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4월24일 제456호 

천재는 남고 황제는 떠났다

신보수주의와 스포츠마케팅이 만든 세계적 영웅…미국은 조든의 은퇴로 시끄럽다

“만약 허재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마이클 조든(40·워싱턴 위저즈)처럼 될 수 있었을까?” 우문이지만 한때 국내 농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질문이다.

국내 농구계가 허재 신드롬에 빠져 있는 지금, 농구의 본고장 미국은 ‘농구 황제’의 은퇴로 시끄럽다. 그의 은퇴 선언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예전처럼 극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전 세계 농구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허재와 조든을 비교한다고?


사진/ AFP연합


그는 지난 4월17일(한국시각) 미국 필라델피아 퍼스트유니언센터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1984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한 뒤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고 미 프로농구(NBA)에 데뷔한 그는 93년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잠시 미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선수로 ‘외도’를 한 조든은 95년 다시 시카고로 복귀해 팀에 챔피언 트로피를 안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99년 다시 시카고를 떠났지만, 2001년 워싱턴 위저즈 유니폼을 입고 또다시 NBA로 돌아왔다.

조든은 17일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혀를 길게 빼문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팬들의 향수를 자아냈다. 1쿼터 막판에는 그를 ‘에어 조든’으로 세상에 알린 호쾌한 덩크슛도 성공시켰다. 경기 종료 3분여를 남겨놓고 그가 벤치로 교체돼 나갈 때 관중들은 물론 양팀 선수와 감독, NBA 관계자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돼 조든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했다.

조든을 허재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허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조든과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얘기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비교는 어렵다. 조든의 영향력은 스포츠의 영역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허재가 국내 농구에 끼친 영향력이 조든의 그것에 못지않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양태는 크게 다르다. 조든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든의 영향력은 미국 스포츠 무대를 뛰어넘어 사회·문화·경제적 영역까지 확대됐다. 박종천 전 현대여자농구팀 감독은 “허재는 단순한 농구 스타인 반면 조든은 미국과 전 세계를 뒤흔든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환 LG 감독도 “허재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지만 아무래도 조든의 카리스마에는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조든의 영향력은 미국의 고도로 발달한 스포츠 마케팅에 의해 실제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90년대 미국 사회 주류에 만연된 신보수주의의 목표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에 대한 대중의 열렬한 관심을 조장함으로써 미국의 국가적 자긍심을 회복하고 사회 불만을 해소하는 데 있었다. 이들은 사회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 개입과 강력한 국가 방위를 추구하고 근면한 노동, 개인적 책임과 희생 같은 덕목을 미국적 가치로 부흥시키려고 애썼다. 흑인이면서도 성실과 근면의 이미지로 스포츠 스타로 성공한 조든은 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데니스 로드먼 등 NBA에는 많은 흑인 스타가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각종 추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이키 등 미국 굴지의 스포츠 마케팅 업체들은 미국 주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조든 상품화에 발벗고 나섰다. 미국 언론들도 조든의 성실한 사생활 등 미국적 가치에 충실한 모습을 전하는 데 열을 올림으로써 ‘영웅 만들기’에 동참했다. 이처럼 상품화된 조든은 막강한 미국의 경제력을 등에 업고 전 세계 스포츠 시장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그의 은퇴는 아쉽다


사진/ AFP연합


하지만 조든의 이런 모습은 미국 사회의 인종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흑인 사회의 비참한 현실은 눈 감은 채 조든의 화려한 성공을 부각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의식을 약화시켰다. 실제로 조든은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나서달라는 흑인 사회의 목소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조든의 강인함을 칭송하는 이면에는 흑인의 타고난 육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돋보이게 하려는 주류의 속내도 숨어 있었다.

마이클 조든이라는 상품 기호는 전적으로 미국 국경 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이키와 코카콜라, 맥도널드가 그렇듯, 조든 또한 미국적 상품 기호 가운데 하나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며 미국 및 초국적 미디어 재벌들을 매개로 흥행된다. 날이 갈수록 세계화(실제로는 미국화)되는 현실에서 조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국경을 뛰어넘는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 농구팬들에게 조든은 분명히 ‘농구 황제’였다. ‘농구 천재’ 허재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국내 농구팬들도 조든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한다. 조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어떻든 농구 코트에서 그가 펼친 승부는 농구의 역사이자 신화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미 두번이나 번복했음에도 ‘황제’의 세번째 은퇴는 또다시 농구팬들에게 무한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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