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1월30일 제445호 

동교동, 남은 인생의 쉼터여

물러나면 모든 대외활동을 끊겠다고 밝힌 김대중 대통령…그에 대한 ‘수요’는 남아 있어

김대중 대통령이 2월25일이면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간다.

동교동 자택은 1962년 3월 신촌의 사글셋방에서 옮겨와 1995년 일산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던 곳으로 김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건평 30평의 아담한 단층주택이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건평 199평짜리 널찍한 집으로 바뀌었다.

아태재단을 ‘김대중 도서관’으로


사진/ ‘김대중 도서관’으로 바뀔 예정인 아태재단 건물. 일부 공간은 김 대통령의 서재 겸 연구실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연합)


저택은 지난해 말에 완공됐고, 이미 ‘김대중·이희호’라는 한자 명패가 걸린 채 주인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김 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김한정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 2~3명의 비서관과 함께 노후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김 실장의 얘기다. 그는 “댁에서 독서로 소일한다는 뜻을 굳히셨다. 대외활동은 정치적이든 비정치적이든 일체 하지 않으실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 스스로도 1월23일 ‘국민의 정부 무역·투자유치 성과 보고회’에서 “물러나면 일개 시민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오직 국민과 같이 나라가 잘되도록 가능한 정성과 협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미 동교동 해체 지시를 통해 정치 단절을 선언한 상태다.

심지어 당분간은 회고록도 쓰지 않을 예정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집필하시겠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시다. 몇몇 회고록이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며 크게 환영받지 못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상당기간은 그저 연구하고 자료를 정리하기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아태재단이 바뀐 ‘김대중 도서관’의 일부 공간은 김 대통령의 서재 겸 연구실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재단을 기증받은 연세대가 이를 공식 제의했고, 청와대쪽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태도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은 동교동 자택과 맞닿아 있다.

박지원 비서실장도 이 건물에서 김 대통령을 보좌할 것으로 보인다. 박 실장은 평소 “퇴임 이후 김 대통령의 충실한 말동무 노릇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마저 도서관이 개관되고 각종 자료를 배치하려면 1년 정도 걸릴 예정이어서 김 대통령의 대외활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북지원설 등 각종 의혹 남아


사진/ “물러나면 일개 시민으로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분간 회고록도 쓰지 않을 방침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애초 김 대통령이 아태재단을 배경으로 카터나 고르바초프처럼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지도자로 활동할 계획이었던 데 비하면 대단히 축소지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김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버리고 심지어 탈당까지 해도 DJ와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으나, 아태재단을 내놓는 것을 보고서는 실감하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아태재단은 김 대통령의 정치 근거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40년 넘게 정치적 격랑의 정점에 서 있었던 김 대통령이기에, 그 질긴 탯줄을 끊는 데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4천억원 대북지원설을 비롯해 한나라당이 제기한 각종 의혹의 그늘이 아직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폭발성 강한 사안들이 언제 어디서 터져 김 대통령을 다시 정치권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일지 모른다.

또 내년 총선에서 김 대통령의 지원을 바라는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당 한 호남 출신 의원은 “지금은 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낮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한 대통령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럴 경우 특히 호남지역에서는 김 대통령 깃발을 들고 나오는 후보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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