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2월20일 제447호 

궁궐에서 일터로

대들보 바꿔 변신 모색하는 청와대… 탈권위주의로 업무 효율성 향상 꾀해


사진/ 현재의 청와대 본관에는 ‘운동장만한’대통령 집무실이 있을 뿐이다. (강재훈 기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최근 청와대 본관 구조 개편에 대한 개략적 보고를 받고 “그렇게 바꾸려면 얼마나 드느냐”고 대뜸 물었다. 실무자가 “4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자, “너무 많다. 우리 몸에 어울리는 옷을 입자. 너무 초라해 보이면 곤란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무 공간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대를 지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로 정부 문패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곳이 청와대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은 국민의정부 초반, 논의만 무성했을 뿐 부분적 개편에 그쳤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방안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외교·국방·경제·정보과학기술·인사 등 6명의 보좌관 소속 직원들이 본관에 상주하도록 했다. 의전비서실 일부와 국정상황실도 본관에 입주할 예정이다. 본관에 상주할 수석과 보좌관들의 별도 접견실은 제공되지 않는다.

집무실을 업무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운동장만하다”는 대통령 집무실 규모를 줄여야 하고, 규모별로 여러 개인 연회장도 외교 관례나 의전상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없애야 한다. ‘청와대 본관 개편팀’은 최근까지 5차례의 답사를 통해 공사 계획을 거의 마무리지었다. 그동안 인수위 백원우 전문위원이 개편팀을 주도했으나 이제 청와대의 살림을 맡을 최도술 총무비서관 내정자와 임상경 전문위원이 넘겨받았다. 국내 굴지의 설계업체인 ㅈ건축이 개편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본관 개조팀은 1층의 세종실과 총무실·요인대기실·기자대기실과 2층의 비서실장실·제1부속실·대기실·집현실 등 ‘의전용’ 공간을 ‘사무용’으로 용도변경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공사가 마무리되면 1층 325평, 2층 125평 등 모두 450여평이 업무공간으로 바뀐다. 본관 근무자도 현재의 약 30여명에서 공사가 끝나면 1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과 <그대안의 블루>의 이현승 감독 등 영화감독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주축인 이들은 애초 ‘자문’에만 응하다가 지난 1월10일엔 청와대 본관을 직접 답사해 ‘일하는 청와대’의 개념 위에 ‘탈권위’와 ‘개방성’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누가 청와대 안에 들어와 돌을 던질 수 있느냐. 경호상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을 모두 뜯어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비서관과 행정관들의 사무 공간을 조각조각 방으로 구분짓지 말고 개방형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들과 함께 답사를 다녀온 임 전문위원은 “이 감독 등이 공간배치나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청와대의 기존 관행이라는 두꺼운 권위의 옷을 벗겨내는 데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화계 인사들이 지적한 대표적 사례는 임명장 수여식이다. 대통령이 서는 곳과 임명장을 받는 사람이 서야 할 곳이 사진기자들의 포토라인처럼 규정돼 있고, 거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다 보니 꼿꼿이 서 있는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야 하는 구시대적 관행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공간에 배어 있는 권력관계를 읽은 것이다.

어쨌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청와대를 뜯어고치려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풀이된다. 취임 이후 3개월의 야간공사 뒤에 선보일 청와대가 업무의 효율성과 탈권위주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보협 기자/한겨레 정치부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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