반항아는 좋지만 마초는 안 된다. 반항아의 매력은 튕기는 맛 정도까지이지, 그 선을 넘어서면 ‘꽃미남’의 범주에서는 탈락이다. 그 이면에는 더 이상 지배받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들의 내심이 숨어 있다. 터프가이에게 리드당하는 것은 질렸다. 친구처럼 다정하게 챙겨주고 공감해주는 남자,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비대한 책임감으로 여자를 억누르지도 않는 남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연하가 꽃미남의 한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연하를 사귀는 여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남자의 ‘생산성’이 아니라 고분고분하고 서글서글한 성향이다. 누구도 원빈에게서 “여자가 어디서 말대꾸야, 나만 믿고 따라와”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폼클렌징으로 세수하고 남성 화장품을 꼼꼼히 선택해 발라주고 피부관리하고 네일케어도 신경쓰고 뾰루지가 나면 속상해하는 남자들이 모두 “여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고 치부하는 것은 웬지 석연치 않다. 꽃미남의 유행은 사실은 남자들 깊이 내재된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남녀관계가 상하관계에서 동등한 관계로 혹은 역전된 관계로 변화하는 것은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로서도 무턱대고 거부할 일은 아니다. 꽃미남에 환호하는 것이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성적 욕망의 발현이라면, 꽃미남이 되고 싶어하는 것 또한 숨겨져왔던 남성들의 성적 환상의 커밍아웃일 수 있다.

원래 여자들은 예쁜 것을 좋아해왔으니 여자들이 남성 취향에 대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낸다면 꽃미남 타입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여자들이 목소리가 커지더니 남자들을 액세서리로 여기고, 언제든지 어루만지고 귀여워해줄 수 있는 애완동물로 삼으려 한다는 편치 않은 시선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취향의 변화는 기저에 있는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의 진화는 남성적 공격성보다 여성적 친화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부각시키기 시작했고, 폭력이나 위계질서, 마초적 성향들은 시대착오적인 특질이 되었다. 사회가 진화한다는 것은 사람이 진화한다는 것, 꽃미남과 그들을 애호하는 여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마초보다는 훨씬 진화한 인종들이다.

박사 | 만화평론가·고양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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