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3월26일 제452호 

널뛰는 환율, 사람 잡네!

환리스크 사각지대에 놓인 개인 엔화대출자들… 이자 부담 덜으려다 ‘엔고’로 눈덩이 원금


사진/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원화가 급격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외환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환율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류우종 기자)

개인사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친구로부터 은행대출에 대한 색다른 정보를 들었다. 은행에서 엔화로 대출을 받으면 원화로 돈을 빌릴 때보다 절반 이하의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반인들도 그런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다른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5천만원가량을 빌려쓰고 있는 참이어서 싼 이자로 외화대출을 해 이를 갚으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거래은행 지점을 찾아가 상담한 결과 엔화대출을 받으면 은행이자 부담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연 3.5% 이자의 엔화대출로 신바람 났건만

김씨는 곧 은행에서 400만엔(약 4천만원)가량을 대출받았다. 만기 1년에 연 3.5% 이자로, 3년 동안은 원한다면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자는 원화로 월 14만4천원가량이었다. 김씨는 엔화대출을 받아 주택담보대출 원금을 갚아버렸다.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은 연 7.5%로 한달에 31만원가량 이자로 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연간으로 따지면 이자부담이 200만원가량이나 줄어든 것이다. 글로벌시대에 남보다 앞서간다는 자부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원화의 가치가 자꾸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1050원 안팎으로 오르면서 이자부담은 월 15만3천원으로 늘었다. 이자야 얼마 안 되지만, 문제는 원금이다. 환율이 지금 상태로 유지된다면, 만기 때 갚아야 할 원금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가 대출을 받을 때 원-엔 환율은 100엔당 1천원가량으로, 400만엔은 우리 돈으로 4천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원-엔 환율이 1050원대를 유지하면, 그가 갚아야 할 원금은 4200만원에 이르게 된다. 김씨는 “빌릴 때는 이자가 적은 것은 물론 잘하면 환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환율이 오르다 보니 이제는 원금부담이 커져 이자가 싸다는 게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은행쪽은 최근 “환율이 자꾸 올라가 주의가 필요하다”는 이메일을 김씨에게 보내왔다.


사진/ 한국은행이 외화대출의 용도제한을 폐지해 누구든 외화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한동안 은행 프라이빗뱅킹센터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던 외화대출 상담이 최근들어 줄어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정아무개씨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씨는 지난해 9월 한 은행에서 650만엔가량을 대출받았다. 건물을 사려는데 부족한 돈을 대출받으려고 하자, 은행쪽에서 엔화대출을 소개해줬다. 그는 환율이 바뀔 경우 위험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원-엔 환율이 990원가량일 때 연 3.3%의 아주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그 또한 6천만원이 넘는 대출금에 대한 연간 이자부담이 190만원가량으로, 원화로 대출하는 것에 비해 절반도 안 됐다. 그러나 그도 요즘 자꾸만 올라가는 환율에 불안감을 느끼고 하루에도 몇번씩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환율을 확인해보곤 한다.

외환거래 자유화로 일반인도 위험에 노출



외국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인들에게는 환율변동이 항상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1년 내내 애써 벌어들인 수익이 어느 날 환율급등으로 모두 날아가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물론 반대로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여러 기법을 활용한다. 외환위기가 기업인들에게 환율변동의 위험을 뼈저리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외환거래가 자유화되면서 이제 일반인들도 환율변동의 위험에 노출된 시대가 됐다.

외화대출이 일반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10월 한국은행이 시설자금으로 제한되던 외화대출의 용도제한을 폐지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어떤 용도로든, 누구든 외화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자, 특히 금리가 낮은 엔화대출이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달러대출의 경우 금리가 연 4~6%대였지만, 엔화대출은 2~4%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한 지방은행이 연 1.7∼3.2%의 낮은 금리로 25억엔 한도의 외화운전자금대출을 시작하자, 3일 만에 한도가 찰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하반기 엔화대출이 크게 늘면서 국내 기업이나 개인사업자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엔화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76억달러가량에 이르렀다. 엔화대출이 크게 늘자 정부는 다시 이를 조이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이 급증하자 지난해 말부터 통화당국이 대출 억제를 지시했고, 최근에는 은행의 외화유동성 확보 필요성도 있어 실수요자에 한해서만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원-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그동안 좋게만 보였던 외화대출의 단점이 불거져나오고 있다. 연초만 해도 원-엔 환율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100엔당 1천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3월 들어 북핵 위기가 불거지자 원화가 다른 나라의 통화에 비해 급격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2차 미사일 실험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르기 시작한 환율은 지난 3월10일 100엔당 1029원으로 치솟은 뒤, 한때 1050원을 넘어섰고, 지금도 그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100엔당 1천원대에서 엔화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원금부담이 5%가량 커진 셈이다.

