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2월21일 제447호 

청와대의 ‘젊은 탄환’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비서관 31명 입체 점검… 민주화 운동 거친 40대의 이색 경력자 많아


사진/ (강재훈 기자)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손발이 되어줄 비서관(1~2급)들의 진용이 갖춰졌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45살로 역대 청와대 비서진 가운데 가장 젊다. 또 대부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과거 노련한 관료나 정당 출신들이 주축을 이뤘던 청와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개혁의 ‘총본산’으로서 청와대를 순항시키느냐, 아니면 미숙함을 드러내며 좌초하느냐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성패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정무수석

통추의 정신을 이어가나


<정무수석실> 유인태,문학진,박기환,김용석(왼쪽부터)

유인태 수석이 지휘할 정무수석실 소속 비서관들은 각 정당이나 단체 등 ‘상대’에 맞춰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 분야인 만큼, 다른 수석실과 달리 연령면에서 중량감 있는 인사들로 진용이 갖춰졌다. 또 과거 ‘통추’ 출신이거나 정치적으로 통추와 가까운 성향의 인사들이 주로 기용됐다. 신봉호 정무기획 비서관은 서울시립대 경상대 경제학부 교수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 그룹이었던 중경회 회원이다. 신 비서관은 국민의 정부 초기인 1998년 2월부터 99년 3월까지 1년여 동안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실 건설교통 비서관과 정책기획 비서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신 비서관은 대선기간 동안 김원기 고문이 주도하고 유인태 수석이 실장을 맡아 노 당선자의 선거전략을 자문해온 이른바 ‘마포팀’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의 통로역할을 할 문학진 정무1 비서관은 16대 총선 때 경기 광주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박혁규 후보에게 3표차로 낙선해 ‘문세표’로 불린 일로 유명하다. 대학 시절 반유신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과 복학을 거듭하며 10년 만에 졸업했다. 한겨레신문 창간 직후인 88년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정체를 폭로한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재호 비서관은 현 정부 인맥으로는 드물게 부산 민주계 출신으로, 한나라당과의 대화창구 역할을 맡는 정무2 비서관에 내정된 것도 이런 이력과 관련돼 있다. 박 비서관은 87년 대선 때는 김영삼 당시 대선후보의 학생담당 비서를 지냈으며 문민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실 국장과 총무비서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청와대를 나온 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2000년 8월 귀국 직후부터 노 당선자를 위해 부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박기환 지방자치 비서관은 상고를 나와 공인회계사가 되고 정치적 소신을 지켜온 점 등에서 노 당선자와 인생역정이 유사하다. 박 비서관은 88년 통일민주당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나, 90년 3당 합당 때 노 당선자와 함께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고, 97년 한나라당과 통합할 때도 따라가지 않았다. 대선기간에는 경북선대본부장으로 노 당선자를 적극 지원했다.

시민사회단체를 담당할 장준영 시민사회1 비서관은 성균관대 73학번으로 78년 서울시내 6개 대학 연합시위를 준비하다 붙잡혀 10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등 학생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83년 민청련 창립 초기 회원으로 참여했으며 86년에는 작고한 이범영씨와 함께 민청련 공동의장을 맡아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가며 활동을 벌였다. 89년에는 전민련 정책실 차장으로 일했는데, 그때 김근태 의원이 정책실장이었고 신계륜 의원이 장 비서관과 함께 정책실 차장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민주당 경선 때는 한반도재단 기획실장으로 김근태 의원을 지지했으나 경선이 끝난 뒤에는 노 당선자의 비서실 차장으로 전력해왔다.

직능단체를 담당할 김용석 시민사회2 비서관은 연세대 70학번으로 71년 위수령으로 강제징집되고, 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돼 4년2개월 동안의 긴 옥살이를 했으며, 80년에 다시 제적되고 수배되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87년 국민운동본부 민권국장으로 6월항쟁을 주도한 뒤, 88년 평민연 정책실장으로 평민당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93년 통합민주당 부대변인을 역임했으며, 이번 대선기간에는 노 후보의 시민사회 특보로서 활동했고, 인터넷신문인 e-윈컴에 노 후보를 지지하는 칼럼을 6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기고해왔다. 유인태 수석이 실장을 맡은 마포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민정수석

