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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 식은땀 나는 흉기여 언제 녹아내릴 지 모르는 초위험사회… 오열하는 대구의 초현실적 현장을 가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2월19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 유천동 월배차량기지 검수고 앞. 100여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다. 30명씩 무리를 지어 창고로 들어가 사고차량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먼저 들어간 50대 남자가 가족에게 다가왔다. 붉게 물든 그의 눈가에선 연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다른 이들도 흑빛으로 변해버린 얼굴로 하나같이 흐느꼈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좀 살려줘”
매케한 냄새가 배어나는 전동차 앞에 선 이들이 하나둘씩 무너져내리는 데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좀 살려줘. 우리 아가… 살려줘요.” 주저앉은 모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듯 필사적으로 주변을 향해 팔을 뻗쳤다. 손아귀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경비를 서던 젊은 경관 둘이 고스란히 끌려나왔다. “얼굴만, 얼굴만…. 얼굴만이라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토해내는 절망의 통곡소리는 최루가스가 되어 검수고 안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물기 섞인 눈을 들어 전동차를 바라봤다. ‘녹아내렸다’는 말을 빼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차체 쇳덩이도 녹여놨으니, 그 안에 탄 사람들의 형체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내 동생이 저 안에서 얼마나 살려고 발버둥쳤겠어. 얼마나… 얼마나 뜨거웠을까….”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가루가 됐어. 어떻게….” 발을 구르며 울부짖는 가족들의 모습을 더는 지켜보기가 버거웠다.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들의 눈도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신을 놓아버린 가족의 팔을 부여잡는 40대 남자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뿌옇게 변해 있었다. 대구시 중구 남일동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방화참사현장에 내려선 건 사건이 난 지 30여 시간이 지난 뒤였다. 육군 50사단 장병들을 따라 들어선 중앙로역은 여전히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방송에 나온 현장화면이 현실적이었다면, 직접 본 사고현장은 초현실적이었다. 사고가 난 지 하루 반이 지났지만 역겹도록 매운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콧속 깊이 전해졌다. 출입구에서 지하 3층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독가스까지 꽉 찬 역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쳤을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같이 내려가던 김병태 중령은 “처참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승강장은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휘어진 채 무너져내린 천장은 화마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화염이 남기고 간 잿더미에서 번져나오는 검은 먼지로 눈뜨기조차 쉽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놓인 붉은색 소화기 2대는 검은 먼지만 뒤집어쓴 채 무용지물이 돼 있었다. 상·하행선 선로 사이에 놓인 광고판은 네 귀퉁이 철판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를 깨뜨린 악귀의 화염
지하도 양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하지만 이 바람도 악귀처럼 퍼져가는 죽음의 가스를 날려주지는 못했을 테다. 오히려 불길에 산소를 공급해 화를 키웠을 것이다. 앙상하게 타다 만 중앙로역 이정표가 슬픈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로를 따라 대구역 방향으로 걸어갈수록 천장의 그을음은 정도를 더해갔다. 승강장 천장도 역 중간지점과는 달리 천장 구조물 안에 있는 배기구조차 견뎌내지 못하고 흉물스러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콘크리트를 덧씌운 승강장이 화염에 깨져나갔을 정도니 불길이 얼마나 거셌는지 가늠이 안 된다”고 말했다. 끔찍했다. 지하 3층 승강장에서 28칸의 계단을 올라 지하 2층 개찰구로 향했다. 계단 벽면의 타일이 열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깨져나가 있었다. 검은 그을음 천지였다. 개찰구 출입문도 검게 그을려 있다. 중구청·국채보상기념공원 방향으로 나가는 출구쪽에 있는 화장실도 새까만 잿더미 연기를 둘러쓴 채 질식해 있었다. 화분의 푸르른 나무는 화석처럼 까맣게 변했고, 친구를 기다렸을 원형벤치에도 어김없이 죽음의 먼지가 덮여 있었다. 지하 2층에서 다시 28칸의 계단을 올라 지하 1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전히 매케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고 그을음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지하상가쪽 출구의 방화벽쪽으로 걸어갔다. 지하상가의 휘황한 불빛이 검은 역사를 비췄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2명이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갖다놓았는지 흰 국화 두 다발이 그들 뒤에 놓여 있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47칸. 마스크를 하고 들어갔는데도 얼굴은 온통 까맣게 변했고, 입에서는 흑빛 가래가 덩어리로 튀어나왔다. 그날 사람들은 모두 103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불길과 연기를 피해 햇빛이 비치는 땅 위로 나올 수 있었다. 소방차량·경찰차량 틈에서 중앙로역 1번 출입구 도로쪽 벽에 걸린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이용은 대구사랑입니다.’ 대구사랑의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말한다
왜 이토록 처참한 사건이 벌어진 걸까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대로 ‘미친 놈이 미친 짓을 저지른 것’일까. 사건의 원인을 더듬기 위해 2월20일 오전, 방화 용의자 김대한(56)씨가 살던 대구 서구 내당동을 둘러봤다. 그가 불을 지른 휘발유를 샀다는 주유소를 지나, 고층 아파트를 끼고돌아 그의 집으로 향했다. 골목길에는 인기척조차 없었고,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집의 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김씨의 아들(27)은 사고 직후 경찰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6년 전부터 개인택시 운전을 했다. 그러다 2001년 4월 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 때문에 실어증과 우측 반신이 마비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가 “최근 뇌졸중이 치료되지 않은 것이 ‘ㅁ병원 의사의 잘못’이라며, 여러 번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휘발유를 사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텔레비전에서 지하철 관련사건 내용이 나오면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른쪽 팔다리 마비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지난해 8월에는 시내 ㄱ정신과의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 ㅈ씨(49)와 아들·딸(28)은 경찰조사를 받은 뒤부터 행방을 알 수 없다.
