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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내조’하세요!” 30대 세명이 말하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 매력적인 독립 캐릭터 만나고파
이남경(이하 남경) 내가 대통령 부인에 관심 갖는 경우는 구설수에 오를 때뿐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대통령 부인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판에 박은 행사에 참여해 누가 해도 비슷한 일만 했으니까. 막연한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 말고 자기 독립적인 캐릭터를 살려나가는 그런 영부인을 만나고 싶다.
여성들 표심 너무 무시한다
이금주(이하 금주) 예전에 유명 앵커우먼 출신의 한 여성이 동네 목욕탕에서 어르신들 때밀어드리며 남편 선거운동한다고 할 때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일정한 지위와 힘을 가지면 아내는 너무 쉽게 사그라든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까닭은 답답해서다. 애 둘 키우고 별다른 힘도 백도 없는 나만 해도 자아를 찾기 위해 동네 주부들과 별의별 일을 다 벌이는데. 하물며 영부인이라면, 영부인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전문직 여성이나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경험과 무게를 사회적으로 살려나갈 비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경 배운 것도 많고 활동력도 있으나 수면 아래 묻혀 있는 이들이 30대 여성들이다. 이들에게 어필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얻는 것이다. 서른세살 직업여성인 나는 앞으로 필요한 게 너무 많다. 돈벌이도 해야 하고 애도 낳아야 하고 20대에 찾아내지 못한 잠재력도 개발해야 한다. 나의 이해관계에 관심 있는 대통령 부인은 과연 없는 걸까. 금주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의 부인은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그 다음번쯤에는 자기 직업을 가진 영부인도 나올 것이다. 대선전 진행되는 걸 보면 여성의 표심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다. 여성들의 표심은 그저 따라오는 줄 아나 보다. 지금 후보 부인들도 전략적으로 자꾸 그림자 역할에 머물게 하는 것 같다. 선거팀, 참모진에 여자가 반만 되면 그런 문제는 금방 읽을 텐데. 남경 후보자 부인들 인터뷰 기사 보면 미스코리아들 대답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 후보자 부인이 김치찌개 좋아하고 동네 미용실 가고 시장에서 옷 사입고 백화점에는 세일 때만 간다고 말하는 걸 봤다. 그걸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완 예전에 김종필씨 부인 박영옥씨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정치인의 아내로 완전히 포맷이 된 사람 같았다. 자신의 낙은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신문을 사다놓고, 늦게 들어와서 시간이 없을 테니 미리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의 시사적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 왜 밑줄만 긋고 앉아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대통령 후보자 부인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 봤다. 질문이 좀 어이없었다. 첫사랑은 어떻고, 내조는 어떻게 하고. 게다가 노래까지 시키는 것이다. 노래 잘하는 게 대통령 부인 노릇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육영수 모델링 정말 맘에 안 들어”
일완 영부인상에는 한국 사회가 원하는 여자 이미지, 상징적인 코드가 집약돼 있다. 여자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영부인을 원하느냐고. 육영수를 모델링하는 거 정말 맘에 안 든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끌린다고 답했다. 사실 30대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나라 상징은 무궁화, 무궁화 중에 으뜸은 흰 무궁화, 흰 무궁화는 육영수 여사 이런 식으로 내내 세뇌당하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대통령 부인은 육영수 여사, 육영수 여사는 대한민국 국모 이런 식의 무의식이 유지되는 것이다. 남경 맞다. 나만 해도 영부인 하면 제일 먼저 육영수 생각이 났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육영수에 대해 공은 들어봤지만 과는 단 한번도 안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주 임창렬씨 경기지사 할 때 부인인 주혜란씨 욕먹는 게 대단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다닌다느니, 옷을 화려하게 입는다느니.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내가 경기도민이다 보니 주혜란씨가 행사에 참석한 걸 몇번 본 일이 있다. 문화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꽃다발도 자기 손으로 직접 주고 그러던데 나쁜 매너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에 있다면 전문성과 적극성은 갖춰야 한다. 선출직은 아니지만 대표성이 있는 자리기 때문이다. 남경 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은 일종의 신분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예전에 미국 웨슬리대 여학생들이 바버라 부시가 강의하러 온다고 하자 “그가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강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가 스스로 성취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거부한 일이 있다고 들었다. 인상적인 일화였다.
