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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3.03.26(수) 제4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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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환테크, 그 기막힌 거래 고위험 따르는 외화예금이 급증하는 이유… 거액 예금자 수익 보장하며 세금도 줄여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2천원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한 외환위기 때의 한 풍경. 당시 VIP 고객이 이용하는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서는 9천만원을 싸들고 와서 달러를 산 뒤 며칠 새 3억원으로 불린 사람이 있었다. 환율 폭등으로 엄청난 환차익을 챙긴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 북한 핵사태로 최근 환율 움직임이 다시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은 1186원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터진 직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264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환율은 다시 1243.5원까지 떨어졌다. 하루 변동폭이 무려 20.5원이나 될 정도로 널뛰기하는 양상이다.
거주자 예금 급증… 환차익 기대심리
환율이 출렁거릴수록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게 거주자 외화예금이다. 국내기업과 개인들이 금융기관에 달러 등 외화로 예치하는 돈으로, 외화현찰 인출액이 1만달러 이상이면 국세청 통보 대상이지만 입금액 제한은 전혀 없다. 큰 폭의 환율상승이 예상되면 외화예금은 급증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3월6일 139억7천만달러에서 3월14일 현재 142억1천만달러로 급증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던 2001년 6월의 136억9천만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외화예금계좌 주인은 기업계좌가 6만9천여개, 개인계좌가 18만여개다. 기업들은 환율과 유가변동에 대비해 결제자금 확보 차원에서 외화예금을 늘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환율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도 퍼져 있다. 수출기업이 1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면 원-달러 환율이 20원만 올라도 손쉽게 20억원을 벌 수 있다. 개인 외화예금 가입자의 경우 유학간 자녀한테 송금해야 하거나 해외출장이 잦은 ‘진짜’ 달러 수요자들이 많다. 또 외환위기를 한번 겪은 탓에 경제 불안심리가 퍼지자 달러를 갖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해 보험 차원에서 외화예금에 가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환테크(또는 투기) 목적으로 외화예금을 갖고 있는 개인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 근처에 있는 외환은행 도곡역지점 권성호 PB팀장은 “환율이 1300원 또는 1400원대까지 올라가는 것 아니냐며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환차익을 노리고 3개월, 6개월짜리 외화예금에 가입해 달러를 사놓자는 가수요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달러당 1170원대에 머물던 환율이 단 몇주 사이 1260원대까지 오르자 ‘인생역전 로또’가 유행하듯 환차익 기대심리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 외화예금의 투자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달러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차익·환차손은 제쳐두고 예금금리부터 보자. 외화예금 잔액이 가장 큰 외환은행의 경우 1년짜리 외화 정기예금 금리는 연1.17%에 지나지 않는다. 급전 100달러를 빌려주면서 하루 1달러(연리 365%)를 이자로 받는 ‘달러이자’가 악명높은 고리대금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달러 외화예금 금리는 이자가 형편없다. 외화 보통예금 금리는 0%에 가깝다. 반면 1년짜리 우리 돈, 즉 원화 정기예금 금리는 연 4.6% 안팎이다. 원화로 정기예금에 들지 않고 달러 외화예금에 넣어둘 경우 금리에서 당장 3.5%포인트의 큰 손실이 생긴다. 금리에서 까먹은 것 이상을 장래의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익으로 만회할 수 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확정되지 않은 ‘기대’일 뿐이다. 환전수수료 손해도 만만찮다. 외화예금에 가입하면 전신환(TT) 기준으로 원화를 달러로 사야 하고 나중에 돈을 빼내려면 다시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한다. 3월18일 현재 외환은행의 원-달러 매매기준율은 1251.5원. 그러나 달러를 살 때는 1263.7원을 줘야 하는 반면 팔 때는 달러당 1239.3원으로 친다. 매매기준율보다 0.98%씩 더 비싸게 사고 더 싸게 파는 것인데, 외화예금에 들면서 약 2%의 환수수료를 앉아서 손해보는 셈이다.