달러대출과 원화대출의 커다란 차이점은 엔화대출의 경우 개인적 차원에서 환율 위험을 회피(헤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달러대출은 선물거래소에서 선물이나 옵션거래를 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엔화의 경우 선물·옵션이 아예 상장돼 있지 않아 그런 방법의 위험회피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환위험 회피 힘들어…환율 상·하한부 상품


사진/ 최근 원-엔 환율 급등 원인은 엔화 강세보다는 원화 약세에 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딜러들이 주문을 내고 있다. (AFP연합)


은행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고객이 원한다면 엔화대출을 언제든 원화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 대출을 하기도 했다. 엔화대출을 받은 한 은행고객은 “원화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0.5%포인트 가까이 이자를 더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엔화대출을 받은 고객들 중 절반가량은 이런 조건으로 대출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은행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환율급변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대출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신한은행의 ‘환율 상·하한부 대출’이 그 예다. 지난 2월4일 선보인 이 상품은 고객이 미리 환율의 상·하한선을 정해놓고, 상·하한선 이상으로 환율이 변동하면 상한선이나 하한선을 적용하기로 한 대출상품이다. 예를 들어 현재 원-달러 환율이 1천원이고 상·하한선을 30원으로 정한 경우 970~1030원까지는 시장환율을 적용하고, 그 이상으로 환율이 오르면 이자나 원금을 1030원으로 계산해 갚는 식이다. 은행이 처음부터 수수료를 받고 선물환시장에서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한 옵션계약을 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출은 건당 미화 30만달러, 엔화 2억엔 이상의 기업고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일반인들이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돈을 빌린 고객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어 지금 전환을 해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엔화대출 잔액이 1618억엔가량인 우리은행의 기업상품개발팀 천문환 차장은 “상담을 해오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아직은 원화대출로 전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직 만기가 많이 남아 있고 전환을 했다가 환율이 다시 떨어지면 큰 손해가 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 기다려보자는 생각이 우세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원-엔 환율이 더 오르면 원금부담은 급격하게 커지게 된다.

다시 원화대출로 전환해야 하는 것인가

천 차장은 “원화대출로 전환하기로 계약하지 않은 고객들도 지금이라도 원화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쪽으로서도 고객에게 무엇을 권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환율변동 위험을 완전히 피하고 싶은 고객이라면 방법은 있다. 은행이 수수료를 받고 역외 선물환시장에서 옵션계약을 대행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원금의 0.5% 안팎의 수수료를 새로 부담해야 한다. 환율상승으로 이미 원금부담이 커진 고객들로서는 연간 이자율 3%짜리 대출에 0.5%포인트가량을 추가로 내는 일이 결코 작지 않은 부담이다. 천 차장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회피는 결제일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우선 거래은행을 찾아 앞으로 상황변동에 따른 다양한 대처방법을 상담해두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은행들은 최근 16개월간의 추이를 볼 때 현재 원-엔 환율은 거의 최고치 수준에 이르러 있는 만큼 환율이 추가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환율이 움직이는 방향은 어떤 전문가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고객들의 신중한 대응을 당부할 뿐이다. 최근의 환율급변이 그동안 환위험에 생소했던 일반인들에게 또 하나의 경제 공부를 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엔화대출 버티면 손해일까

대출만기 시점에 따라 전환여부 결정… 1년이면 환율 1050원·3년이면 1100원이 분기점

원-엔 환율이 100엔당 1천원선일 때, 엔화로 대출을 받은 은행 고객들이 앞으로 감당할 수 있는 환율상승 폭은 얼마까지일까

연 3.5%의 금리로 엔화대출을 받은 고객이 1년간만 돈을 쓰고 갚는다면 환율 1050원 정도가 손익분기점이 된다. 환율이 1050원으로 오르면 원금상환 부담이 5% 늘어나면서 금리 연 7%인 원화대출과 실질부담액이 거의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기를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보면, 계산이 조금 달라진다. 환율상승은 우선 매달 이자부담을 키운다. 환율이 1100원이라면 원화로 계산한 원금도 10%만큼 늘어나는 셈이므로 이자부담도 10% 늘어난다. 500만엔(약 5천만원)을 빌린 경우 연간 이자부담액은 175만원에서 192만5천원으로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3년간 추가 이자부담액이 모두 합해 50만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문제는 원금인데, 3년 뒤에도 환율이 1100원이라면 원금 500만엔(약 5천만원)이 5500만원이 되어 애초 예상보다 500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환율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면 525만원(연리 3.5%)이었을 총부담액이 1075만원으로 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손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5천만원을 원화대출(연 7%)로 3년간 빌려썼더라도 거의 그만큼 이자를 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3년 동안 원-엔 환율이 1100원을 넘어서지 않거나, 만기 때 환율이 그보다 낮아진다고 보면, 지금 굳이 원화대출로 전환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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