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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 안줏거리를 드립니다 친지들과의 술자리에 빠질 수 없는 정치이야기…각지의 민심이 만나면 어떤 얘기가 나올까
설을 맞았다.
서울로 부산으로 흩어져 살던 가족·친지가 차례상에 얼굴을 맞대고 앉는다. 세배를 하고 음복이라도 하면 얘기꽃은 더욱 만발한다. 서울 민심은 경상도로 전라도로 충청도로 퍼져나가고, 거꾸로 남쪽 여론은 북상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달이 훌쩍 넘었다. 선거 직후의 환호와 탄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격정은 가라앉고 차분히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서울에서는 뭐라고들 그래”, “여기에서는 어떻게들 생각해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정치 얘기는 술상 안줏거리로는 제격이다.
곧 청와대를 떠날 김대중 대통령도, 새로 입성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처진 어깨로 여의도를 떠난 이회창 전 후보도 술잔에 머물 것이다. 고건 총리 지명자도, 개혁으로 소란스러운 각 당의 중진 의원들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민심의 정치 지형은 설을 맞아 본격적으로 새로 짜이고 있다.
‘무색무취’는 검증 통과할까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고건씨 내정된 배경…여야에 고루 친분이 두텁다는 강점 지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명배경을 “노무현 컬러가 강해 무색무취한 분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가 자신을 선장으로, 총리를 항해사로 비유한 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내각을 충실하게 이끌 인물을 골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행정의 달인, 처세의 달인
‘무색무취’라는 평가 속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권력자에게 순응만 하거나 양지만 좇았다는 비판일 수도 있지만, 독단적이지 않고 합리적이라는 찬사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노 당선자는 지난해 이른바 ‘후보교체론’이 불거질 당시 대안으로 거론된 고씨가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후보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한 데 대해 좋은 인상을 간직했다고 한다. 고 총리 지명자는 권력에 순응만 했다는 비판에 대해 “진퇴를 결정할 때 나름대로 철학과 소신을 따랐다”며 1980년 5월 정무수석 당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정한 국무회의에 배석하지 않고 사직서를 낸 경험을 강조한다. 그는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한 적이 있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 지명자는 ‘처세의 달인’이기도 하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고 지명자와 일한 박병석 의원은 “고 시장이 인사위원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 결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역시 정무부시장으로 함께 일한 신계륜 의원이 전화는 일화. “청탁이 예상되는 자리엔 꼭 누군가를 데리고 가서 아예 얘기를 못 꺼내게 했다. 거절할 때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넘겼다.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탄복했다.” 수많은 공직에 있는 동안 맺은 인연들도 든든한 힘이 됐다. 고 지명자는 노 당선자의 인사특보를 맡고 있는 신계륜 의원과 각별한 사이다. 98년 서울시장 선거 때 비서실장을 맡겼고, 이후 정무부시장으로 중용했다. 신 의원은 이번에 고 지명자를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정무분과의 김병준 간사도 고 지명자가 서울시장 재직 때 시민평가단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개혁파 의원들, 철저한 검증 주장
고 지명자의 인간관계는 한나라당에도 뿌리가 깊다. 그는 85년 민정당 공천으로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정계 의원들과 교분이 두텁다는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 말기 총리를 지내 민주계 의원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상배 정책위 의장과 행시 13회 동기기도 하다. 과거의 이런저런 인연 때문인지 한나라당 수뇌부는 대부분 고 지명자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박종희 대변인은 “크로스보팅 얘기가 나오자 당 수뇌부가 모두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그가 인사청문회를 수월하게 넘길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무사안일의 표본으로 처신에 의아한 점이 많다. 대독총리가 될까 우려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규택 총무도 초반의 우호적인 태도를 바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별렀다. 지난해 장상·장대환 지명자 청문회 때처럼 본인과 아들의 병역문제 등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고 지명자가 수많은 공직을 경험하는 동안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검증의 좁은문을 통과할지 2월10일 전후로 예정된 인사청문회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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