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4월16일 제455호 

뜨거운 권력투쟁의 서곡

전후 이라크는 누가 움직일 것인가… 미 군정은 피의 충돌을 부를 수도…

전후 이라크에 대한 미·영의 구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해 보인다. 지난 4월8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만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군정→과도정부 수립→제헌의회 구성’으로 이어지는 3단계 재건방안에 합의했다. 얼핏 단순명료하게 보이는 이 전후 계획은, 그러나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웃 아랍국가들은 물론이고, 이라크의 가장 친미적인 분파들마저 군정 계획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가너,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다?


사진/ 전후 이라크를 움직일 인물들. 왼쪽부터 제이 가너(AP연합), 토미 프랭크스(GAMMA), 아흐메드 찰라비(GAMMA), 모함메드 바크르 하킴(GAMMA), 마수드 바르자니(GAMMA), 잘랄 탈리바니(SYGMA)

군정체제에서는 미국이 입맛대로 선택한 몇명의 지도자가 ‘떡고물’을 독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이라크의 어느 분파도 이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전문가들은 군정 치하에서 테러가 빈발하고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앞으로 벌어질 혼란이 두렵지 않다. 혼란이 증가할수록 군대를 주둔할 명분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지난 4주간의 전쟁보다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을 준비 중이다. 권력을 향해 서서히 몰려들고 있는 주요 인물들을 통해, 이 전쟁의 향방을 가늠해본다.

군정사령관으로 내정된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 이라크 침공의 모든 전략을 조율해낸 그는 완고한 군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공군을 이용해 지독한 폭격을 퍼붓고 후방부터 치고 들어가 전선을 장악하는 ‘완고한’ 전술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군사작전에 관한 한, 프랭크스는 국방부 매파의 신임을 두둑이 받고 있다. 아내가 고위 군사회의에 참석하고 군용기를 여행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프랭크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정치적 수완은 부족해 보인다.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보다는 동료 장교들과 있는 걸 좋아한다.” 2월24일치 인터넷판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군인’이 고도의 정치적 기술로 이라크 분파들을 솜씨 있게 요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전후 이라크 운영은 실질적으로 이라크 재건인도지원처를 이끌 제이 가너의 손에 달려 있다.

제이 가너, 64살, 퇴역 장성, 미사일 시스템 전문가. 군산복합체와 공생관계에 있는 미 행정부 매파들에게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어 보인다. 그는 1991년 걸프전 때 쿠르드 거주지역으로 날아가 후세인의 위협에 떨고 있는 쿠르드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고, 미사일 전문가로 이스라엘에 패트리엇 미사일 배치를 주도했다. “그는 하면 되는 사내(make-it-happen guy)다.” 한 퇴역 장성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 업적들은 그가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하는 SY콜맨사 대표라는 점을 감추고 있다. 패트리엇 미사일 개발·배치부터 미사일방어(MD)체제에 이르기까지 가너가 꾸준히 제기되는 온갖 기술적·정치적 결함들을 무시하고 사업 강행을 주장한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너의 면모는 군산복합체 핼리버튼사의 회장을 지낸 딕 체니 부통령이나 벡텔사에서 정치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잘 어울린다. 걸프전 때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는 가너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급기야 성공한 사업가이자 로비스트로 조용히 지내던 가너를 이라크 재건사업에 끌어들였다. 럼즈펠드와는 MD 사업에서 굳건한 우애를 과시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유엔은 가너의 행보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파월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시점에서, 가너가 유엔을 무시한 채 미국의 독자적 재건사업을 이끌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너는 중동문제를 너무 친이스라엘적 시각으로 보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어쨌거나 머지않은 미래에 바그다드에 있는 가너의 사무실에서 온갖 미국 군산복합체의 계약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자신의 군사기술로 멸망시킨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 워싱턴의 친구들은 가너에 전폭적 신뢰를 보내주고 있다.