‘메트로폴리탄’이 의미하는 것
옷가게와 복권방, 철물점과 구멍가게를 돌아봤다. 조금씩 다르게 김씨에 대해 말했지만 공통점은 김씨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낼 만큼 큰일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이웃들의 증언이다. 그의 주변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이번 사건을 저지른 명쾌한 이유를 발견하기는 불가능해보였다. 언론보도나 경찰수사는 ‘나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장애인의 비뚤어진 복수심이나 성격장애, 사고 당시 지하철 관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대응 미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재발을 막는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참사가 일어난 ‘거대도시’가 ‘초위험 덩어리’임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양사람들은 지하철을 메트로라고 한다. 메트로는 메트로폴리탄의 줄임말이다. 메트로는 접두사고, 폴리탄은 도시의 형용사형이다. 지하철의 서양식 이름 어원은 ‘큰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압축된다. 큰 도시가 형성됨으로써 도시계획 문제가 발생하고, 도시계획의 큰 그림 속에서 지하철을 포함한 교통이 자리잡고 있다. 거슬러올라가면 지하철 안전의 뿌리는 거대도시 문제에 닿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도시화가 꾸준히 진행돼 인구 100명 중 88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01 도시계획 현황’을 보면, 2001년 말 현재 전국인구 4824만1천명 중 행정구역상 읍 단위 이상에 사는 인구는 4260만8천명으로 도시화율이 88.3%였다. 도시화율은 85년 74.3%에서 90년 81.9%, 95년 85.5%, 2000년 87.7%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서울은 이미 메트로폴리스(거대도시)의 개념을 벗어나 위성도시권과 하나의 거대한 집적체를 형성하고 있는 메가로폴리스(거대도시 연속지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가 안전·건강·쾌적이 보장되는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능률를 중시하는 ‘생산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자연재해의 위협은 말할 것도 없고,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가스폭발, 교통사고 등 인위적 재난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서울시립대 수도권연구소, ‘도시과학포럼’ 발표문)
가장 위험한, 가장 일상적인…
거대도시 주민의 안온한 삶을 떠받치는 원자력발전·도시가스·전력·아파트·지하철·교량 등은 한순간에 삶을 위협하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 2월23일 중앙로역 사고현장을 찾은 신병주(17·대구 대건고3)군이 “내가 늘 다니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한 말처럼 도시에서는 가장 일상적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말 밤 11시께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해 1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한밤 폭발에 놀란 아파트 주민 수백명이 건물 밖으로 긴급 대피했다. 날이 밝은 뒤 아파트 주민들은 사고경위를 듣고 ‘이나마 다행’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정문제를 비관한 집 주인이 도시가스 밸브를 열고 집 바닥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던 것이다. 만약 사고 초기 재빨리 아파트 도시가스 메인밸브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불이 난 아파트에 사는 80여 가구가 불덩어리에 휩싸일 뻔했다. 최악의 경우 가장 안전한 곳이라 믿는 아파트에서 떼죽음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생활은 전기, 가스, 교통, 산업 등 일상적인 생활이 매우 복잡하여 수많은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우연이나 의도적인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런 사고의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은 매년 5천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 1993).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1989년부터 전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안전도시를 공인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안전도시의 개념은 1989년 9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회 사고와 손상 예방 세계학술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대두됐다. 안전의 가치는 공기와 비슷하다. 평소에는 중요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 사고 같은 재난이 터지면 언론매체 보도가 집중되고, 안전을 확보하라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정치압력으로 작용한다. 공공조직의 개편이나 신설, 발생한 재난에 대한 예방과 수습조처를 포함한 법규나 제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여론의 열기가 한두달이 되기 전에 사라지고 기존의 이해관계가 고개를 들고 안전관련 정책의제와 정책집행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독일의 사회철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협하는 안전의 상실과 재난의 공포는 이미 과학적 문제해결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벌어진 뒤 도시인들의 통근길은 더욱 고단해졌다. 등받이에 몸을 의지한 채 잠깐 눈을 붙이기도 쉽지 않다. 등산복 차림으로 앞에 앉아 하품을 하는 50대 남자. 그가 어깨에 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얼핏 든 선잠이 “이번 역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는 안내방송에 깼다. 매번 듣는 방송이지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은 것은 애초 설계가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시공을 잘못한 탓이다. 오늘도 지하철은 도시인을 싣고 무심하게 달리고 있다.
대구=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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