권력기관 개혁의 조타수


<민정수석실> 문재인,이호철,박범계,이석태,황덕남(왼쪽부터)

문재인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에서는 사정기능이 강화되고,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작업이 강도 높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인사검증 기능을 맡게 될 민정1 비서관에는 이호철씨가 내정됐다. 이씨는 ‘부림사건’에서 노 당선자가 변론을 맡은 것이 계기가 돼 인연을 맺었고, 노 당선자로 하여금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든 당사자다. 노 당선자가 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보좌관 자리를 6개월 동안 공석으로 비워두었다가 마다하는 이씨를 끝내 보좌관에 앉힐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 청와대 비서진 인선 과정에서 이씨는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혁작업을 맡을 민정2 비서관에는 박범계씨가 내정됐다. 박 비서관은 인수위원 가운데 유일한 법조인 출신으로 검찰 및 법원 개혁작업의 ‘실세’로 떠오르며 법조계의 관심을 끌었는데, 앞으로 그 주목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비서관은 지난해 10월 김민석 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데 격분해 대전지법 판사를 그만두고 선대위에 합류했으며, 천정배 의원이 중간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태 공직기강 비서관은 이돈명·김찬국·최병모·김형태 등 인권변호사들의 결집소인 법무법인 덕수 소속으로 그 자신 가장 활동적인 인권변론의 길을 걸어왔다. 91년 김기설씨 유서대필 사건에 진력했으며, 연예인 홍석천씨 ‘커밍아웃’ 때는 홍씨 지지모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오태양씨의 양심적 병역거부, 호주제 폐지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또 동성동본금혼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법률자문 역할을 할 황덕남 법무비서관은 사시 23회 출신으로 83년 수원지방법원을 시작으로 98년 서울지방법원까지 15년 동안 판사경험을 쌓아온 변호사다.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법조계에서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신망이 두텁다.

■홍보수석

청와대 기자실, 태풍 맞는다


<홍보수석실> 송경희,윤태영,박종문,김현미,김만수(왼쪽부터)

과거 공보수석이란 이름으로 한 사람이 맡던 역할이 홍보수석과 대변인으로 분리됐다. 장기적인 국정홍보 기획과 조정 역할은 홍보수석이, 기자들과 부딪치며 설득해내는 역할은 대변인이 맡는다.

송경희 대변인은 한국방송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 미주 동아일보 기자, 호텔 홍보실장 등을 지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출신이다. 현재 홍익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뒤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 당선자와 일체 인연이 없는 송 대변인은 뒤늦게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등 노 당선자의 저서와 과거 강연내용, 발언록 등을 챙겨서 읽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조광한 홍보기획 비서관은 이기택 민주당 총재 시절,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과 인연을 맺은 이후 문 실장과 계속해서 함께 일해왔다. 대선기간 중 선대위 찬조연설기획단장을 맡아 ‘자갈치 아지매’를 발굴했다.

윤훈렬 행사기획 비서관은 97년 대선에서 선거기획사인 ‘밝은세상’의 기획실장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해 이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베테랑이다. 98년 청와대에 들어가 행사기획 국장 등을 지냈으며, 2000년 말 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온 뒤 선대위에서 노 당선자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는 25일 대통령 취임식도 그의 몫으로 돌아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근형 여론조사 비서관도 ‘밝은세상’출신이다. 광고회사인 LG애드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97년 대선에 뛰어들었으며, 98년부터 3년 동안 청와대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윤태영 연설 비서관은 연세대 79학번으로 교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된 전력이 있는 운동권 출신이다. 이기택·김재천 의원과 문희상 의원 보좌관을 거쳤으며, 노 당선자가 97년 무렵 <노무현·김자영의 뉴스 대행진>을 진행할 때 방송원고를 쓰며 인연을 맺었다. 글맛이 까다로운 노 당선자의 입맛에 짝 달라붙는 글을 쓰는 능력을 보여, 2001년 금강팀에 합류한 이후 노 당선자의 각종 유세와 연설 원고를 작성해왔다. 부드러운 성정과 깔끔한 매너로 후배들 사이에서 ‘영국신사’로 통한다.

