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4월24일 제456호 

허재, 우리의 일그러지지 않은 영웅

386은 당신의 재기 신화에, 당신의 그 변함없는 승부욕과 반항심에 눈물과 갈채를 보낸다

천재는 고달프다. ‘타고난 것’에 대한 세상의 이중성 때문이다. 천부적 재능에 대해 무한한 찬사를 보내다가도, 어느새 그 마음이 질투와 시기로 돌변하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래서 천재는 늘 피곤하고 외롭다.

허재(38·원주 TG 엑서스)도 그랬다. 사람들은 그가 약관의 나이로 1980년대 국내 성인 농구를 평정할 때부터 그를 ‘농구 천재’라 불렀다. 그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보다는 노력에 가까웠음에도 세상은 그를 ‘평범한 천재’로만 대했다. 그러나 2003년 봄, 허재는 우리 앞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거추장스러운 천재의 껍데기를 벗고 온갖 좌절과 역경을 딛고 우뚝 선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불혹을 앞두고 변신한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는 30∼40대에게 그는 큰 희망이 됐다.

농구코트에 몰려온 넥타이부대


사진/ 박승화 기자


2002∼2003시즌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6차전이 열린 4월13일 대구실내체육관. 경기 종료 1.3초를 남겨놓고 TG의 전창진 감독은 벤치에 있던 허재를 내보냈다. 허재는 5차전에서 갈비뼈를 다쳐 줄곧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우승의 기쁨을 코트 위에서 느껴보라는 전 감독의 ‘배려’였다. 멀리 원주에서 원정온 TG 팬들은 “허재!”를 외쳐댔고, 허재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코트에 나섰다. 종료 버저가 울리고 TG의 우승이 확정되자 허재는 후배들을 차례로 포옹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줌마 부대’들의 두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허재는 이번 시즌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38살의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맹활약이었다. 챔피언결정 1∼5차전 동안 평균 30분(한 경기 40분) 가까이 뛰었고, 경기당 6.8개 도움주기와 6.8점 득점을 유지했다. 13년 후배이면서 매치업(서로 수비 상대가 되는 것) 상대인 김승현(동양)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허재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그의 상대는 대부분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팔팔한’ 후배들이었지만, 완숙한 기량과 카리스마로 그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눈부실 정도로 빛났다.

평소 10∼20대가 점령하던 농구장은 이번 시즌에는 30∼40대 팬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허재의 모습을 직접 보려고 온 ‘넥타이부대’와 ‘아줌마부대’였다. 20대 스타에 열광하는 ‘오빠부대’와 “허재!”를 외치는 ‘넥타이부대’의 함성은 독특한 화음으로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허재는 80년대 이후 농구장을 떠난 ‘386’들을 농구 코트로 다시 불러냈다.

사회 진출 뒤 스포츠 스타에 열광하는 법을 잠시 잊은 30∼40대들은 지난 겨울부터 허재를 중심으로 다시 뭉쳤다. 경기장을 찾지 못한 이들은 인터넷에서 허재를 얘기하며 밤잠을 설쳤다. 허재의 인터넷 카페는 30∼40대의 향수와 환희로 가득 찼다. 실제로 허재 팬클럽 중 하나인 ‘위즈’는 전체 600여명의 회원 중 400명가량이 30∼40대다. TG 구단의 손상현 대리는 “허재를 보기 위해 원정 경기까지 따라오는 30∼40대 열성팬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불안한 386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도


사진/ 허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02∼2003시즌 챔피언전에서 우승한 뒤 전창진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및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한겨레 황석주 기자)


무엇이 허재를 386의 영웅으로 만들었을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40) 박사는 “허재는 우리 사회의 30∼40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허재가 20대 젊은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며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고 386들은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이의 한계를 속일 수 없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서른여덟살을 뛰어넘는 그의 활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일종의 간접체험이다. 정 박사는 “외환위기 때 선배들의 퇴출을 지켜보면서 항상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던 30∼40대들이 허재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년이 앞당겨진 시대에서 386들은 자기 정체성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허재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정체성의 한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고봉준(34)씨도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고씨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실력 있는 20대에게 두려움이 있었던 30∼40대들이 허재의 모습을 보면서 그 두려움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허재는 이런 점에서 30∼40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라고 덧붙였다.

