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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3.01.15(수) 제44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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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미치지 않는 게 비정상이었다” 지금도 창살 안에 같혀 있는 영혼들…서재호씨가 회상하는 영창의 살벌한 풍경
영창에서 입은 피해는 영영 보상받을 길이 없는가. 영창 후유증으로 ‘20세기의 무덤에 갇혀 있는 젊은이들’이 아직 많다.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서재호(37)씨도 그들 가운데 한명이다. 1991년 현역병으로 제대를 1달 앞두고 있던 서씨는 해군 3함대 소속 기무사에 끌려갔다. 단기병인 대학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 군 안팎의 소식과 총기사고 등을 실은 소식지 <애국군인>을 뿌려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씨는 1년6월 확정판결을 받아 민간교도소로 넘겨지지 전까지 10개월 동안 국방부 헌병대 영창에서 지냈다. 영창에 들어간 첫날 서씨는 머리를 빡빡 깎은 뒤 군번 없는 군복을 입었다. 첫날은 전면이 철창인 방에 들어가 얼차려를 몇 차례 받은 뒤 벽에 붙어 있는 영창생활 수칙, 수감자 신조를 외워야 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곧바로 기합이 돌아왔다. 첫날부터 밤에는 근무헌병으로부터 찝쩍거림을 당했다. 차렷 자세를 하고 서 있거나, 철창에 매달려 있거나 ‘원산폭격’을 해야 했다. 수감자들이 많을 때는 한방에 6명이 있기도 하고, 적을 때는 1명이 있기도 했다. 아침 7시부터 정좌를 하고 앉는다. 책상다리를 하고 팔을 쭉 펴서 무릎 위에 놓고 눈길은 15도 위를 바라봐야 한다. 밥이 와도 정좌한 채로 먹어야 했고, 독서시간, 명상시간에도 정좌를 풀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정좌한 채로 수건을 목에 두른다. 헌병이 와서 문을 따주면 볼일을 보고, 참으라면 그대로 앉아 있어야 했다. 서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기 수감자들은 이런 탓에 대부분 방광과 요도관련 질환을 앓았다. 하루 종일 햇볕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몇달 뒤 헌병 대장에게 집단적으로 요구해 하루에 30분씩 일광욕·운동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내내 카메라와 헌병이 감시한다. 정좌자세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마이크에서 “누구누구 자세 바로 잡게 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곧장 헌병이 달려와 구타하거나 모욕을 가한다. 틈틈이 근무헌병에게 잘못 보이면 징벌방에 들어가야 했다. 이곳에서는 낮이나 밤이나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 지낸다. 서씨는 “내가 사건의 주범이고 두명의 후배들이 같이 잡혀 있었기에 사력을 다해 견뎠다. 긴장과 압박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미치지 않으면 도리어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장기구금자들뿐 아니라 15일 이내로 징계입창된 이들도 정서적 발작상태를 겪었다. 한 병사는 영창에 들어온 지 며칠 뒤 화장품 병으로 자해하기도 했다.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을 때, 서씨는 항소를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민간교도소로 가고 싶었다고 한다. 93년 사면복권이 됐으나 서씨는 지금까지 악몽을 꾼다. 영창에서 입은 계급관등성명이 다 떨어진 이름 없는 군복을 입는 꿈이다. 함께 영창에 갇혀 있던 후배 권대현씨는 지금까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또 다른 한 후배는 극심한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다. 서씨와 학교 선후배들은 대현사랑(my.dreamwiz.com/dhsarang)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병원비를 모금하는 등 권씨를 돕고 있다. 하지만 권씨와 수많은 권씨들의 정신과 영혼은 여전히 영창에 갇혀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