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2월13일 제446호 

국제질서, 금이 가요 금이 가~

평화·환경 관련 각종 협약과 의정서 체결, 힘 앞세운 미국 벽에 대부분 막혀

1972년 국제사회는 점증하는 생물무기 확산위험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생물무기협약(BWC)을 맺었다. 그러나 세계 144개국이 참여했음에도 협약은 여전히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화학무기협약(CWC)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여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책과는 달리 생물무기의 개발·비축·사용을 감시하는 견제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국제사회는 1994년 생물·세균 무기의 개발·생산·보유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의정서 채택을 위한 특별협상기구를 설치하고, 무려 7년여에 걸쳐 협상을 벌여왔다. 협상이 막판에 이른 2001년 11월 5차 평가회의에 앞서 군축전문가 의정서 통과를 낙관했다. 그해 9월11일 터진 테러공격과 이어진 탄저균 공포에 시달린 미국이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협약을 지킬지 확신할 수 없고, 비가입국에 대한 규제가 없으므로 비효율적이다”라며 의정서 통과에 반대했다.

협상이 결렬위기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1년 뒤 후속회의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미국의 입장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속개된 회의에서도 부시 행정부는 “검증의정서 채택을 위한 협상 노력을 중단하고 논의를 오는 2006년 제6차 생물무기협약 평가회의 때까지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고스란히 관철되면서, 국제사회는 생물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강력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더욱 노골화하는 미국의 독단적 행태로 국제질서를 유지해온 틀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인류 공통 과제인 평화·환경·인권 문제 등에 대한 국제사회 노력은 힘을 앞세운 미국의 ‘벽’에 막혀 급격히 밀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멋대로’ 행보는 취임 초기부터 계속돼왔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대재앙을 막기 위해 1997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규정한 교토의정서를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수십년간 전략적 균형추 노릇을 해온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협정(ABM)의 일방적 폐기와 미사일방어망(MD) 조기배치 계획을 잇달아 내놔 세계를 긴장시키더니, 보복전쟁을 금지한 유엔헌장을 무시한 채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켰다.

탈레반 정권의 인권유린을 비난하던 미국은 정작 탈레반과 알 카에다 출신 포로들에 대한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전쟁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을 무시한 채 전쟁과정에서 붙잡힌 600여명을 일방적으로 ‘비정규 전투원’으로 규정해 이들의 기본권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최근 “쿠바에 있는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 구금된 이들은 이틀에 한번 15분간 운동시간을 주는 것 외에는 철저하게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립감과 좌절감을 못 견딘 포로들이 잇달아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5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 출석해 이라크 대량파괴무기와 관련된 이른바 ‘증거’자료를 제시한 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이라크 무장해제라는 의무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월 장관의 증언이 나온 뒤 부시 대통령은 “이제 게임은 끝났다”며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쟁을 기정 사실화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1의 무기수출국이다. 미국의 <원자력과학자회보>는 최신호에서 “지난 2001년에만 미국은 전 세계 154개국에 모두 131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출 또는 군사원조 방식으로 ‘확산’시켰다”고 밝혔다. 수입국 명단에는 미 정부가 인권후진국으로 분류한 41개 나라도 들어 있는데, 이들이 구입한 무기만도 31억달러어치에 이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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