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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를 넘어, 공포를 넘어 모두가 떠날 때 거꾸로 들어간 중국 현장… 베이징의 대학과 병원에서 맨땅에 헤딩하다
“와아, 정말 신나네!” 택시기사 왕 웨이(55)는 탄성을 지른다. 오후 6시. 택시는 천안문과 자금성 사이를 시속 70km 속도로 날렵하게 빠져나간다. “야, 이렇게 안 막힐 수도 있구나.” 베이징에서 20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는 그다. “사스? 까짓거 뭐 걸리면 말고…. 이젠 무감각해졌수다.” 마스크도 벗어던진 그는 휘파람까지 분다. “도대체 무서울 게 뭐가 있나?” 베이징의 대표적인 쇼핑거리 왕푸징의 먹자골목에서 만난 식당 사장 차오(39)는 마스크를 쓴 기자를 오히려 타박한다. “거 필요없어! 당장 벗으라고.” 이 골목 가게의 90%가 문을 닫았지만, 그는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장사? 당근 안 되쥐. 하지만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뇨. 안 그래? 마스크 벗으라니깐! 하하하.” 사스는 중국어로 ‘非典’(페이전)이다. ‘비전형 바이러스’라는 말인데, 기자가 만난 왕 웨이와 차오야말로 ‘非典’이리라. 중국 시민의 ‘전형’은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베이징에서 만난 사람들 중엔 이런 이들도 있었다.
정말로 ‘사스’에 걸려버렸네
5월6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을 현지취재했다. 중국에서 오는 사람들, 특히 베이징에서 귀국하는 이들을 무슨 지저분한 별에서 온 외계인 취급하는 분위기였기에, 현장이 더욱 궁금했다. 언론매체마다 베이징 상황을 연일 또 얼마나 긴박하고 엄중하게 보도했던가. 그래서 오히려 더 가고 싶었다. 물론 취재 막바지 무렵, 사스는 한풀 꺾이는 모양새였다. 중국 체류 5일째였던 5월10일, 중국 보건당국은 “9일 하룻동안 2명의 사망자와 48명의 감염자가 추가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매일 10명의 사망자와 100여명의 추가 감염자가 발생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뚝 떨어진 추세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베이징 수도공항으로 향하던 날, 베이징 거리는 한층 풀려 있었다. 절반이 훨씬 넘는 베이징 시민들이 마스크를 벗은 듯했다. 그래도 여전히 버스들의 풍경은 화장터로 향하는 장의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기사도 마스크, 승객들도 마스크…. 사람들끼리 가깝게 접촉하는 공간에선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일까. 고백하자면 나도 사스에 걸렸다. 베이징 가기 전엔 “정말 꼭 가야 될까” 고민하다 사스에 걸렸고(상자기사 참조), 베이징에 가서는 “더럽게 취재 안 된다”고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또 한번 사스에 걸렸다. 심리적 사스…. 사실 현장접근이 쉽지 않으리란 것은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더구나 취재비자로 간 것이 아니었기에, 공식라인의 취재는 일찌감치 단념한 상태였다. 중국정부의 사스 감염실태 공개를 촉발시킨 베이징 301병원 장옌융 박사의 양심선언이 외신을 타고 흘러나간 뒤 각 병원에는 함구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외국기자는 ‘절대 접촉불가’ 대상 1순위였다. 그럼에도 어렵사리 사스 치료병원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전화인터뷰라도 가능하겠는가 의향을 물으니 흔쾌하지는 않지만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를 달라”는 태도를 보인다(만약 그를 만날 경우엔 기자도 열흘간 격리당한다). 그러나 30분 뒤 “못하겠다. 절대 해선 안 된다더라.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니, 다른 문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도 일단 사진을 찍으려고 50여m 앞에 있는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20m 전방에서 마스크를 쓴 경비가 손을 내저으며 돌아가라는 손짓을 보낸다. 무시하고 10여m를 더 걸어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경비가 뛰어와서 제지하려는 태세를 취한다. 두세컷 누른 뒤 얼른 뒤돌아섰다. 샤오 탕 샨 병원에는 출입구가 세곳이 있었다. 이곳 경비들의 대답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난 모른다.” “안 된다.”
뭐, 사스 치료약을 개발하겠다고?
