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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3.03.20(목) 제451호

[특집] “이라크를 냅둬라”

국회의원 방문단으로 이라크에 다녀온 송영길 의원이 전하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반전과 평화의 외침

“이라크를 내버려둬라.”(LET IRAQ LIVE)

아밀리야라는 방공호 앞에 걸린 플래카드에 쓰인 구호다. 제발 이라크를 그냥 살게 내버려두라는 말이다. 1991년 당시 미군의 미사일 오폭으로 408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죽은 곳이다. 지하 방공호에 들어가보았다. 대구지하철 참사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새카맣게 타버린 어여쁜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의 사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바그다드시내에서 만난 젊은 대학생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미국을 공격한 바 없는데 왜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려 하는가”, “알카에다 조직원 가운데 이라크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모하메드는 쿠웨이트 태생이고 알자지라는 모로코 출신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이라크 후세인 정부가 알카에다 조직과 관련되었거나 이를 조종, 지원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 없는 이라크 공격에 대한 울분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던 날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테러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살해한 것은 분명한 명분과 이유가 있었고, 귀책사유가 있는 특정인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의사표시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9·11 테러로 아무 상관이 없는 28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다. 사망자 가운데는 한국인도 있고, 필리핀 등 제3세계에서 온 무역센터빌딩 청소부 관리인들도 있다.

9·11 테러로 미국인이 겪었을 충격과 슬픔은 충분히 이해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안전하게만 보이던 미국 본토, 그것도 뉴욕의 상징인 무역센터와 국방부 펜타곤 건물이 공격당했으니 충격의 강도는 짐작할 만하다. 그들의 분노 역시 이해된다.

그래서 아프간 공격도 세계여론이 용인한 것 아니었는가.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아프간 전쟁과 다르다. 9·11 테러의 충격과 분노를 이라크 공격 정당화로 연결시키기에는 여러 비약과 무리가 따른다. 미국 국민도 서서히 이를 알게 됐다. 이제 미국 국민의 50% 이상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 이유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이미 개시되었을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동안 바그다드에 있는 교민 박상화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단다. 주유소에 차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줄을 서고 있으며 전쟁 분위기로 상황이 급전된 모양이다.

3월10~13일의 3박4일 동안 바그다드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마디 국회의장을 비롯해 부의장, 국제관계 위원장·부위원장과 국회의원들 및 석유상차관·보건청차관·교통통신부장관 등을 만났다.

밤거리에서 바그다드 대학생들과 토론도 해보고, 시장에서 상인들과 인사도 했다. 거리에서 만난 여고생들의 까르르 대는 웃음과 반가운 손짓, 인형처럼 예쁜 아이들의 낯선 동양인들에 대한 호기심과 반가움, 따뜻한 미소와 인사. 전쟁을 앞둔 도시 같지 않고 너무 여유로운 호의와 미소를 보여준 순박한 바그다드 시민들. 그러면서도 제발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안타까운 호소와 공포, 긴장이 숨어 있었다. 내가 이라크에 3박4일 동안 있으며 느낀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냅둬라”는 것이다. 제발 평화롭게 살도록 이라크를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거리에는 우리나라의 기아 베스타 차량과 대우·현대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거리간판에는 LG전자와 삼성, 대우 등의 간판이 눈에 많이 띄는데 특히 LG전자 간판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때 활발한 이라크와 한국 간 경제교류를 보여준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인들에 호의적이다. 내가 만난 국회의장, 국회의원들, 정보교통장관, 석유차관들도 모두 한국과 경제교류를 원했다. 그들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고 말했다. 이라크인들이 무도한 전쟁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갈 수 있기를 기원해보지만 쉽지 않을 듯싶다.

석유 없었다면 더러운 전쟁 없을 텐데…

그들은 석유를 저주한다. 석유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부러워한다. 석유로 인해 피흘리는 그들의 심정을 절절히 담은 “우리는 석유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비극에 공감했다.

바그다드 공항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그들의 따뜻한 미소와 맑은 눈망울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미국·영국·스페인이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하려 한다. 정녕 21세기가 도덕도 법도 없는 벌거벗은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는가. 중세 암흑기의 무지몽매한 십자군 시대로 돌아가는가. 수많은 지식인·종교인·언론인·정치인들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말인가. 무력감과 자괴감에 너무 괴롭다.

바그다드의 한 학생에게 물었다.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족과 자국민을 탄압하고 독재를 했기 때문에 후세인을 타도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공격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가 미국더러 이라크 대통령을 뽑아달랬는가. 한국인이 노무현을 선택했듯 이라크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해 후세인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후세인 독재체제는 김정일 독재체제와 같이 발전적으로 극복돼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라크·북한 국민의 몫이다. 스스로 변화·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후세인 이후 대안세력이 준비되지 않아 고민이란다. 12년 동안 경제제재, 지나칠 정도의 주권침해 등으로 후세인 반대세력이 설 땅을 미국 스스로 없애왔기 때문이다. 경제제재와 탄압은 이에 대항하는 세력의 통합을 위해 필연적으로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의 등장을 초래한다.

세계에 많은 독재정권은 미국의 지지와 지원 아래 성장해왔다. 이란의 팔레비, 이집트의 사다트를 비롯해 니카라과 소모사, 칠레 피노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한국의 박정희·전두환에 이르기까지. 아프간의 탈레반과 이라크의 후세인조차 미국이 소련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을 무장시키고 지원해 만들어진 군사세력들이다. 이들은 전쟁 이후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은 팔레스타인 분쟁을 중동 전역에 확산시키고 제2의 유고슬라비아 사태를 만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 모른다. 전 세계로의 테러 확산과 이에 대한 보복응징으로 21세기가 전쟁과 테러로 물들 위험이 크다.

바그다드에서 본 <이라크데일리뉴스>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스라엘은 72번 유엔 결의안을 위배하고 이집트·요르단·시리아·이라크·레바논·튀니지를 침략했으며, 시리아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조그만 인구에 세계 4위 규모의 군대를 가진 이스라엘에 대해 단 한번도 유엔 경제제재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고. 미국은 그동안 76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그 가운데 35건을 이스라엘을 위해 사용했다고.

그들의 가슴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미국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후세인 정권의 무장수준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런 대공방어망도 없이 열린 하늘로 토마호크·크루즈·데이지커터·모압 등 무서운 최신식 대량살상무기 수천발이 떨어질 것이다. 중무장한 탱크부대와 미·영 연합군의 바그다드 진격에 구식 아카보 소총으로 항전하는 것은 미군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레이저 조준사격 대상 위치를 알려주는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개시되면 미군이 당연히 군사적으로 승리하고, 바그다드를 많은 시민의 피흐름 속에 접수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바그다드에서 만난 한 대학생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대량살상무기는 우리의 가슴속에 있다.” 이 분노의 목소리를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유엔을 무력화하고, 국제사회의 모든 여론을 무시하고,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점령하고 난 후폭풍은 세계의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넬슨 만델라에게 바그다드를 방문해 전쟁을 막아달라고 편지를 보낼 생각이다.

송영길/ 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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