박종문 국정홍보 비서관은 외무고시 14회에 합격하고도 5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기자생활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조선일보에 입사했다가 88년 한겨레 창간 때 자리를 옮겼으며, 연합뉴스를 마지막으로 언론계 경력을 접었다. 지난해 5월 경선직후부터 노 당선자의 언론특보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인수위에서는 국민참여센터 부본부장을 맡았다.

김현미 국내1 비서관은 87년 대선 때 평민당 당보 기자로 당 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정당에서 활동해왔으며, 이우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98년 정세분석국에서 근무하다 박선숙 부대변인이 청와대로 가면서 그 후임을 맡은 이후 5년 동안 계속 부대변인 역할을 지켜왔다. 지난 대선과정에서는 노 당선자의 각종 유세현장을 따라다니며 노 당선자의 ‘입’ 역할을 충실히 해내 노 당선자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윤석중 해외언론 비서관은 현재 청와대 해외언론 비서관으로 청와대 비서진중 유일하게 자신의 업무가 연속되는 경우다. 애초 해외언론 비서관은 이지연(34) 외신담당 대변인이 내정됐다가 이 대변인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점을 감안해 행정관 직급으로 조정되고, 대신 경험이 풍부한 윤 비서관으로 대체됐다.

김만수 춘추관장은 연세대 84학번으로 총학생회 부회장 출신이다. 노 당선자의 92년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설립을 도왔다. 14대에 낙선한 노 당선자가 원혜영 의원에게 소개해줘 원 의원 보좌관을 지냈으며, 부천시의원으로 두번 당선된 경력이 있다. 노 당선자 대선캠프가 있던 금강빌딩 시절부터 공보분야를 맡았고, 인수위 부대변인을 거쳤다. 앞으로 청와대 기자실의 혁명적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참여수석

참여를 이끄는 젊은 기예들


<국민참여수석실> 천호선,최은순,양민호,김형욱,곽해곤(왼쪽부터)

노무현 당선자가 자신의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이름 붙일 만큼 강한 애착을 보이는 분야의 성패를 짊어지고 있다. 그런 만큼 각 분야에서 패기에 찬 젊은 기예들이 국민참여수석실로 모였다. 박주현 수석을 포함한 비서관들의 평균 나이가 41.3살로 청와대 안에서도 가장 젊은 집단이다.

노 당선자 보좌관 출신인 천호선 기획비서관은 대선 때 인터넷본부 기획실장으로서, 인터넷 선거를 기획하고 추진한 실무주역이자, 네티즌의 힘을 하나로 묶은 숨은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연소 비서관인 최은순 국민제안 비서관은 민변 활동은 물론 참여연대·여성민우회·성폭력상담소 등지의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변호사다. 그 연장선에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 등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한 변론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왔다. 민주당 경선기간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변호사모임 소속으로 노 당선자를 후원했다. 박 수석과는 민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에서는 공동변론을 맡은 인연이 있다. 여성단체의 적극적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민호 민원 비서관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75학번으로 79년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수감되고, 학교에서 3번 제적되는 등 파란만장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그의 ‘공범’이다. 88년 조세형 의원의 보좌관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래 줄곧 조세형 전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왔다. 지난해 7월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위원으로 당에 들어왔고, 인수위에서는 정무분과 전문위원을 지냈다.

김형욱 제도개선 비서관은 현직 청와대 비서관으로는 윤석중 해외언론 비서관과 함께 단 둘 만이 새 비서진에 합류한 경우다. 고려대 재학 시절 총대의원회의 의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을 주도했으며 95년 국민회의 창당 때 김대중 총재의 청년재야 담당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디뎠다. 98년 청와대에 들어와서는 국정상황실의 사회·노동 분야에서 일했고, 정책기획 수석실에서는 주5일제 도입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지난해 7월 시민사회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곽해곤 국정모니터 비서관은 서울대 4학년이던 82년 광화문에서 일본교과서 왜곡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돼 1년여 수감된 경력이 있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88년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국회에서 일을 하게 됐으며, 당에서는 예산전문위원, 국가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인수위 전문위원 등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노 당선자와는 13대 때 노 당선자가 이해찬·이상수 의원과 더불어 노동위 3총사로 맹활약할 때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일한 인연이 있다.