허재의 천재성은 그의 승부욕에서 나왔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허재의 용산중·고 시절 6년 동안 그에게 농구를 가르친 양문의(59) 대한농구협회 감독관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허재는 천부적 재능보다 피나는 노력으로 정상에 섰다. 오직 상대를 이기기 위해 무서울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 훈련 시간에는 남보다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고, 잠들기 전에도 농구공을 위로 던지며 손목 운동을 할 정도였다. 그는 허재가 고3 때인 82년 10월 열린 전국체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용산고는 광주고와 4강전을 앞두고 있었는데 양문의 감독이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용산고가 전날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과 가벼운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이유로 감독이 벤치에 앉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양 감독은 선수 대기실에서 이 사실을 전한 뒤 착잡한 심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때 안에서 주장인 허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도저히 못 참겠다. 우리 오늘 광주고를 박살내버리자!”

연·고대 인맥을 거부한 ‘반골’


사진/ 허재가 4월19일 원주에서 열린 TG팬사인회에서 두 아들과 함께 나온 40대 여성 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박승화 기자)


허재는 그날 경기에서 초반 5분 동안 혼자 20점을 몰아넣었다. “아주 펄펄 날았지. 그때 광주고는 우리와 10점 이내로 승부가 나는 팀이었는데 우리가 20점차 정도로 크게 이겼지. 허재는 그런 애였어.”(양문의 감독) 그의 승부욕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11일 열린 챔피언 5차전에서 허재는 동양의 마르커스 힉스와 공을 다투다 그 밑에 깔리는 바람에 갈비뼈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그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벤치에 남았다. 후배들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허재의 투혼을 본 후배들은 승부욕을 불태웠다. 결국 TG는 1점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전창진 감독은 “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호통을 쳤는데도 허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선수들은 물론 나도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98년 벌어진 기아-현대의 챔피언전은 허재를 위한 무대였다. 당시 기아 소속이던 허재는 오른손가락 골절상으로 깁스를 하고 눈이 찢어져 붕대를 칭칭 감고도 평균 25점씩 넣었다. 그의 승부욕은 젊은 선수들을 압도했다. 적장인 현대의 신선우 감독조차 엄지를 치켜들 정도였다. 그는 기아가 현대에 져 우승을 하지 못했음에도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허재의 반항아적인 기질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주류가 만들어놓은 낡은 질서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모습이 30∼40대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386들은 대학시절 기성세대의 낡은 틀을 거부하다 사회에 진출한 뒤 그 틀과 타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허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국내 농구를 양분했던 연세·고려대를 택하지 않고 중앙대로 진학해 농구계의 주류에 정면으로 맞섰고, 실업에서도 연·고대 인맥이 장악한 삼성·현대를 외면하고 신생팀 기아를 택했다. 양문의 감독은 “그의 결단으로 국내 농구는 연·고대 독과점 시대에서 벗어나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허재는 한기범·김유택·강정수와 1년 후배 강동희(창원 LG 세이커스) 등 막강한 진용을 이끌고 중앙대와 기아를 아마농구의 정상에 올려놨다.

하지만 이런 반항아적 이미지 때문에 그는 숱한 곤경에 빠졌다. 때로는 억울한 모함도 당했다. 특히 실업팀 기아에서 활약할 당시 방열 감독과의 마찰은 그를 농구계에서 ‘버릇없는 아이’로 영원히 낙인찍는 계기가 됐다.

감독과의 불화, 음주운전, 그러나…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술과 관련된 온갖 사고도 그를 괴롭혔다. 대표적 사고가 96년 11월24일 무면허 음주운전과 뺑소니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사건이다. 당시 허재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친구가 운전했다고 거짓말까지 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세상은 그를 파렴치범으로 가차 없이 몰아세웠다. 그는 집행유예로 곧 풀려났지만, 국가대표 영구 제명이라는 가혹한 처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 뒤로도 온갖 모함과 질시를 받았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때로는 슬럼프도 있었다. 국내 농구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한 위기도 맞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리고는 올봄 우리 시대의 당당한 영웅으로 돌아왔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궁정음악가)의 끝없는 질투와 시기가 ‘신동’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듯, 세상의 변덕은 허재의 천재성을 더욱 빛냈다.

4월13일 TG가 우승한 뒤 한 농구팬은 TG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에게 당신은 영웅입니다/ 젊고 자만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부터/ 겸손의 미덕으로 우승하던 그 눈물까지/ 비록 다른 길, 다른 삶, 다른 세대이지만/ 전 당신으로 기뻤고, 당신의 플레이에서 도전과 진화를 배웠습니다.’ 그의 영웅, 허재는 내년 시즌에도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멋있다, 불혹의 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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