또 하나의 사스 전문치료 병원인 디탄병원. 환자치료를 위해 일선에서 뛰는 의료진이 300명이나 되는 곳이다. 이곳 역시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5월9일, 다행히 샤오 탕 샨 병원과는 달리 내부 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기자’라는 신분은 숨겼다. 대외업무를 총괄하는 쑨 찡 루씨가 나와 병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그는 “의료진과 환자를 돕기 위한 한국인들의 여러 가지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엔 본격적인 재방문 계획만 짠 뒤, 10여분간 머물다 밖으로 나왔다. 불행히도 다시 방문하려던 계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포가 됐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수상쩍었다. 원장실에 들어서서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부원장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취재장면을 촬영한다. 미국에서 12년간 연구소도 운영했다는 병원장은 자신의 미국 연구소 이름을 영어로 써주다 말고 멈칫한다. ‘UCLA 메디슨 센터’라는데, 혹시 ‘메디슨’의 스펠링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12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사람이 이럼 안 되지~. “사스 치료약도 곧 개발할 예정”이라며 계속 큰소리를 친다. 그것도 먹는 약, 흡입하는 약, 주사하는 약 세 가지씩이나…. 직접 사스환자를 치료하며 임상경험을 쌓을 계획이 없냐고 묻자 고개를 흔든다. 자기는 다른 할 일이 많으므로, 그건 후배 의사들을 시키겠단다. 병원 취재는 생산성이 거의 없었는 데 반해, 대학은 그나마 나았다. ‘출입통제’로 따진다면 대학도 만만치 않았지만…. 5월10일 현재 1만9천명이 베이징의 각 병원과 학교에 격리돼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사스환자와 의심환자들만 격리돼 있는 게 아니다. 각 대학들은 환자가 아닌 학생들 역시 외부와 차단하고 있다. ‘증’이 없으면 마음대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5월8일, 런민(人民)대학 캠퍼스에서 진션(22)을 만났다. 기업관리학과 3학년 여학생.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남자친구와 대낮부터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캬, 내가 그 친구랑 당구만 안 쳤어도….” 당구 때문에 결국 격리된 진션은 두주 동안 꽁꽁 방 안에 갇혀 있다가 5월7일 풀려났다. 기침과 고열 증상을 보였던 그 친구는 병원으로 실려갔고, 진션뿐 아니라 한 기숙사에 있던 27명의 학생들이 몽땅 ‘강제수용’당해야만 했다.
‘석방’된 의심환자들과 만남
런민대학에선 국제교류 외사처 주임 장 구오 증(48) 교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대학 내 유학생들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게 그의 일이다. 런민대학 전체 유학생 수가 738명인데, 이 가운데 한국 학생이 절반이 넘는 460명이라고 한다. 전체 유학생의 4분의 3이 귀국했으며, 한국 유학생들은 50명 정도 남아 있다. 장 구오 증 교수는 “두명의 환자가 발생해 60명을 두주 동안 격리시켰다. 근데 사실 그 두명은 정확히 말해 런민대 학생이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끝에는 한국에 있는 런민대 유학생들에게 꼭 전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학생들아, 빨리 돌아와줘! 너희들을 사랑한다.” 굳게 차단된 대학의 정문 앞은 친구나 애인, 부모 사이의 면회 또는 상봉 장소였다. 취재 첫날인 5월7일, 한국인 유학생을 통해 런민대 내부로 들어가려 했지만 좌절됐다. 그 유학생이 정문 앞에서 “한국에서 친척이 왔다. 잠깐만 기숙사로 함께 들어가게 해달라”고 책임교수에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웃는 얼굴로도 끝까지 오케이를 하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에야 유학생 담당교수를 설득해 정식으로 출입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취재 마지막 날인 5월10일에는 위옌대학에서 사스 의심환자 20여명을 만났다.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적이 있는 격리관찰 환자들이 바깥으로 나온 일은 드문 경우였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들의 바깥 나들이는, 한국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위옌대학에선 ‘중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진행하는 ‘사랑의 꾸러미’ 전달식이 있었다. 10여명의 한국인들이, 치약·수건 등 생활용품과 과자와 라면이 든 작은 꾸러미 100개를 이들에게 증정했다.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21세기 베이징 한인교회의 박태윤(45) 목사는 “중국 사람들은 이곳이 생활의 터전인데, 친구가 돼자고 했던 많은 한국인들이 귀국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중, 진정한 친구관계를 위하여!
나흘. 출입국으로 소요했던 첫날과 마지막 날을 빼면 달랑 나흘간의 취재였다. 취재의 높은 벽 앞에서 분개하고 한숨짓던 아주 짧은 나흘. 취재를 끝내고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려본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아니 그곳에도 사람이 웃고 있었네.”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인 5월10일, ‘중국의 용산전자상가’라 할 수 있는 중관춘 거리에서 행인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다가 끄트머리에 슬쩍 질문을 던져봤다. “제가 내일 한국으로 가는데, 저 열흘간 격리당해야 할까요?” 낄낄거리는 웃음과 함께 꽂히는 대답. “무슨 말씀. 적어도 한달은 격리당하셔야지~잉!”
베이징=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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