외환거래 차익 노리며 고위험 감수
그렇다면 나중에 환율이 어느 정도 올라야 원화 정기예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일까. 간단히 보면 원화 정기예금 금리와의 차이(3.5%)에 환전수수료(2%)를 합친 만큼, 즉 환차익이 적어도 5.5%는 생겨야 손실을 보지 않는다. 외화예금 가입 당시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라면 나중에 1266원 이상으로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원화 정기예금은 1년 이상짜리가 대부분이지만 외화예금은 몇주나 몇 개월짜리가 있어 단기간에 환차익을 챙기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외화예금은 환율 급변동에 따른 위험이 크다. 나중에 환율이 급등하면 막대한 이익을 보지만 살 때보다 떨어지면 1.17%의 작은 이자도 못 건지고 큰 손실을 본다. 한국은행조차 적정환율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환율은 크게 변동하는데, 주식시장보다 환율 예측이 더 어렵다고 한다.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은 “환율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물가안정을 위한 적정환율은 1천원이라지만 수출업체들은 1400원이 적정환율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원-달러 하루 변동폭은 지난해 0.31%로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0.14∼0.24%)보다 높다. 환율이 널뛰기할수록 외화예금 리스크는 더 커진다. 그렇다면 거액의 개인 외화예금 가입자들은 모두 ‘고위험 고수익’을 좇는 위험선호자들(Risk Lover)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행 프라이빗뱅커 이종민씨는 “환율이 더 크게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외화예금 가입자들이 많다. 하지만 뛰고 있는 환율이 폭락할 위험도 있어서 리스크도 크다. 외화예금의 저금리와 환전수수료를 따질 때 원화 정기예금만큼의 수익도 못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외화예금 가입액이 급증하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금융소득종합과세의 허점 때문이다. 연간 금융소득이 4천만원 이상이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돼 누진세율(10∼40%)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자소득은 세금을 물지만 외환거래에 따른 차익은 과세대상에서 빠진다. 원화 정기예금 금리를 연 5%로 칠 때 계좌에 8억원이 들어 있으면 연간 4천만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한다. 그러나 8억원을 엔화표시 외화예금(금리 0.095%)에 넣어두면 이자소득이 100만원선으로 크게 줄어든다. 흥미로운 건 공식 이자수익이야 코묻은 돈에 지나지 않지만 외화예금에서 나오는 실제 이익은 이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한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는 “공식 이자는 100만원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이상을 외환매매에 따른 이익으로 보장해주는 상품이 은행마다 별도로 있다. 선물환(일정기간 내 미리 정한 일정한 환시세로 외국환을 매매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을 걸어 환리스크를 회피하는데, 선물환과 정기예금 등을 결합해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환율 리스크를 어느 정도 안고 있지만 외화예금 금리 이상의 ‘확정이익’을 내면서도 ‘외환매매에 따른 이익’은 과세에서 빠지기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교묘히 비껴가는 것이다.
비공식 맞춤형 상품에 부유층 몰려
사실 은행들은 VIP 거액 외화예금자들을 위해 내부적으로 복합상품을 따로 개발해서 갖고 있다. 일반창구에서 파는 상품이 아니라 VIP룸에서만 파는 비공식적 맞춤형 상품으로, 고객 주문에 따라 여러 금융상품을 적절히 배합해 외화예금의 저금리 이상을 보장해준다. 만기 때 시장환율이 외화예금 가입시점보다 50원 이상 떨어지면 달러당 15원을 돌려주거나 달러를 사고팔 때 환전수수료를 깎아주는 식이다. 물론 수만달러 이상 예치한 외화예금 고객한테만 적용한다. 이런 고객의 경우 시장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는 여전히 노출되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해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환차익도 환차익이지만 요즘 외화예금이 급증하는 배경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해 세금을 줄이려는 부유층의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수법의 외화예금을 동원한 부유층 편법탈세는 금융권에서 ‘다 아는 비밀’이다. 한국은행 외환수급팀은 “은행들이 거액 외화예금 가입자한테 정해진 외화예금 금리를 웃도는 사실상의 확정이자를 주고 있는데, 여기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