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5월15일 제459호 

“우리는 베이징이 더 좋다”

‘엑소더스 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 런민대 5개국 유학생들의 ‘격리 생활’ 이야기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영자신문 <베이징 투데이>의 5월2일치 1면 기사 제목은 기로에 놓인 이곳 유학생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준다. 베이징 대탈출! 그러나 모든 유학생들이 엑소더스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절대다수의 외국 유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학교쪽 통제를 따르며 캠퍼스를 지키는 학생들도 적긴 하지만 있다. <한겨레21>은 베이징 런민대학에 남아 있는 5개국 유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 :

후리안(기니·런민대 회계학과 3학년·25)

온혜미(말레이시아·런민대 국제관계학과 4학년·23)

푸잉(몽골·런민대 국제관계학과 대학원·25)

고사카 히로미(일본·런민대 국제관계학과 2학년·21)

디마(러시아·런민대 국제관계학과 대학원·22)


사진/ 참석자(왼쪽부터) 후리안, 온혜미, 푸잉, 고사카, 디마.


사회 : 학교쪽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마음대로 바깥출입도 못하는 형편인데, 답답하지 않은가?

디마 : 괜찮다. 벽을 타넘어 가면 되고….(웃음)

푸잉 :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게 하니 왜 안 답답하겠나. 쇼핑도 못 한다. 한번은 치약을 사고 싶은데 내가 선호하는 상품이 학교에 없었다. 그래서 통사정했더니 딱 30분의 시간을 주더라. 사온 치약을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돌아가서 격리당할까봐 안 갔다”

사회 : 학생들의 귀국행렬은 다른 나라도 비슷한 듯하다.

고사카 : 우리 학교에 일본 학생이 77명 있었는데 현재 30명 남았다.

후리안 : 기니 학생은 중국 전체에 12명, 베이징에 3명이 남아 있다. 원래 20명 정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으로 갔다. 우리나라가 스페인 식민지 아니었나. 부모님이 스페인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온혜미 : 베이징에 100여명 있는데 20명 정도가 사스 때문에 돌어갔다.

푸잉 : 베이징에 있는 150여명 중 20여명이 남았다. 우리 학교에선 13명 중 3명이 안 돌아갔다. 졸업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디마 : 나는 이 학교에서 유일한 러시아 학생이다. 베이징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돌아갔다. 나도 이틀 뒤 돌아간다. 대사관에서 돌아가라고 권유하고 있다.

사회 : 왜 안 돌아갔나. 무섭지 않나.

코사카 : 학생들이 한창 귀국할 때 난 감기 기운이 있었다. 비행기를 못 타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사실 난 사스가 하나도 안 두렵다. 부모님도 걱정이야 하시지만, 내 의견을 존중하신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아갈 수 없다.

온혜미 : 졸업논문도 다 못 썼다. 베이징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돌아갈 수 없다. 부모님도 내 성격 잘 아신다. 베이징 상황이 진짜 심각하면 돌아올 것이라 믿고 계시다.

사회 : 베이징 상황이 진짜 심각하지 않았나?

푸잉 : 밖을 못 나가므로 안전하다.(웃음) 나도 안 간 이유는 고사카와 비슷하다.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격리당할까봐. 그리고 다른 할 일도 많았다.

후리안 : 나는 사스에 걸려도 치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유학생활이 1년 남았다. 이 시기가 나에겐 대단히 중요하다.

디마 : 난 모레 돌아간다. 반은 사스 때문이다. 돌아가서 러시아-중국간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부모님도 뵐 겸 겸사겸사….

사회 : 언론이 사스 보도에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닐까?

푸잉 : 나라마다 다 그렇다. 몽골 사람들은 베이징이 다 폐쇄된 줄 안다(웃음).

푸리안 : 어머니가 “오려면 스페인에 가 있으라”고 하셨다. 괜히 전염시키지 말라고(웃음).

디마 : 우리나라도 돌아가면 10일 동안 격리관찰당한다.

푸잉 : 그래도 과장보도가 밉지 않다. 몽골에서 베이징까지 비자 없이 올 수 있어 참 많이 오는데, 요샌 많이 안 온다. 난 그게 좋다.

사스보다 더 무서운 ‘공포 분위기’

온혜미 : 외신보도가 부풀려지는 건 불가피하다고 본다. 물론 분한 부분도 없지 않다. 유럽사람들은 “사스가 중국사람 혈통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나는 화교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반에 화교가 한명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반 수업을 중단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너무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 보니 사스가 CIA 공작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

코사카 : 중국 정부에서 처음에 사실을 너무 은폐했기 때문에, 그 반대현상으로 과장보도도 나온 것 같다.