■정책수석

노하우의 경험, 참여정부에 이식


<정책수석실> 이병완,정만호/ <의전> 서갑원/ <국정상황실> 이광재/ <국정기록> 안봉모/ <제1부속실> 양길승

정책수석실 비서관들은 상급자인 정책실장과 정책수석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먼저 내정돼, 이들에 대한 노 당선자의 신임 정도를 짐작하게 했다. 이들은 대선기간과 인수위를 거치는 동안 줄곧 한팀을 이뤄 노 당선자의 정책과 공약을 가다듬어왔기 때문에 발언권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완 기획조정 비서관은 한국일보 경제부장 출신으로 98년 이규성 재무부 장관 추천으로 예금보험공사 이사로 옮겨 기업구조조정 실무를 맡은 예보 조직의 산파 역이다. 99년부터 2000년 7월까지는 청와대에서 국정홍보조사 비서관과 국내언론 2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당선자가 후보 시절 자문교수들과 공부를 할 때 이씨의 정리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한때 홍보수석에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이 비서관은 국무회의를 준비하고 대통령 말씀자료 등을 챙기며, 국무조정실과 더불어 전반적인 정책 조정 작업을 펼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정만호 정책상황 비서관은 이병완 비서관과의 인연으로 인생행로를 바꾼 경우다. 정씨는 17년 동안 한국경제에 몸담으면서 경제·국제·사회부장을 거친 끝에, 2001년 출입처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난 이 비서관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해와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비서관은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 수십명과 더불어 각 부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게 된다.

정 비서관은 “복잡한 내용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요약하는 기자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서실장 직속

당선자 최측근 전지 배치


<청와대 비서진>

문희상 비서실장이 직접 통제하는 총무·의전·국정상황·국정기록 비서관에는 노무현 당선자의 최측근들이 배치됐다.

청와대 내 인사조정 및 재무관리를 책임질 최도술 총무비서관과 노 당선자의 인연은 ‘따귀’로 시작됐다. 부산상고 3학년이던 노 당선자가 독서실을 다닐 때였다. 노 당선자는 독서실의 총무인 최씨와 시비를 벌이다 최씨가 뺨을 때리자 순간적으로 책상 위에 올라가 독서실 회원들에게 최씨의 ‘횡포’를 성토하는 연설을 해 최씨를 곤혹스럽게 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둘은 친해졌다.

최씨는 84년 이후 노 당선자의 변호사 사무장이나 지구당 사무국장을 줄곧 도맡으면서 노 당선자의 은밀한 ‘돈줄’까지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이런 인연이 ‘독서실 총무’였던 최씨를 ‘청와대 총무’로 만든 셈이다.

서갑원 의전비서관은 92년 노 당선자의 비서관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노 당선자에 대한 변치 않는 의리를 보여왔다. 이광재·안희정씨와 함께 ‘서울 3인방’에 속한다. 대선기간 의전팀장을 맡아 노 당선자의 일정과 경호팀을 관리해왔는데, 그 역할이 계속되는 셈이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은 88년 노 당선자가 13대 국회에 입성했을 때 비서관을 맡은 이후 15년 동안 노 당선자의 곁을 지켜온,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노 당선자의 ‘오른팔’이다. 청와대와 내각 인선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위 내부에서 견제를 받기도 했다.

권위주의 냄새를 빼자는 취지에서 통치사료 비서관에서 국정기록 비서관으로 이름이 바뀐 자리에는 안봉모씨가 일하게 됐다. 안씨는 ‘부림사건’의 주인공 이호철씨와는 부산대 동기이자 운동권 친구로, 이씨가 연결고리가 돼 노 당선자의 일을 도왔다. 안씨는 부산일보와 부산매일을 거쳐 케이블TV ‘채널 부산’의 보도국장을 끝으로 기자생활을 접고 2002년 5월 노 당선자의 부산 언론특보를 맡았고, 대선기간에는 부산 선대위 대변인을 했다.

양길승씨는 제1부속실장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노 대통령의 손발 역할을 하게 됐다. 양씨는 전남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친 뒤 대학 강사를 하다 96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디뎠다. 서갑원씨의 권유로 2001년 3월 노 당선자의 대선캠프에 합류한 뒤 광주로 내려가 광주·전남 지역 조직책으로 경선을 준비했다. 노 당선자를 가장 편하게 모시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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