찰라비, 주목과 경멸의 대상

이라크 반체제 진영은 이라크국민회의(INC),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I) 등 거창해 보이는 반후세인 조직들을 비롯해 70여개에 이른다. 현대 차기 대권감으로는 5~6명 정도가 물망에 오른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미국에 의해 낙점될 가능성이 희미하다. 이라크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만한 인물도 이들 중엔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아온, 아랍에서 가장 큰 경멸을 받아온 차기 수반 후보는 아흐메드 찰라비(59)다. 이라크 시아파 무슬림이자 이라크국민회의 의장인 그는 4월6일 미 군용기편으로 이라크 남부에 도착해 대국민 연설에 나서는 등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수학한 그는 공화당 매파들과 연결돼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이라크를 등진 점, 이라크국민회의를 자신의 세력 강화에만 이용하는 점, 지나친 친미 성향을 보이는 점 등 때문에 같은 시아파의 주요 지도자들마저 그를 비판하고 있다. 찰라비의 부패행각도 문제다. 그는 요르단의 페트라 은행 총재로 재임할 때 예금 유용과 사기 등 혐의로 22년 징역형을 받았다. 급히 해외로 도피하여 수의를 입지는 않았으나 페트라 은행의 도산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요르단인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미 국무부는 그가 반체제 운동 지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니자르 알카즈라지는 4성장군 출신으로 이라크군 최고사령관(80~91년)을 지냈다. 그는 최고사령관 재임 중 이란-이라크 전쟁을 치렀고, 90년의 쿠웨이트 점령을 주도했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알카즈라지 자신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고사령관직에서 밀려났다고 항변하고 있다. 96년 망명해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에 체류 중이다.

나집 알 살라히(50) 장군은 이라크 수니파뿐 아니라 시아파에서도 지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의 가문 ‘베니 살리’가 양쪽을 포용하는 거대 부족의 리더기 때문이다. 전쟁 전 그는 96년 이래 그가 이끄는 자유장교운동 조직이 3만명의 전사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물게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95년 망명해 미국 버지니아에 체류하고 있다.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는 최대의 반후세인 시아파 조직으로, 이란에서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한 모함메드 바크르 하킴이 지도자다. 그러나 그는 이란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경계 대상 1호다. 미국은 침공 중 하킴의 군대가 이라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견제했다. 하킴 역시 군정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쿠르드족의 선택은?

시아파의 쟁쟁한 지도자들 외에도, 북부에는 쿠르드족이 있다. 후세인 재임기간에 누구보다 혹독한 탄압을 겪은 쿠르드인들은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터키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연방제를 다소곳이 지키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스만투르크의 침략 이후 주변 4개국에 의해 갈가리 찢긴 채 고난을 겪고 있는 심상치 않은 역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쿠르드족의 독립 열망은 시오니즘보다 강렬할지 모른다.

쿠르드애국동맹(PUK)과 쿠르드민주당(KDP)은 걸프전 때 봉기해, 이라크 북부 아르빌·슐레이마니예흐·타후크 등 3개주를 장악했다. 96년에는 양쪽 간의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상호 협력을 굳건히 하고 있다. 이들 양대 계파의 지도자도 차기 정권에서 지분을 분배받을 듯하다.

쿠르드민주당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57)는 16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투쟁전선에 나서 79년 아버지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 쿠르드민주당을 이끌고 있다. 잘랄 탈라바니(70)는 75년 쿠르드민주당을 떠나 쿠르드애국동맹을 세운 뒤 지금까지 건재하다. 아랍에서는 그처럼 식견을 갖춘 반체제 인사가 드물다는 의견이 많다.

이라크의 다양한 분파들은 이합집산하며 권력투쟁을 벌일 것이다. 미국의 점령은 이들의 충돌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그로스만 교수는 이제 반전운동 진영이 목표를 “전쟁이 해결책은 아니다” 대신 “이라크를 이라크인들이 다스리게 하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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