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정치인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정치권 헤쳐모여’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우아한’ 방법은 없을까.” 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한 의원은 정치적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압축해 표현했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4·24 재·보궐선거 이후 당내 입지가 더욱 좁아졌고, 민주당쪽에서 신당론이 구체화될수록 고민이 깊어간다.

마음은 굴뚝 같으나 몸이 묶인 상황

사진/ 지난 3월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국민속으로’ 발기인 모임을 열어 당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는 발기선언문을 읽고 있다.(이용호 기자)

이들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김영춘 의원은 최근 지역구인 광진갑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정치권 재편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정치적 신념과 색깔에 따라 정치권이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에 60% 이상이 찬성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신당에 참여하는 데 대해선 반대의견이 60% 이상이었다. 이념에 따른 정치권 재편이라는 원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철새적 행태’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에 대해선 반대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의원은 “정치인들이 색깔에 따라 헤쳐모이는 데는 찬성하면서도 대통령이 야당 의원을 빼내는 듯한 방법엔 거부감을 보이는 것 같다. 정치권 세력 재편이라는 모범답안에 동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국민의 동의를 얼마나 얻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개혁파들은 이번 재·보선 결과에 대해 젊고 개혁적인 유시민·오경훈 후보의 승리를 강조하거나 아예 선거 의미를 축소해석한다. 김영춘 의원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반영하는 결과다. 옛 정치 이미지에 대한 거부고 젊고 개혁적인 사람에 대한 선호다”라고 해석했다. 안영근 의원은 “투표율이 워낙 낮아 무슨 의미를 부여할 근거가 빈약하다”고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2 대 1의 승리에 방점을 두는 지도부 해석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나 이들 개혁파에 대한 당내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김무성 의원이 대놓고 김홍신 의원의 출당을 촉구한 대목에서 이런 분위기가 묻어난다. 개혁파의 한 의원은 “이전부터 시끄럽게 구는 개혁파 의원들이 떠나면 당이 단합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선거 이후 그런 분위기가 더욱 뚜렷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개혁파들이 당장 목소리를 높일 처지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크게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쨌든 2 대 1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개혁파들이 목소리를 낼 만한 특별한 계기를 찾기 어렵다.

문제는 민주당 신주류와 개혁정당쪽에서 촉발된 ‘개혁세력 결집론’이 신당창당의 흐름으로 구체화될 경우다. 이 경우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만약 민주당쪽에서 신당론이 구체화되면 우리도 속내를 터놓고 논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있더라도 말을 못한다. 솔직히 가장 두려운 것은 철새정치인이라는 낙인이다. 국민이 이념에 따른 세력 재편을 원하는 것은 알지만 까딱 잘못하면 철새나 배신자로 찍힌다.” 이우재 의원의 고백이다.

전당대회 지도부 교체에 기대 걸어

또 다른 의원은 “개혁신당이 태동하더라도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곧바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다만 몇명이 됐든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탈당해 따로 모임을 꾸린 뒤 ‘당대당 협상’으로 통합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라고 말했다. 정치 재편의 흐름에 동참하더라도 철새정치인이나 배신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영춘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를 얘기했다. “한나라당의 제도개혁은 이미 물건너갔다. 이제 희망은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지도부를 교체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개혁세력 결집이라는 큰 흐름이 형성되더라도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동참하려면 많은 우회로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