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4월16일 제455호 

약탈은 ‘이라크적’이지 않다

바그다드 점령을 보는 아랍 민심… 미군이 홍보하는 환영 인파와 약탈은 왠지 미심쩍어

사담 후세인의 철권 통치는 막을 내린 것인가. 팔레스타인 호텔 앞 광장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제거되는 이벤트를 바라보는 아랍 민심은 단순하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심증을 안겨주던 전황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이라크인들과 아랍인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바그다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접수하기 시작한 이후 바그다드 곳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보복공격 등이 이어졌다. 이를 두고 적지 않은 이라크인들과 아랍인들은 “전혀 이라크적이지 않다”고 혀를 내두른다. 미군의 심리전에 세계 여론이 휘둘린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이 많다. 사담을 싫어하는 이들조차 바그다드는 아직 미군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왜 쓰지도 않는 옛 깃발을 들고 있나


사진/ 암만 거리의 이라크인들. 이들에게 미군이 안겨준 ‘이라크 자유’는 충격과 경악으로 다가온다.


폭정에 시달리던 이라크 민심이 약탈과 방화 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자유를 찾은 이라크인들의 상처를 감싸안고 민주적 제도가 정착되도록 해방군과 평화유지군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말이 된다. 그러나 이라크의 혼란은 미국의 술책이라고 잘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아랍 여론은 바그다드의 약탈을 두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불안을 이유로 이라크인에 의한 통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군정의 정당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바그다드 함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4월11일 이라크인들이 몰려 있는 곳곳을 둘러보았다. 전쟁 이후 대미항전을 위해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이들로 북적이던 무잠마 바그다드 터미널에서 만난 이라크인들. 이날은 바그다드 서부지역의 카드미야 동네 주민들이 모여 바그다드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언론에 호도되고 있는 바그다드 민심에 혀를 내둘렀다. “이것은 이라크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누가 바그다드 함락을 기뻐하겠는가 설령 반사담 정서가 있는 이들조차 미군 점령을 환영할 수 없다. 보라! 500만 바그다드 시민들 중 미군을 환영하는 이들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고작 수십명에 불과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4월5일 바그다드 알만수르 거리에 사담 후세인이 활보하는 장면을 보며 감격에 겨워하던 이라크인들도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암만 곳곳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에게서 미군이 안겨준 ‘이라크 자유’의 기쁨은 엿볼 수 없었다.

왜 암만에서 만난 다양한 계층의 이라크인들과 아랍인들은 바그다드 함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이들이 제기하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바그다드 중심부라 언론이 일컫는 팔레스타인 호텔 주변. 이곳은 바그다드 동부지역의 중심이다. 이곳에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저항을 받지 않은 채 미 해병대가 들어왔다. 얼마 뒤 이들은 광장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 동상을 철거했다. 그런데 아랍인들 중 다수는 이 이벤트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한다. 100명 안팎의 외신기자들이 군중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누가 이들을 바그다드 시민의 대표라 할 수 있는가. 이날 몇개의 이라크 깃발이 등장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 이라크 깃발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누가 사용도 하지 않는 깃발을 간직했다가 이 순간에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상한 깃발에는 현 이라크 깃발에 나오는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도다)라는 글귀가 빠져 있었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우리는 미국편”이라고 외칠 때 그 말투가 전혀 이라크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쿠웨이트 악센트가 묻어나왔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야자수 잎을 흔든다고


사진/ 반미시위를 벌이고 있는 요르단 암만의 시위대들. 이라크 전쟁 초기 후세인은 이라크 자존심을 지켜주는 ‘아랍지존’이었다.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한 두곳의 미군 환영 시위에 대해서도 의혹은 여전하다. 야자수 잎을 흔들고 올리브 나뭇가지를 치켜올리면서 가슴을 치며 사담 축출을 기뻐하는 100명 안팎의 시아파 군중들의 모습도 낯설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는 아랍 뉴스채널이 아닌 나 등에서 즐겨 방영하던 장면이다. 이라크인 마기드는 “그들이 시아파라고 할지라도 ‘환영’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야자수 잎을 종교적 경건성이나 감동을 표현할 때 쓸 수도 있지만 이렇게 손에 들고 흔들어대는 것은 불경한 짓이다.” 화면에 등장하던 이들은 후세인의 학정에 시달리던 이라크 시아파 무슬림들일 수 있지만, 표현방식은 오히려 기독교적이라고 한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를 환영하던 군중들이 야자수 잎과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가슴을 치고 환호하면서 환영했던 장면이 연상된다.

처음으로 약탈이 시작된 사담 시티의 풍경도 지적사항이다. 바그다드의 위성도시인 사담 시티는 시아파 밀집지역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곳임에 분명하다. 그곳에 올림픽위원회 건물이 있었다. 바그다드 북동 외곽에 자리한 이 지역을 거쳐 미군이 바그다드 동부 중심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나름의 전술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3주간의 전쟁에도 미국이 기대하던 반후세인 시위나 무력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군은 바그다드로 진격하면서 반후세인 정서가 폭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100만의 도시 사담 시티의 주민들 중 약탈에 나서고 미군을 환영한 인파는 수십명밖에 안 됐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이라크인 칼리드는 “시아파라고 하여 반사담은 아니며, 반사담이라고 하여 그들이 친미는 아니다. 미군 환영 분위기는 조작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약탈과 방화는 이라크인들의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황당한 풍경이다. 가난하게 살지라도 남을 대접하는 것이 몸에 밴 이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약탈과 방화를 일삼을 수 있는가 게다가 바그다드 박물관과 이라크 박물관까지 털어버리는 이라크인들은 상상 밖의 존재들이다. 이라크인들은 이런 모습으로 더욱 큰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전혀 자신들답지 않은 풍경으로 자신들이 묘사되는 지금의 현실에 치를 떤다. 바그다드 서부지역은 여전히 미군의 공격에 대한 산발적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4월13일에는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반미시위를 시작했다.

미국은 이라크 민심을 얻지 못했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다 손에 쥔 것이 아니다. 단지 5% 안팎의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미군의 무력시위가 있을 뿐이다”고 현 상황을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0월15일 이라크 대통령 신임 투표가 있었다. 뻔한 결과였지만 사담 후세인은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연임되었다. 투표가 끝난 4월15일과 결과가 공식 발표된 4월16일,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서는 자발적인 환영과 축하 인파들이 쏟아져나왔다.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무리들은 경적을 울리고 사담을 연호하며 거리를 누볐다. 그런데 미군이 사담의 학정에서 이라크인들의 자유를 찾아주었다며 감격스러워하던 4월9일, 바그다드 함락 이후 바그다드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독재 치하에서 독재자가 연임되는 감격보다 자유민으로 거듭난 해방일을 더 기뻐해야 하는데 이들은 덤덤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충격과 경악감이 널리 퍼져 있다. 미군이 무혈입성한 바그다드, 그들을 반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미군 당국에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민심을 얻는 데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이들은 이라크는 이라크인들이 다스린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바그다드는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않았다.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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