386정치인들의 부인을 봐도…
일완 바버라 부시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부시 집안이 대대로 그렇지만 바버라 부시도 쿠키 잘 굽는 것만 자랑하는 대통령 부인이었으니까. 지금 대선후보 부인들 세대는 여성이 직업을 가진 세대는 아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는 어떤가. 이른바 386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정치에 뛰어든 이들의 부인을 봐도 자기 커리어를 쌓거나 전문성이 있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80년대 학번 정치인이 총선에서 당선됐을 때 그 못지않게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온 그의 와이프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꽃처럼 미소만 띠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가봐도 부인은 내조형으로 그려져 있다. 누군가 도발하지 않으면 정치인의 와이프는 항상 그런 것, 대통령의 부인은 항상 그런 역할로 고정된 이미지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금주 동네에서 5년째 함께 활동하는 주부들과 손가락 꼭 걸고 약속한 게 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된다. 시야 좁아지고 우울증만 커진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나와서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건, 밥을 퍼주건 뭐라도 사회적인 일을 하자. 그런 경험과 여력을 키워서 다른 주부들도 끌고 나오자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여성문제의 으뜸은 결혼하고 애 낳은 다음 다시 일할 수 없다는 것. 또 그렇게 일을 하려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경 나는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 출산을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일완 다음카페에 한 여자대학 출신자들의 모임이 있는데 나만 유일하게 남자로 회원이다. 그래서 아이디도 친정오빠다. (웃음) 육아에 발목 잡혀 일하지 못하는 심리적 박탈감을 보면서 사실 사회가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인데 개인에게, 가정에게 과도하게 짐지워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난 감히 결혼할 엄두도 못 낸다. 남경 어떤 대선후보 부인 한명이 이 마당에 여성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두팔 걷겠다 그러면 몰표가 갈 텐데. 일완 뜻은 좋지만 과연 득표에 도움이 될까. 조금만 설치는 것처럼 보이면 주혜란씨나 이인제씨 부인 김은숙씨 경우처럼 언론에서 먼저 죽이고 나설 텐데. 근데 영부인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내 윗세대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가 감히’라는 선에서 정리해버린다.
후보자 부인들끼리 토론을
남경 선거철 설문조사가 쏟아지는데 영부인이 해줬으면 하는 일에 대한 설문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 나온 후보자 부인들도 역량은 있다고 본다. 그런 지위와 역할을 강제하는 것은 언론이다. 일완 한 대통령 후보 부인이 텔리비전에서 다니엘 미테랑처럼 인권문제에 관심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출근 준비하면서 양치질하다가 놀라서 뛰쳐나왔다. 방청하는 주부들이나 진행자들이 기대한 답변 수준을 뛰어넘는 말이었다. 나름대로 트레이닝되고 있구나 반가웠다. 남경 스스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만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높이 살 만하다. 대중을 경악시키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입만 열면 표 떨어지는 소리 한다는 후보 부인도 있지만, 어쨌든 적극적으로 표를 끌어올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후보자 부인들끼리 토론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옷차림, 멋내기, 집안 꾸미기 같은 것만 놓고 비교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후보 부인들의 정치력을 비교했으면 좋겠다. 일완 재미있는 제안이다. 이미지가 아니라 활동과 비전으로 평가되고 검증돼야 한다. 남경 다니엘 미테랑은 판에 박힌 생활이 싫어서 관저를 따로 썼다는데. 정말 도발하는 영부인을 만나고 싶다. 대통령 부인은 일탈할 마음이 안 생길까 누구누구의 아내 그것도 온 국민이 주목하는 그런 남자의 아내라는 역할에 갇힌 삶은 정말 인간적으로 고통스러울 것 같다. 일완 대통령이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널브러지면 서민적이라고 칭찬하겠지만, 영부인이 그러면 곧바로 기사에서 이렇게 따옴표 치고 나올 것 같다. 아무개 여사 ‘추태’. 언론이 여성 정치인들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주 대통령 부인의 생활은 공인으로서 좀더 오픈돼야 한다. 독자적인 홈페이지도 만들고. 가십거리는 가십거리로 치부하고 행동의 중요한 의미를 잡아내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지금은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꼭꼭 갇혀 있다가 대통령 수행비서로 잠깐씩 등장하는 것밖에 없다. 행동반경이 더 오픈되고 공과는 더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갑자기 궁녀 생각이 나네…
남경 자기 색깔 갖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영부인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싶다. 방송 뉴스에서 첫 멘트로 오늘 아무개 여사가 뭘 했습니다다 혹은 오늘 아무개 여사가 대통령의 어떤 정책에 반대하는 대중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살맛날 것 같다. 금주 후보자 부인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와서 제가 이런 패러다임으로 두팔 걷고 뛰겠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참신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선전이 한창인데 지금쯤이면 후보자들 부인의 지향점도 분명히 나와야 한다. 내조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앞으로 청와대 가서도 그냥 엎드려 있겠다는 말이다. 그런 부인을 둔 후보자라면 여성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본다. 남경 갑자기 궁녀 생각이 나네. 일완 권영길 후보 부인은 호스피스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이회창 후보 부인이나 노무현 후보 부인도 몇 차례 선거를 함께 치르면서 정치적 조력자 역할을 했을 텐데 그들의 차이가 뭔지 구별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대통령, 영부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계획을 내놓아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 금주 사실 오늘 좌담에 오기 전에 후보자 부인들 이름을 확인했다. 반성이 된다. 오늘의 결론. 후보자 부인 이름부터 확인하자! 남경 대선으로 대통령을 뽑지만 영부인도 뽑는 것이다. 남편 색깔 말고 자기 색깔 가진 영부인 급구! 일완 나의 결론은 육영수여 안녕!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사진 류우종 wji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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