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금에 참여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수재민돕기에 모인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방송사의 연말 불우이웃돕기 자동응답서비스(ARS) 모금에 엄청난 성금이 쌓이는 데서 보이듯, 한국인의 기부는 경제적 여유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는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나 기부에 따른 사회적 인정이 기부의 주요 동기로 작용하는 미국의 사례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런 기부의식 못지않게 기부를 둘러싼 각종 제도 역시 기부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기부에 대한 각종 제도가 오히려 개인들의 기부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부단체만 배 불리는 것 아닐까”

먼저, 기부빈곤을 낳아온 주범으로 꼽히는 게 기부단체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다. 아름다운재단의 조사결과 한국인이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4점 척도)로는 △경제적 어려움(2.84) △기부처에 대한 불신(2.52)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2.31)으로 나타났다. 민간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반면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2.04) △기부의 필요성을 잘 알지 못해서(2.03) △기부의 방법과 절차를 몰라서(2.02)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화여대 강철희 교수(사회복지학)는 “민간 기부단체의 신뢰도와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이 국민의 기부 참여, 지속과 중단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개인 기부자들은 기부단체의 사회적 평판을 크게 중시한다”고 말했다.

일부 사회복지지설의 인권침해나 파행운영이 폭로되며 복지단체에 대한 불신은 더욱 증폭돼 왔다. 지난 3월 현재 행정자치부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는 3892개. 그러나 미신고시설은 무려 4만여개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흥윤 팀장은 “민간 모금시장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선의의 자선단체들이 있는 반면, 원장이 폭력과 전횡을 일삼는 악의 얼굴을 한 시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 등록요건을 일정 규모의 땅과 자본금 확보 등으로 까다롭게 한정한 탓에 선의의 자선단체인데도 아예 등록하지 못한 곳도 많다. 기부처에 대한 국민 불신을 감안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시설만 허용해왔는데, 이 제도가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비닐하우스 하나 차려놓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숱한 영세 복지시설은 법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개인들이 낸 기부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행려병자·치매노인·장애인일수록 도움이 절실한데도, 축축한 비닐하우스에 그대로 버려져 있는 것이다.

사실 기부처에 대한 불신은 복지시설보다는 기부금 모집단체·기관에 쏟아진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둘러싼 정부와 일반 여론, 그리고 기부단체들의 엇갈린 견해가 이를 보여준다. 이 법의 주무부처인 행자부는 “무분별한 모금이 엉터리 자선모금단체들의 유용과 사기같은 사회문제를 낳아왔다. 이런 국민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상당수의 사회복지단체들은 규제 위주의 이 법을 큰 폭으로 개정 또는 폐지하라고 줄곧 요구하고 있다. 왜 그럴까

기부단체 운영비 신뢰성 확보가 관건

사진/ 기부에 대한 각종 제도가 개인들의 참여를 가로막기도 한다 지난 11월20일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기부문화 관련 토론회 모습. (류우종 기자)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기부금을 모금할 때마다 일일이 사전허가를 받도록 해 민간 모금활동을 사실상 금지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 직후 상이군인들의 무분별한 모금을 규제하기 위해 이 법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행자부는 “규제를 완화하면 기부단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사기전과범들이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 기업이나 유명인사를 찾아가 기부금을 협박하는 일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법에는 노동운동단체의 자금모집을 차단하려는 또다른 의도 역시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은경씨는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규제 위주라서 기부문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금단체의 기부금 사용내역을 철저하게 감독하는 대신 모금단체의 문호는 더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상정됐으나 행자부 등의 반대로 서랍 속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개정안은 회계감사를 실시해 모금단체의 투명성을 높이되, 기부금 모집은 규제에서 벗어나 장려하는 안을 담고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은 모금단체의 운영비 허용한도다. 현행 법은 기부단체가 모금액 가운데 자체 모집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을 2%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를 20%의 큰 폭으로 늘렸는데, “2%로는 모금활동이 불가능하다”는 모금단체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사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그동안 기부단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국내 모금단체들은 2% 제한에도 불구하고, 외국처럼 모금액의 10∼20%까지 운영비로 사용하는 등 불가피하게 법을 어겨온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내가 낸 돈은 한푼도 자선단체가 운영비로 쓰지 말고 전부 수혜자한테 쓰라”는 기부자들의 정서 때문에 바깥에 알리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일부 기부자들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라고 낸 돈을 모금단체 직원들이 월급 인상으로 엉뚱하게 나눠먹는다”며 분노하기도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흥윤 팀장은 “복지기금은 다른 돈과 달리 잘못 쓰이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기부금 유용은 단 몇푼이라도, 부실기업이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날린 것보다 파장이 더 크다”고 말했다.

운영비를 둘러싼 이런 논란이 있음에도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이 기부 활성화를 억제해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의 복지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민간의 기부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간단히, 운영비는 정부 보조금이나 기부단체의 자체 수익금을 통해 충당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부단체가 영리사업을 추구할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 반면 기부단체의 운영비를 ‘현실’로 인정할 경우, 운영비 적게 쓰기 경쟁을 유도해볼 만하다. 운영비를 줄인 단체로 더 많은 기부금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재단 이경현씨는 “좋은 일 하는 데 어쩔 수 없이 돈이 든다는 사실에 대해 기부자들의 공감을 얻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영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부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제혜택 늘리는 등 인센티브 확충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역시 필요하다. 미국에서 개인 기부문화의 폭넓은 저변에는 세금혜택이란 인센티브가 작용하고 있다. 기부금에 대한 개인소득 공제한도를 보면, 미국은 최고 50%, 일본은 25%까지 인정해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조세성 기부금은 전액 공제되지만, 자선기관이나 사회복지단체에 내는 기부금은 소득액의 10% 한도만 공제된다. 조세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부단체에는 기부하고서도 증여세를 무는 일조차 있다. 전흥윤 팀장은 “세금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기부단체가 하는 만큼 기부금의 세제혜택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