푸잉 : 유럽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예를 들어 광산이 무너졌다는 단순보도 한 가지를 할 때도, 꼭 인권문제까지 끼워넣더라.

푸리안 : 과장보도는 중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다. 그 덕분에 중국 내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까? 중국 공무원들도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사스퇴치를 빨리 추진할 것이다.

사회 : 사스가 도대체 뭐냐?

디마 : 나의 모든 계획을 취소하게 만드는 나쁜 놈!(웃음) 건강한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요물단지.

온혜미 : 진짜 두려운 것은 사스가 아니다. 주위의 분위기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말이다.

코사카 : 사람의 심리를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게 정말 무서운 거다.

푸잉 : 난 괜찮고 안 무섭지만, 만약 가족에게 전염시키면 얼마나 나쁜 일이냐.

사회 : 벌써 2주째 밖을 맘대로 못 나가는데 불만은 없나?

디마 : 문제는, 봉쇄를 했으면 100% 다 봉쇄를 해야 한다는 거다. 왜 나가는 사람이 있나. 귀국하는 친구들이 연락 온다. “나 내일 가는데 오늘 저녁이나 함께 먹자”고. 그래도 못 나간다. 에이씨!(웃음) 마음이 아프다.

온혜미 : 그러나 우리들의 머리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다들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 나가지 않는가. 결국 학교출입 통제가 사스예방을 위한 100% 완벽한 조치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나름대로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이해는 한다.

푸잉 : 나도 처음엔 규칙에 잘 따랐다. 방에 갇혀서…. 그런데 일주일 지나서 동쪽 문으로 가보니 나가는 사람이 있더라. 그때부터 분노하기 시작했다. 유학생 사무실 가서 마구 따졌다. 그래서 나도 나가야겠다 싶어 “은행 간다”고 거짓말하고 처음 나갔다 왔다.(웃음) 다른 친구들도 나갈 사람은 다 나가더라.

대학들마다 유학생에 대해서는 출입통제 조처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데 비해 중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베이징대에서는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놓은 뒤 담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가던 5명의 중국학생들이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이제 정말 공부할 맛 난다?


사진/ 런민대 후문. 굳게 잠긴 문 사이로 학생들이 외부 방문자와 면회를 하고 있다.


푸리안 : 난 이 통제가 너무 좋다. 이런 걸 통해 자기를 보호하는 개념을 심어주는 거다. 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학생들도 못 나가게 하니까 이제 대학이 정말 대학 같아지는 것 같다. 공부할 맛 팍팍 난다.

푸잉 : 그건 맞다. 예전에는 주말 되면 외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고, 차도 붐볐는데… 이젠 조용하고 깨끗하다.

온혜미 : 안 돌아간 게 너무 잘한 것 같다. 공기도 너무 좋고, 안전하고…. (기자를 향해) 그런데 외부인이 어떻게 우리 학교에 들어왔나(웃음) 이러니 이 제도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사회 : 사스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지.

디마 : 문화적으로 많이 위축될 것이다. 여자축구 월드컵도 연기되고, 경극 공연도 다 취소되고 있다. 외국으로 나가던 중국예술단도 발이 묶이고, 중국으로 오던 외국예술단도 마찬가지다.

푸잉 : 요새 중국 사람들한테 “왜 팩스를 제때 안 보내냐”고 물으면 “사스 때문”이라고 답한다. 사스 때문에 전반적으로 다 위축돼 있다. 사스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고 있다.

코사카 : 중국 의료부문이 크게 개선되고 발전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중국의 의료체계를 주목하고 있다.

디마 : 중국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많이 바뀔 것이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는데, 사스 사태 이후 하루에 30번씩 손을 씻고 있다.

푸잉 : 맞다. 중국사람들 집에 가면, 학력도 꽤 높고 문화수준도 안 떨어지는 사람 집인데도 더럽고 난장판이다. 샤워 습관도 없고…. 이번에 처음으로 창문을 청소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아닌가.

푸리안 : 지난해 중국의 GDP 성장률이 7%였는데, 올해는 5%까지 낮아졌다. 중국 경제가 문제다.

온혜미 : 아직 사스 치료약이 없다. 이건 전 세계에 과제를 준 셈이다. 인류는 이제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베이징=사회·사진·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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